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일기

29. 마흔 일기 / 친절

마음의 지옥

2023.10.31 | 조회 526 |
0
|
아주 사적인 마흔의 프로필 이미지

아주 사적인 마흔

위태롭지만 선명한 마흔의 글쓰기

구독자님 안녕하세요. 희정입니다.

31일까지 있는 달은 참 너그럽다는 생각을 했어요. 어제가 10월의 마지막 날인 줄 알고 이 글을 쓰다가 깜빡 잠들어버렸거든요. 눈을 뜨고 아침이 되었는데 아이들이 핼러윈이라고 기대하고 있길래 달력을 보니 10월은 31일 까지네요. 

10월 두 번째 편지를 보냅니다.

 


 

29. 마흔 일기 / 친절

마음의 지옥

 

 

지역 맘 카페에 친절한 가게를 찾는다는 글이 올라왔다. 외식 갔다 몇 번 마음 상한 적이 있다면서 친정한 사장님이나 종업원이 있는 곳으로 가고 싶다는 글이었다. 사람들은 댓글로 저마다 좋은 기억으로 남았던 동네 식당을 추천했다.

우습게도 바로 며칠 전 나 역시 친절한 편의점을 찾는다는 글을 올렸었다. 우리 집 바로 앞 편의점은 아이들 때문이라도 참새 방앗간 들리듯 가던 곳인데 이제는 거의 발걸음을 하지 않는다. 평소에는 그저 무뚝뚝한 분이시겠지 괘념치 않고 있었다가 어느 날 문 열고 들어가면서부터 나올 때까지 나 혼자 이야기하고 있다는 걸 깨닫고 난 후부터는 부러 친절한 곳을 찾아 조금 더 걷는 편을 택했다.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물을 열고 들어갈 때, 카드를 건네고 물건을 받아 나올 때, 문을 닫고 나올 때까지 내 인사는 받아주는 곳 없이 허공을 맴돌았다.

 

식당에 가도 종종 그런 기분을 느낀다. 특히 아이들과 친정 부모님을 모시고 젊은 사람들이 많다는 식당에 가면 확연히 느낄 수 있는데 그 불편한 감정은 한참이 지나도 소화가 잘 안된다. 우리가 여기서 환대 받고 있지 않는다는 느낌. 특별히 융숭한 대접을 바란 것도 아니건만, 눈길이, 손끝이, 말끝이, 차갑다. 덕분에 어린이와 노인이 돠 어린이는 돈을 내고도 사회적 약자가 되어 식당에서 눈치를 본다. 

 

어느 날은 카페에서 내 것을 다 주문하고 아이가 마실 것을 추가로 주문하려는데 황당한 대답을 들었다. 내가 어떻게 말했어야 직원에게 이런 대답을 듣지 않을 수 있었을까 아직도 정답을 모르겠다.

“우유 한잔 주세요. 스팀 안 해주셔도 되고 얼음도 빼주세요.”

“얼음 뺀다고 우유 더 드리지 않아요.”

“네? 우유를 더 달라고 한 게 아니라 너무 차가울까 봐 빼달라고 한 거예요.”

“아, 네.”

별스럽지 않게 대답하는 직원의 얼굴을 한참이나 뚫어져라 쳐다봤다. 화가 난다거나 싸우고 싶어서가 아니라 잠시 회로가 끊긴 것처럼 고장 나서 굳어버린 것이다. 메뉴판에는 우유가 있었지만 뜨겁게 나오는지, 차갑게 주는지 적혀있지 않았다. 뜨겁게 나오는 우유는 먹지 않고, 주스처럼 얼음을 담아서 나온다면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에 굳이 설명을 덧붙였던 건데 대체 내가 얘기한 어느 부분이 얼음을 뺀 만큼 우유를 더 넣어주길 바라는지 알 수 없었다.

'그래, 이 사람도 별의별 사람들 다 상대했으니 그런 거겠지, 얼음을 뺀 만큼 더 채워달라는 사람이 있었겠지.' 자리에 돌아와서도 계속 그 사람을 이해하려고 노력했지만 얼음을 빼달라는 모든 사람이 상식적이지 않을 거라 가정해서는 안 되는 것 아닌가.

내가 만난 불친절한 누군가가 앞으로 만날 모두가 되어버린다면 일하는 날들이 가시밭길 일 것이다. 여기서 주문하는 사람은 모두 비정상이고 합리적이지 않을 거라 가정하고 일하는 사람의 마음은 얼마나 지옥일까. 우리는 여기서 아주 잠깐 처음 만난 거지만 서로가 좋은 사람일 거라 믿으며 예의를 갖추고 친절할 수 없을까. 너무 당연한 것을 이제는 나만 당연하게 생각하는 시대인가. 혼란스럽다.

