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산책하는 말들 / 꿈에 그리던 책상
창 밖은 되도록 초록
구독자님 안녕하세요. 오늘 저는 조금 새로운 마음으로 편지를 쓰고 있어요. 우선은 제가 무척이나 바라던 책상에 앉아 이 글을 쓰고 있다는 걸 얘기하고 싶네요. 월넛으로 만든 비싼 원목책상이거나 유럽 빈티지 브랜드의 책상은 아니지만요. 저에게는 그것보다 더 중요한 책상이에요.
제가 오래전부터 꿈에 그리던 책상은 재질이나 크기 같은 것은 크게 상관없요. 중요한 것은 오로지 그 책상이 있는 위치랍니다. 주방 싱크대 옆이라거나 거실 티브이 앞이라거나, 방치되어 있는 옷방 한켠에 있는 책상은 안 돼요. 그건 너무 생활의 냄새가 많이 나니까요. 지금 그대로인데 ‘꿈에 그리던’과는 맞지 않잖아요. 카페나 도서관 그 모든 곳의 책상도 당연히 안 되지요.
제가 바라던 책상은 창가 앞에 바짝 붙어 있어야 해요. 단순히 창가 쪽을 바라보고 있거나 고개를 돌리면 창가가 보이는 건 ‘꿈에 그리던’까지는 아니에요. ‘꽤나 마음에 드는’ 정도라고나 할까. 제가 정말 바라는 책상은 창 바로 앞에 있어요.
창 밖은 되도록 초록이면 좋겠고요. 사실 글을 쓰는 건 머리를 지나 가슴을 거쳐 손이 하는 일이라 굳이 눈이 모니터를 쳐다볼 필요가 없거든요. 그런데 갈 곳 없는 눈은 제 할 일 잘하고 있는 모니터와 손만 바라보게 돼요.
항상 하늘과 초록을 보며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오늘 그 꿈을 잠시나마 현실에서 경험했답니다. 비록 4일짜리 짧은 체험에 불과하지만 저는 지금 구름이 움직이는 것을 보며, 해가 맞은편 건물에 그림자를 만들어 내는 것을 보며, 대부분이 초록인 창 앞에서 편지를 써요.
헬싱키의 어느 여행자 아파트에 앉아 방금 비가 그친 풍경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뉴스레터가 늦었다고 탓하시지 않겠지만 이곳 기준으로 12시 마감을 생각했던 제 어리석음을 너그러이 여겨 주세요. 대신 이곳의 아름다운 풍경을 전합니다. 구독자님 함께 봐요.
7월의 마지막 날. 희정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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