“우리, 살아가도록 해요.”
안톤 체호프의 희곡 「바냐 아저씨」의 마지막 신에서 소냐는 실의에 빠진 외삼촌 바냐 아저씨를 위로합니다. 바냐 아저씨는 여동생의 남편인 노교수를 평생 후원해 왔죠. 죽은 동생을 대신해서 조카 소냐를 돌본 것도 바냐였어요. 대단한 예술가라고 생각했던 교수가 속물이자 퇴물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그가 알게 되었을 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이제는 은퇴한 교수의 새 아내 엘레나에게 사랑을 고백했지만 젊은 엘레나는 결국 노교수와 떠나버렸죠. 사랑을 잃고 남겨진 것은 소냐도 마찬가지였어요.
“운명이 가져다준 시련” 앞에 선 이 두 사람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소설 「드라이브 마이 카」에서 주인공 가후쿠(니시지마 히데토시)와 그의 운전기사 미사키(미우라 토코)의 사연 속에 흥미롭게 자리 잡게 됩니다. 하마구치 류스케는 하루키의 단편을 더욱 입체적으로 각색해서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를 만들었습니다. 가후쿠는 극작가였던 아내의 외도를 모른 척 하던 중에 갑자기 아내를 잃었고, 미사키는 알콜 의존증에 다중인격이었던 엄마의 죽음에서 아직 헤어 나오지 못해 애써 감정을 억압하면서 살아왔어요. 가후쿠와 미사키, 두 사람의 존재는 삼촌과 조카, 아빠와 딸처럼 서로에게 큰 위로가 됩니다.
그런데 영화 속 「바냐 아저씨」 공연에서 소냐(박유림)의 마지막 대사는 수어입니다. 연출자이면서 바냐를 연기한 가후쿠는 배우들에게 모두 각자의 모국어로 연기하도록 요청했어요. 무대에서 엘레나는 중국어로 말하고, 소냐는 한국어 수어를 하고, 바냐는 일본어로 말하죠. 따지고 보면 우리는 같은 나라에 살면서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데도 무슨 말을 하는지 서로 이해할 수 없을 때가 얼마나 많던가요. 가후쿠는, 그러니까 하마구치 류스케는 사용하는 언어가 달라도, 어쩌면 가장 진실한 말과 예술은 반드시 소통을 이루어낸다는 믿음을 증명해보이고 싶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보니 가후쿠 부부의 직업이 배우이고 극작가라는 점이 새삼 특별하게 느껴졌어요. 인생이 연극이나 영화이고 우리가 배우라면, 가후쿠가 시도했던 것처럼 가능한 여러 가지 언어로 공연이 수행되고, 배우들 각자 가장 자연스러운 자신의 언어로 연기에 몰입할 수 있다면 참 좋겠습니다. 마침내 우리가 무대의상과 분장을 벗고 그분 앞에서 편히 쉴 수 있을 때 까지 말이죠.
“하아... 힘들었어요.”라며, 또로록. 풀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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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도 이제 중순을 지나갑니다.
새해를 어떻게 보내고 계신지 모르겠어요.
며칠 전, 저는 고대하던 전시에 다녀왔어요. <러시아 이콘: 어둠을 밝히는 빛>(서소문 성지 역사박물관, 2021.11.25.-2022.2.27.)입니다. 마음의 평화 혹은 경건의 모양이라도 다잡을 수 있을까 기대했죠. 성소와 지성소를 나누는 장막처럼 사제들의 집례공간과 신도들의 예배공간을 나눈 성화벽 재현물 앞에 한참을 앉아 있었어요.
그리고 그 공간을 나와서 배형경 작가의 조각상들을 만났습니다.
하늘은 너무나 멀고 땅은 꺼질 것 같아 벽을 기운삼아 버티고 있는, 한 남자를 보았어요. 혹시 이 남자에게 공감이 되시나요? 저에게는 마음에 떠오르는 이름들이 몇 있습니다. 금방이라도 풀썩 주저앉을 것 같은 그에게, 소냐처럼 말해주고 싶어졌어요.
“그래도 우리, 살아가도록 해요....”
2022.1.15.
모두를위한기독교영화제 수석프로그래머 최은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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