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일기

17. 마흔 일기 / 주말

우리는 주말마다 자란다

2023.04.20 | 조회 6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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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사적인 마흔

위태롭지만 선명한 마흔의 글쓰기

구독자님 안녕하세요. 희정입니다.

벌써 4월의 절반이 더 지났다니 깜짝 놀랐어요. 더 늦어지기 전에, 되도록 주말이 되기 전에 편지를 보내고 싶어서 오래 붙잡아 두었던 글을 보냅니다. 

구독자님이 원하는 대로의 주말을 보내시길 바랍니다.

 


 

16. 마흔 일기 / 주말

우리는 주말마다 자란다

 

4월이 되었다. 일 년 중 가장 바쁜 3개월의 시작. 뭐 대단히 바쁜 강사라고 바쁜 척을 할까 싶지만 워낙 내 처리 속도가 느려서 버거운 것뿐이다. 블로그에 글 하나를 써도 바로 올리지 않고 다음 날 꼭 다시 한번 읽어보는 숙성기간을 거쳐야 하는 사람이라.... 하다 못해 돈을 받고 코칭하는 글에 정성과 시간을 안 드릴 수가 없다. 그래도 한가했던 3개월 동안은 읽고 싶은 글만 읽고 쓰고 싶은 글만 쓰며 잘 쉬었다. 

이제 나에게 주말은 여유 없음과 동의어다. 그렇다고 아이들과의 시간을 포기할 순 없으니 (나에게 1순위는 언제나 아이들이다. 그게 내가 돈을 못 버는 가장 큰 이유라고 정당화하는 편.) 주말을 토요일과 일요일, 낮과 밤으로 네 등분해서 그중 절반은 아이들과 보내려고 한다. 보통 날씨가 좋으면 낮 시간을 아이들과 보내고 밤에는 카페로 나와 일을 하고, 특별한 계획이 있어서 다른 지역으로 넘어가는 날이면 하루를 통째로 가족과 함께 있고 다른 하루는 낮과 밤 세 시간씩 집을 지우는 식으로 일한다. 

많은 엄마들이 월요일의 고요함을 좋아하는 것처럼 나 역시 집안 식구들이 출근과 등교 등원을 끝마친 텅 빈 집안의 평화로움을 좋아한다. 차분하게 나 혼자 먹을 샐러드를 만들어 소파에 앉아 그릇째 들고 먹는 느긋한 평일의 감각이 좋다. 아무리 근사하고 재미있는 주말을 보냈어도 월요일이면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오는 이 익숙한 기분이 삶에 안정감을 가져다준다. 하지만 일주일 중 언제를 가장 좋아하는지 묻는다면 역시 가장 기다리는 건 주말이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어른과 아이 모두 각자의 시간을 촘촘히 채웠다가 무사히 맞이하는 주말의 맛. 그건 나에게 보상과도 같다. 비록 평일보다 더 쉴 틈 없고 더 힘들더라도, 주말만큼은 우리 넷이 뭉쳐서 무조건 즐겁고 싶다. 

 

 

토요일 아침은 느긋하게 시작하는 편이다. 남편이 지금보다 더 저밖에 모를 때, 그리고 아이들이 더 어렸을 때는 아이들의 기상시간이 곧 내 기상시간이었다. 어쩌다 아빠가 눈을 떴어도 아이들은 배가 고프면 굳이 자고 있는 나를 깨웠다. 이제 아이들은 엄마의 늦잠을 용인해 줄 만큼 컸고, 남편도 나와 다툼 없이 살 방도를 찾았는지 이제는 토요일이면 먼저 일어나 슬며시 문을 닫아주고 나갈 만큼 성장했다. (주말에도 점심때나 일어나던 남편에 대한 지리멸멸한 이야기는 넣어두도록 하자. 그럴 때면 나는 아이들과 더 멀리 달아나서 빈 집에서 깨어난 그를 어리둥절하게 만들길 좋아했다.)

