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을 디지털 센서로 사용하는 방법

이것이야말로 자연의 지혜...?

2025.02.01 | 조회 1.44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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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수많은 디지털 기기들을 활용합니다. 기기들을 다룰 때 우리는 대개 추상적인 인터페이스를 통합니다. 그 때문에 매일 접하는 기기라도 그 밑에 물리적 실체가 있음을 잊기 쉽습니다. 넷플릭스로 영화를 볼 때면 마치 허공에서 콘텐츠가 마법처럼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인터넷이 작동하기 위해서 태평양 깊숙한 곳에는 케이블이 있고, 그래서 그 케이블은 종종 상어의 공격을 받기도 하고, 그 케이블을 따라가다 보면 실제로 영화 파일이 들어 있는 장치가 있으며, 그것은 어떤 원판의 표면에 물리적으로 정보가 새겨져 있는 것이라는 모든 사실이 그 마법 뒤에 숨어 있습니다. 현대의 통신 기술이라는 것도 결국 어린 시절 실로 연결한 종이컵 전화기의 매우 정교하고 복잡해진 버전인 셈입니다.

2015년 기준 해저 케이블 설치 현황. 자료 출처는 이미지 내 표기
2015년 기준 해저 케이블 설치 현황. 자료 출처는 이미지 내 표기

컴퓨터가 1과 0으로 통신한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리적으로 어딘가에 전기가 흐르고 있고, 이 때 전압이 특정 값보다 높으면 1로, 특정 값보다 낮으면 0으로 추상화해서 컴퓨터가 작동합니다. 만약 다른 프로토콜을 적용한다면 전압이 아닌 다른 무언가로 1과 0을 나타내서 컴퓨터를 만드는 것도 가능은 합니다(그만큼 느리고 비효율적이겠지만요.). 

예컨대 꿀벌을 잡아다 꿀벌이 혀를 내밀었는지 내밀지 않았는지로도 1과 0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개에게 종 소리를 들려준 뒤 먹이를 주는 것을 반복하면 나중에는 종만 울려도 개가 침을 흘립니다. 개가 먹이에 침을 흘리는 것처럼 꿀벌은 설탕물에 혀를 내밉니다. 이런 원리를 활용해 꿀벌에게 폭발물 감지 훈련을 시킬 수 있습니다. 꿀벌에게 폭발물 냄새를 맡게 한 뒤 설탕물을 주는 것을 반복하면 나중에는 폭발물 냄새만 맡아도 혀를 내밉니다. 개에게 폭발물 감지 훈련을 시키는 데에는 수 개월이 걸리지만 꿀벌을 훈련하는 데에는 몇 시간이면 충분합니다.

꿀벌이 혀를 내밀었는지 내밀지 않았는지 감지할 수 있는 센서가 달린 카트리지에 훈련받은 꿀벌들을 고정시키고 카트리지를 기계에 장착하면 훌륭한 폭발물 감지 장치가 됩니다. 의심되는 물질에 청소기 같이 생긴 이 장치를 갖다대면 36개의 센서 중 어느 것이 반응하는지가 디스플레이를 통해 보이는데, 이런 인터페이스 뒤에는 칩이 아니라 36마리의 꿀벌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각각의 꿀벌을 서로 다른 물질에 반응하도록 훈련한다면 하나의 장치로 다양한 위험 물질을 동시에 탐지할 수 있습니다.

Inscential Ltd. 사의 Vasor 136. 이 기계 안에 36마리의 꿀벌이 들어갑니다.
Inscential Ltd. 사의 Vasor 136. 이 기계 안에 36마리의 꿀벌이 들어갑니다.

이러한 생체 센서 시스템의 효율성은 놀랍습니다. 36가지 서로 다른 물질을 탐지하기 위해 훈련견을 활용한다면 상당한 공간과 자원이 필요하겠지만, 꿀벌을 활용하면 한 손에 들어오는 장치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이렇게 말하니 왠지 광고 같은 느낌이 나지만 순전히 호기심으로 제작한 컨텐츠임을 밝힙니다(사실, 누가 이 글을 보고 저 장치를 사겠어요.).

첨부하는 Not What You Think 채널의 영상에서 실제로 벌들을 훈련하는 영상을 보실 수 있습니다.


더 알아보기

Not What You Think, 벌을 디지털 센서로 사용하는 것이 잔인한가요?
Bees as Biosensors: Chemosensory Ability, Honey Bee Monitoring Systems, and Emergent Sensor Technologies Derived from the Pollinator Syndrome
Wikipedia, Proboscis extension reflex
나무위키, 고전적 조건형성
Phys.org, New Bee Sniffing Technology Can Detect Many Dangerous Vapors At Once
Wikipedia, Sneakernet
나무위키, 해저 케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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