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주간모기영 116호

[이정식의 시네마 분더카머] "영화 <아임 낫 데어>(2007)"

2023.12.31 | 조회 3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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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모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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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식의 시네마 분더카머

🚪 열 두 번째 방: 영화 '아임 낫 데어'(2008)

밥 딜런과 밥 딜런적인 것

 실은 ‘밥 딜런’이라는 이름을 제외하면 그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습니다. 그렇다고 <아임 낫 데어>에 숨은 연출법의 의미를 낱낱이 해독할 자신도 없고요. 그래서 꽤 오래 고민했습니다. 정말 이 영화로 2023년 주간모기영의 제 순서를 매듭짓는 게 나은지. 차라리 다른 영화를 택하는 게 낫지 않은지. 그런데 자신없는 태도라면 이 영화의 감독인 토드 헤인즈도 저와 비슷했던 것으로 보여요. ‘밥 딜런 영화’를 제작하리라고 마음먹고서 동의를 구하는 기획안을 밥 딜런에게 보냈을 때, 거기 적힌 프로젝트의 첫 제목은 이랬다고 합니다. “아임 낫 데어: 딜런에 관한 영화에 있어서의 추정들”. 애초부터 영화의 목표가 정확한 재현이 아니라 불확실한 추정에 있던 것이라면, 밥 딜런에 대해서도 이 영화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하는 저도 어떤 짐작 정도는 보탤 수 있지 않을까요. 이런 마음으로 조금은 담대해 지기로 했습니다.

 첫 번째 짐작. 토드 헤인즈는 자신의 추정을 아예 극한까지 밀어붙이려 한 것처럼 보입니다. 밥 딜런을 연기하는 영화 속 일곱 명의 초점인물은 모두 밥 딜런이자 밥 딜런이 아닙니다. 각각의 인물들은 밥 딜런의 어떤 특성을 보유하긴 했으나 그만이 밥 딜런의 전부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밥 딜런’이라는 이름 뒤에 숨죽인 여러 갈래의 개별적인 특성들, 혹은 삶의 어떤 국면들을 포착하고 분할하여 고유하고 독립적인 인물을 만들었습니다. 시인인 아르튀르 랭보(벤 휘쇼), 전자음악에 투신했다는 이유로 배신자 ‘유다’라 비난받던 가수 주드 퀸(케이트 블란쳇), ‘시대의 양심’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그 시대의 심정을 노래했던 포크 가수 잭(크리스천 베일)까지. 이 인물들은 실제 밥 딜런의 어느 특성을 고스란히 재현하죠. 잘 알려지다시피 노벨문학상을 받은 그는 시인이라 불리기도 했으며, 포크 가수 잭에게 쏟아지는 대중의 관심은 그의 데뷔시절을 떠올리게 만듭니다. 또한 전자음악으로 전향했다는 이유로 배신자라 비난받는 주드는 밥 딜런의 생애 중 어느 변곡점을 생각하게 하죠.

 하지만 기타를 매고 유랑하는 꼬마 아이 우디 거스리(마커스 칼 프랭클린)와 연기자 로비(히스 레저), 그리고 총잡이 빌리(리처드 기어)는 철저히 허구적인 인물입니다. 우디 거스리는 젊은 시절 밥 딜런이 우상으로 여기던 컨트리 뮤지션이었고, 로비는 ‘영화 속 영화’에서 밥 딜런을 연기한 배우였으며, 빌리는 밥 딜런이 실제 출연했던 영화 <관계의 종말>의 주인공 ‘빌리 더 키드’(밥 딜런은 주인공을 맡진 않았습니다.)를 반영한 인물입니다. 앞쪽 그룹에 속한 인물들이 영화에 등장하는 것은 어렵지 않게 납득 가능한데, 왜 두 번째 그룹에 속한 인물들이 영화에 필요했던 걸까요. 여기에 어떤 의도가 있는 걸까요. 그런데 ‘의도’에 대해서라면, 그것도 영화의 의도에 대해서라면, 그 일은 밥 딜런을 정확히 재현하려는 목적만큼이나 이 영화와 어울리지 않는 일일 겁니다. 그보다는 실재하는 현상 자체를 고스란히 받아들였을 때 빚어지는 파장, 효과에 더 집중하는 것이 더 영화와 어울릴 거예요. 그렇다면 질문을 이렇게 바꿔도 좋을 겁니다. 밥 딜런을 묘사하는 인물로 실제적 인물만이 아니라 허구적 인물까지 포함했을 때 발생하는 효과는 무엇인가? 라고요. 