토요일 아침이면 남편은 수년 째 케첩을 넓은 계란볶음밥으로 아이들 아침을 차려주고, 아들과 닌텐도를 한다. 오빠 게임기를 빼앗아서 한 번, 아빠 것도 한 번씩 빼앗아하던 딸이 그림을 그리거나 색칠공부를 하다가 그마저도 심심해지면 그제야 안방으로 들어와 나를 깨운다. 그때까지 죽은 듯이 잤거나, 밖에서 나는 소리를 못 들은 척 누워있던 내 하루는 그제야 시작이다. 

빵 두 조각이랑 방물토마토 몇 알을 접시에 담고, 커피 한 잔을 내려서 식탁에 앉아 혼자만의 늦은 아침을 먹으며 주말 일정을 짠다. 대략적인 계획은 있으니 몇 시까지 준비해서 나가고, 뭘 챙길지 혼자 머릿속이 분주한 시간이다. 남편은 주방에서 설거지를, 아들은 방에서 컴퓨터를, 딸은 티브이 앞에 각자 흩어져 있기 때문에 계획을 다 세우면 조금 큰 소리로 브리핑을 시작한다.

“모두 잘 들어요. 오늘은 청주 미술관에서 어린이들이 참가하면 좋은 행사를 하니까 거기 놀러 갈 거야. 저녁에 엄마는 일 하러 나갈 예정입니다.” 

“얼마나 걸려요?”

멀미가 있어서 차 시간이 중요한 아들은 항상 거리부터 붇는다.

“우리 자주 갔던 미술관 알잖아. 차로 30분 정도 가까워.”

한 시간이 넘지 않는 걸 알고 안심하는 녀석이다.

“일요일은 집에서 쉬다가 오후에 같이 카페에 가자. 진우 좋아하는 책 있는 곳. 거기  때는 각자 그림 그리거나 책 읽을 거 챙겨요.”

“거기 먼 나라 이웃나라 책 있는 카페요? 오예!” 

토요일은 좋아하는 체험에, 일요일은 좋아하는 북카페에 간다니 아들은 이번 주말 일정에 합격점을 준다. 주말의 계획은 오롯이 너희들을 위한 것이니 싫을 리가 있나. 

“그럼 난 카페에서 그림 그려야지. 장난감 가져가도 돼요?”

카페라면 케이크에 주스 먹을 생각에 신나는 딸은 인형이며 스케치북이며 한 보따리 챙길 태세로 주섬주섬 가방에 넣는다. 어차피 잠시도 엉덩이를 안 붙이고 있는 아이라 카페 뒤 운동기구가 있는 작은 공원에서 놀 게 뻔하지만.

“당신 카페에서 일할 거야?”

주말에 내가 나가서 일하는 시간이 가장 중요한 남편은 우리 일정 중 언제가 자신의 독박육아 담당인지가 최대 관심사다.

“토요일 밤까지 한 번 해보고 다 못하고 일요일에도 한 번 나갈게.”

대강 주말 일정이 공유되면 이제 옷을 입고 나갈 시간이다.

“긴 바늘 3에 오면 나갈 거야. 그때까지 이 닦고. 옷 입고. 챙기고 싶은 거 있으면 챙기고 해요.”

볼만한 전시가 있으면 동에 번쩍 서에 번쩍 긴 거리도 마다하지 않는 편이다. 청주에 내려와 살면서 가장 아쉽고 부족하다고 느끼는 게 문화예술 분야의 다양한 경험인데 우리의 주말은 대부분 그걸 채우는데 쓰고 있다.

 

 

남편의 무수히 많은 단점을 한 번에 커버해 버리는 장점이 있으니, 그게 바로 내 계획에 군소리 없니 따라오는 것이다. 우리의 주말 계획이 대부분 아이들 중심으로(사실은 우리 삶 전부) 돌아가는 것에도 서운해하지 않는다. 부산에 너무 괜찮은 전시가 있던데. 일박으로 여행 갈까? 동해에 북토크가 있어서 가야 되는데 금토일 여행 갈까? 거기 아이들이 가기에도 좋은 책방이야. 용인 여기 애들이랑 가면 너무 좋을 것 같아. 토요일에 가고 일요일은 집에서 쉬자. 