 

며칠 전에는 관리실에서 인터폰이 왔다. 3층인 우리 집 실외기에서 물이 떨어져서 1층 사람들이 연락했다는 거다. 2층은 아무 말도 안 하는 데 왜 1층에서 그러는지 의아했지만, 비둘기 때문에 실외기 쪽이 망가지는 경우가 왕왕 있던 터라 바로 수리해 주시는 분을 부르고 1층으로 내려갔다. 우선 불편을 끼쳐 죄송하다고 사과하고 조치를 취했으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얘기할 참이었다. 하지만 나는 문전 박대 당했다. 인터폰으로 얘기하시라며 차갑게 쏘아 대는 그 사람에게 사과할 마음도, 진행 상황을 알려줄 마음도 나지 않았다. 하지만 굳어버린 입을 가까스로 열고 나를 보고 있는지 듣고 있는지 모르는 문 안쪽에다 큰 소리로 인사했다. 사람을 불렀으니 조금만 참아달라고. 집으로 올라와 헤집어진 마음을 되돌리려고 한참 노력했다. 그래 무서운 세상이니까 그럴 수 있겠다 생각하자. 

 

이제 친절은 인스타그램 쇼츠에서 감동을 주기 위해 편집된 몰래카메라 같은 것으로만 확인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 같다. 내 주위에는 여전히 따뜻한 사람들이 많은데 사회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온도는 가을에서 겨울 즈음이다. 카페에서 내 주문을 받았던 그 직원도, 인사도 없이 화를 냈던 아랫집 사람도 그 주변인들에게는 따뜻한 사람일까. 뭐든게 오해였으면 좋겠지만, 그 카페는 다시 가고 싶지 않고, 1층 집 사람은 눈이 마주쳐도 인사도 없이 집으로 들어간다. 

나는 그들에게 친절로 대갚음해 주려고 한다. 분노하지 않음으로, 여전히 다정하게 대화하려고 노력하는 것으로 그들의 뒤통수를 간질이고 싶다. 그것만이 나를 잃지 않으면서 내 기분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다.

 

 

 


 

세상이 너무 뾰족해서 다정하고 친절한 사람들에게 회복하는 시간 필요한 것 같아요. 구독자님의 오늘은 친절한 하루였길 바랍니다.

23. 10. 31. 

희정.

 


 

💌문화다방 소식

 

신간이 나왔습니다.

오랜만에 신간이고 긴 시간 공들인 책이라 소식을 전하면서도 울컥해요. 후련해서인지 뿌듯해서인지 좋아서인지 잘 모르겠네요. 정식 발행은 15일이지만 11월 3~5일 언리미티드 에디션에서 가장 먼저 선보입니다. 저는 2층(i15)에 있어요. 놀러오실 분들은 꼭 연락 주세요. 뉴스레터 읽고 있다고 얘기해 주시면 작은 선물을 드리겠습니다.  

첨부 이미지

지금 내가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없는 상황이라도 미루거나 포지하지 않는다.

가벼운 마음으로 매일 할 수 있는 것을 한다.

좋아하는 것과 가까운 방향을 바라보면서.

 

《집에서 일하는 사람들》

▪️집으로 출근하는 일상 예술가들의 일과 생활의 균형

▪️문희정 인터뷰집

▪️150×210mm

▪️224페이지

▪️18,000원

 

 

첨부 이미지

열다섯 번째 언리미티드 에디션 - 서울아트북페어 돌아오는 11 3일부터 5일까지 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에서 열립니다. 올해 행사에는 다수의  참가팀, 여러 국가로부터  해외팀이 함께합니다. 220팀이 준비하는 새로운 책과 작업을 모두  자리에서 만나볼  있습니다. 15년째 매해 이어지며 조금씩 변화하는 ‘UE15’ 많은 기대를 바랍니다!📚📚📚

언리미티드 에디션 15 - 서울아트북페어 2023 #UE15

🗓기간 | 2023 11 3()~5(), 3일간

시간 | 3() 오후 12~7, 4~5(~) 오전 10~오후 6

📍장소 |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서울특별시 노원구 동일로 1238)

🖥공식사이트 unlimited-edition.org

*무료 입장

 

다가올 뉴스레터가 궁금하신가요?

지금 구독해서 새로운 레터를 받아보세요

✉️

이번 뉴스레터 어떠셨나요?

아주 사적인 마흔 님에게 ☕️ 커피와 ✉️ 쪽지를 보내보세요!

댓글

의견을 남겨주세요

확인
의견이 있으신가요? 제일 먼저 댓글을 달아보세요 !
© 2025 아주 사적인 마흔

위태롭지만 선명한 마흔의 글쓰기

메일리 로고

도움말 자주 묻는 질문 오류 및 기능 관련 제보 뉴스레터 광고 문의

서비스 이용 문의admin@team.maily.so

메일리 사업자 정보

메일리 (대표자: 이한결) | 사업자번호: 717-47-00705 | 서울 서초구 강남대로53길 8, 8층 11-7호

이용약관 | 개인정보처리방침 | 정기결제 이용약관 | 라이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