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전쟁을 시작하는 쪽에서는 '적국 때문에 누가 죽었다', '적국이 우리에게 어떤 피해를 끼쳤다' 하는 식의 명분을 내세우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로는 꼭 그 명분 때문만이 아닌 경우가 더 많습니다. 다른 이권 문제나 갈등으로 인해 전쟁을 하게 될 날만 준비하고 있다가 적절한 구실이 만들어졌을 때 그것을 핑계 삼아 전쟁을 시작하는 경우가 보통입니다. 이 명분, 구실, 핑계라는 것은 전쟁을 시작하는 속셈을 가리고 '그런 이유라면 전쟁을 할 만도 하지'라는 공감을 얻어야 하기 때문에 최대한 그럴싸해야 합니다.
1930년대 일본 군부는 그야말로 폭주합니다. 당시 일본은 관동군이 중앙 정부의 동의 없이 독단적으로 만주를 침략하는 등 정상적인 국가면 상상하기 힘든 수준으로 군부 마음대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이들의 야욕을 생각해 볼 때 중국과의 전쟁은 피해갈 수 없는 사건이었습니다. 이들은 적절한 명분이 생기기만을 침 흘리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명분은 굉장히 어처구니 없는 이유로 생겨납니다.
1937년 일본 관동군은 베이징 코 앞까지 진출하여 연일 군사훈련을 벌이며 무력 시위를 합니다. 언제 전쟁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던 1937년 7월 7일 밤, 총성이 들려옵니다. 이 총성에 대해 현재도 의견이 갈리는데 일본 측은 중국군이 발포했다고 주장하고 있고, 중국 측은 일본의 자작극이라 보고 있습니다.
총성이 들린 뒤 점호를 실시한 일본군은 일본군 병사 한 명이 실종되었음을 파악합니다. 사실 이 병사가 실종됐던 이유는 설사 때문으로, 점호 20분 뒤 무사히 복귀합니다. 하지만 이미 일본군 측에서는 중국의 공격으로 일본군 1명이 사라졌다고 생각하고 수색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복귀했지만 실종된 것이어야만 하는 애매한 분위기. 시미즈 대위는 도저히 상부에 이 병사가 복귀했음을 알릴 수 없었습니다. 결국 실종된 병사도 자기 자신을 수색하는 데 투입되는 코미디 같은 상황이 벌어집니다.
그리고 하필 이 때 일본 측 지휘관은 ‘무타구치 렌야’였습니다. 이 인물은 앞으로도 안 좋은 의미로 주옥 같은 활약을 펼쳐 일본의 패망을 앞당기는 인물입니다. 요즘 네티즌들로부터 ‘어둠의 한국광복군’으로 불릴 정도로 일본에 폐만 끼친 군인으로, 명언으로는 ‘나는 잘못이 없다. 부하의 잘못이다.’가 있습니다. 렌야는 공을 세우는 데 눈이 멀어, 한창 양국이 교섭하고 있던 중에 냅다 중국군에 공격을 가합니다. 어떻게든 중국과 전쟁할 꼬투리만 노리고 있었던 렌야와 일본군은 일을 최대한 키웠습니다. 결국 설사로 인해 한 병사가 20분 지연 복귀했던 것이 수백만의 전사자가 나오는 중일전쟁으로 번지고야 맙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들을 때 가장 궁금한 것이 지연 복귀한 병사의 심정이었습니다. 그저 배가 아팠을 뿐인데, 똥 좀 누고 왔더니 나를 핑계로 전쟁이 일어난다는 건 어떤 기분이었을까요? 나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힘을 얻으면 설사도 전쟁이 됩니다. 안심하고 화장실 갈 수 있는 세상이 될 수 있게 우리 모두가 노력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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