지금까지 내가 대한민국 어디를 가자해도 남편의 대답은 무조건 ‘그래’였다. 장롱면허 덕분에 10년 무사고인 나에 비해 남편은 운전하는 걸 좋아하는 편이라 2시간 정도 거리는 별로 힘들어하지 않는다. 역시 죽으라는 법은 없지. 그래 이런 거라도 뭐 하나 있어야 같이 살지 않겠나.   

아이들과 다시 오지 않을 화창한 주말 낮을 즐기고, 뛰고 구르며 보낸 뒤 돌아오는 차 안에서는 거의 반 수면 상태가 된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서 씻고 잠이나 자면 딱 좋겠다. 하지만 녹초가 된 몸과 쉬고 싶은 마음을 추슬러서 다시 일하러 가야 한다. 다행인 건 이제 엄마 안 가면 안 되냐며 내 바짓단을 잡고 울던 아이가 벌써 7살이 되었다는 거다. 6살 때만 해도 올 때 맛있는 거 사 온다고 달랬는데, 적어도 일하는 와중에 울며 전화가 와서 돌아오는 일은 없으니 그것만 해도 감지덕지다.  

 

 

예전에 북스테이를 운영했을 때는 주말마다 아이들과 함께 출근했었다. 다행히도 마당이 있어서 아이들이 노는 동안 입실 청소를 했는데, 흙 묻은 맨발로 다시 방에 들어오거나 쉬 마렵다고 깨끗하게 청소해 놓은 화장실을 쓰면 또다시 청소를 해야 했다. 아이들을 다시 내보내고 쓸고 닦고, 최종적으로 떨어진 머리카락은 없는지 사극 속 궁녀들처럼 허리를 숙이고 뒷걸음질을 하며 공손히 나왔다. 그렇게 몇 달을 지내다 보니 이제 슬슬 아이들이 지루해했다. 또 '9월의 집'에 가는 거냐며 어느 날은 놀이터에 가고 싶다, 어느 날은 그냥 집에서 쉬고 싶다 바라는 게 생겼다. 엄마의 일터에서 노는 것도 한두 번이지, 지금까지 마당에서 했던 물놀이로 그나마 잘 버틴 거였으니 지겨울 때도 되었다.

주말에 아이들과 여행 한 번 가지 못하고 계속 엄마의 작업실로 출근해야 하는 게 미안하던 차였다. 아이들도 원했지만 무엇보다 나에게도 주말이 사라진 것이 아쉬워서 고민 끝에 운영 방식을 바꿨다. 일주일에 한 팀만 받을 것. 평일에는 내가 작업과 수업을 하느라 투숙객을 받지 못하니 금-토, 토-일 두 팀을 받아야 했지만(청주는 관광도시가 아니라 그런지 대부분 1박 2일 손님들이었다.) 그러려면 아이들과의 주말은 포기해야 했다. 그래서 금토일 딱 한 팀만 받기로 했다. 2박 3일이면 고맙고 1박이어도 어쩔 수 없었다. 덕분에 한 달에 겨우 네 팀만 받는 무척이나 방만한 호스트가 되었다. 누가 보면 취미생활쯤으로 보일지 모르겠으나 나에게는 수익의 절반을 떼어서라도 아이들과 보내는 주말을 지키고 싶은 간절함이었다. 

 

 

4월 둘째 주 주말은 제주에서 보냈다. 제주북페어 참가를 위해 간 거였지만 사실 출장을 빙자한 여행이었다. 페어나 북토크  일 때문에 다른 지역에 가게 되면 항상 온 가족을 데리고 출동한다. 10만 원 받고 가는 북토크든, 숙소비만 겨우 벌어오는 북페어든, 나는 돈이 되지 않더라도 참가할 것이고, 아이들이 함께라면 출장이 아닌 여행이니까. 우리는 무조건 함께 떠났다. 그러면 얼마를 벌든 나에겐 남는 장사였다. 돈이 남든 경험이 남든 추억이 남든. 우리 안에 겹겹이 쌓일 테니까.  