 여기서 저의 두 번째 짐작을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밥 딜런이라는 사람의 구성은 ‘밥 딜런’과 ‘밥 딜런적인 것’의 총합으로 이루어진다고 영화가 믿는 것 같다고요. 밥 딜런이 ‘밥 딜런만’으로 구성된다고 생각했다면, 이 영화도 예의 무수하고 빤한 전기영화 중 하나였을 거예요. 그의 삶을 연대기 순으로 재현하는 식으로요. 하지만 ‘밥 딜런적인 인물’도 밥 딜런을 구성하는 필수요소라면 영화의 허구적 인물들의 존재가 소중해집니다. 우리는 영화 속 영화에서 밥 딜런을 연기한 배우 로비, 그의 우상이었던 우디 거스리, 그가 출연한 영화 속 캐릭터인 빌리를 통해 그들과 밥 딜런이 겹쳐지고 갈라지는 지점이 무엇인지 보는 내내 유추합니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이런 생각까지 들어요.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설명하는 두 가지 층위가 있다고요. 심연의 층위에서 깊은 내면을 파헤치는 방식으로 사람을 설명하는 길이 있지만, 또 다른 층위, 즉 표면의 층위에서 내가 너와 주고받은 영향관계에서도 한 사람의 존재는 설명될 수 있다고요. ‘밥 딜런’이 전자라면, ‘밥 딜런적인 것’은 후자일 겁니다. 밥 딜런과 밥 딜런적인 것들이 종합되면서 밥 딜런이라는 사람은 입체성을 갖추게 됩니다.

 그 입체성이 아직은 부족하다고 느꼈는지, 영화는 한 층위를 더 얹습니다. 그 어떤 규정을 거부하는 ‘not’이라는 부정의 층위입니다. 아닌 게 아니라, 영화는 밥 딜런을 묘사하는 일곱 인물의 사진을 차례로 보여주면서 각 쇼트마다 탕하는 총소리를 냅니다. 그때 격발된 탄환이 ‘not’일 거예요. 시인도 선지자도, 무법자도 포크가수도, 변절한 가수도, 목회자도 아닌 사람. 자신을 규정하는 모든 것을 거부하면서 동시에 다른 모든 것이 될 수 있는 사람. 여기서부터 ‘밥 딜런=밥 딜런’이라는 지독한 동어반복의 순환은 깨어지고, ‘밥 딜런=(       )’라는 무한한 가능성이 생성됩니다. 그렇게 밥 딜런이라는 하나의 원은 밥 딜런과 밥 딜런적인 것, 밥 딜런이라 할 수 없는 것을 향해 방사형으로 뻗어나갑니다.

 밥 딜런도 그렇게 설명할 수 있는 거라면, 우리라고 그러지 말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무례함을 무릅쓰고 감히 여쭙습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당신적인 것은 무엇입니까? 당신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이 질문에 차례로 답을 생각하다보면, ‘나’라는 사람의 윤곽이 어렴풋하게나마 그려질 수 있지 않을까요. 겸연쩍지만 개인적으로 이런 소망이 있습니다. 2024년에는 ‘나=나’라는 동어반복의 순환에 조금은 균열이 가기를. 나의 동일성을 확인하는 것에서 안정감을 찾기보다, 변화하고 생성하는 나의 모습을 설렘과 두려움이 공존하는 마음으로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기를. 그렇게 내가 나를 환대할 수 있기를요. 기회가 되면 여러분의 소망도 듣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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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기영 실무진은 관객분들이 참여해주신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지난 5회 영화제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5회 모기영에는 총 5백여명이 넘는 관객분들이 함께해주셨는데요, 연령대와 참여동기, 종교의 유무 등에 대한 응답을 통해 모기영이 정말 '모두'를 위한 영화제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모기영에 많은 분들이 만족하고 또 기대하는 바는 영화의 선정과 해석의 시간에 있음을 다시 느끼면서 앞으로도 '믿고 보는 모기영'이 될 수 있기를 노력하고 소망해야겠다고 다짐합니다. 

 강신일 집행위원장님이 제공해주신 맛있는 식사도 든든히 먹고, 밤이 늦도록 모기영의 다음 걸음들을 의논하며 지속가능성에 대해 고민했어요. 모기영이 펼쳐나갈 새로운 이야기들을 계속해서 주목해 주시고 함께해주시기를 기대합니다!

 올 한해에도 모기영과 함께해주신 모든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기쁨과 감사가 가득한 새해 되십시오 :)

 


글 : 이정식, 강원중
편집 디자인 : 강원중

2023년 12월 30일 토요일

모두를위한기독교영화제 주간모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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