제주북페어는 1회부터 참가했고 비교적 연령대가 다양한 페어라 특히 같이 가고 싶었다. 내가 하는 이 일에는 확실히 돈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어느 지점이 있다. 페어에 나가서 책을 팔고 있을 때마다 또렷하게 깨닫는다. 내가 파는 것이 책이 아니었다면 거기 서 있지 못할 거라는 걸. 뿌듯하고 즐겁지 않을 거라는 걸. 

한때 책이 아닌 것을 팔았을 때는 손님과 나눈 대화가 무척이나 유익하고 즐거웠음에도 그 사람이 아무것도 사서 나가지 않으면 화가 났다. 내가 그 사람에게 건넨 건 말이 아니라 시간이고 노동이었다. 우리가 즐거운 대화를 나눈 만큼 기분 좋게 목걸이도 하나 계산했으면 하고 바랐다. 매대에 서서 팔지를 껴주고 목걸이를 걸어주고, 보관방법까지 한참 설명했는데 결국에는 조금 더 둘러보고 오겠다는 사람의 등뒤를 따갑게 노려봤다. 매일 밥을 먹을 때면 그날의 매출을 고려해서 점심 메뉴를 골랐고, 옆 가게에 사람이 많으면 자괴감에 빠졌다. 오직 매출만을 목표로 하는 전쟁터로 매일 출근하는 것이 경쟁을 피하는 성향인 나에게는 맞지 않는 옷과 같다는  나중에야 알았다. 그때는 얼마를 벌든 수익과 상관없이 행복하지 않았다. 

하지만 책을 팔 때는 대화 자체가 소득이었다. 내 책에 대해서는 하루 종일이라도 얘기할 수 있는데 그걸 알아보는 사람, 궁금해하는 사람이 있다면 기꺼이 투머치 토커가 된다. 구입하지 않아도 괜찮다. 언젠가 도서관에서 문화다방의 책을 보고 반가워 할 수 도 있고, 친구의 SNS에서 발견하고 뒤늦게 주문해서 볼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옆 부스에서 책이 날개 돋친 듯 팔려도 자괴감 같은 건 들지 않는다. 책은 책의 운명이 있으니까. 이 자리가 아니어도 알아봐 줄 사람이 있을 거라 굳게 믿고 있다. 나에게 책은 단순히 물건이 아니다. 에세이는 그 사람의 인생이니까. 이 책에는 한 사람의 역사가 담겨있다. 그러니 물건을 팔 때와는 전혀 다른 마음가짐이 된다.

페어가 끝나면 항상 아이들과 함께 셋이 인증샷을 남긴다. 우주를 뱃속에 품고 참여했던 때를 지나, 하나를 안고 참가자 최초로 수유실을 요청했던 때를 지나, 뛰어다니는 우주하나를 쫓아다니느라 자리를 비워야 했던 시간이 더 많았던 때를 지나, 이제는 제법 엄마가 책을 파는 동안 각자의 방식으로 즐거움을 찾는 다니는 나이가 되었다. 우리는 주말을 통과할 때마다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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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밖은 아름다운데 보기 좋은 꽃 때문인지 알레르기가 기승입니다. 점점 더 독해지는 바이러스들로 여기저기 아프다는 소식도 많이 들리고요.

어제는 제가 인스타 스토리에 올렸던 책의 제목을 물어보시는 dm을 받았어요. 제목을 알려드렸더니 저에게 아프지 마시라는 감사 인사를 해주셨지요. 누군가의 건강을 바라고 아프지 않길 비는 마음이 이제는 그냥 인사로 들리지 않는 나이가 되었나 봐요. 좋은 하루 보내라는 말 보다 훨씬 더 무겁고 고마웠습니다.

건강한 4월 보내시길. 또 편지할게요.

 

23. 4. 20. 

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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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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