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칼로, 방사능 쓰레기를 10만 년간 숨길 방법을 찾아서

봉인술에 능한 분을 찾습니다.

2023.05.25 | 조회 7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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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삶에 양념 같은 지식을! '그런 건 어떻게 알았어?' 할 때 '그런 것'들을 전해 드립니다.

만화, 무협지, 판타지 소설 등에서는 '봉인'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아마 이쪽으로 가장 유명한 건 여우 요괴를 몸에 봉인한 나루토가 아닐까 싶습니다. 저는 드래곤볼의 전기밥솥이 먼저 떠오릅니다. 무시무시한 대마왕을 봉인한 게 전기밥솥이라는 뚱딴지같은 설정이 재밌었습니다. 봉인이라는 설정은 오래전부터 다뤄져서, 서유기에는 상대의 이름을 불러 상대가 대답하면 상대를 봉인하는 호리병도 나오고 이스라엘의 왕 솔로몬이 72악마를 봉인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져 옵니다.

이런 작품들에서 봉인을 사용하는 이유는 대개 상대를 죽일 방법이 없거나 죽여선 안 될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현실에도 죽일 방법이 없어서 봉인이 필요한 적이 있습니다. 방사성 폐기물입니다.

방사성 폐기물을 보통 저준위, 중준위, 고준위 셋으로 나눠 얘기합니다. 그리고 전체 방사성 폐기물 중 고작 3% 내외 밖에 되지 않는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이 문제가 됩니다. 엄청난 양의 방사능을 방출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버리는 쓰레기는 재활용되거나 생분해되거나 매립되거나 소각됩니다. 하지만 엄청난 방사능을 내뿜는 쓰레기란 것은 얘기가 다릅니다. 재활용이 쉽지 않고, 생분해를 시도하는 모든 생물을 피폭시킬 것이며, 대충 묻었다간심각한 환경 파괴를 일으킬 수 있고, 태운다고 방사능이 안 나오는 것도 아닙니다.

우주에 버리면 안 되나, 라는 창의적인 해결책을 생각하신 분들도 계실 수 있습니다. 이 영상은 왜 방사성 폐기물을 우주로 쏘아 보내면 안 되는지에 대해 설명합니다. 요약하자면 돈도 많이 들고, 로켓도 부족하고, 지구로 다시 돌아올 수도 있고, 태양에 버리기도 쉽지 않고, 로켓을 쏘는 데 실패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문제를 다 해결했다고 해도 결국 단 한 번이라도 로켓이 날아가는 중 터지면 대재앙의 시작입니다.

이 때문에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에 중성자나 레이저를 쏘아 핵변환을 일으키는 방법, 유리 구조 속에 가둬버리는 방법 등 많은 방법이 연구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방법으로든 어려움이 많아서 많은 나라들이 '오늘은 어려우니 내일의 나에게 맡긴다!'라는 마음으로 해결을 미루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핀란드가 행동에 나섰습니다. 그 방법은 앞서 얘기한 '봉인', 방사성 폐기물이 안전해질 때까지 가둬두는 것입니다. 물론 이 또한 쉬운 방법이 아닙니다.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이 안전해질 때까지는 10만 년의 세월이 필요합니다. 즉 10만 년 간 바깥으로 방사능이 새어 나올 일이 없는 매우 두껍고 매우 안정된 암반 지대가 필요합니다. 언제든 지진의 가능성이 있는 한국에서는 꿈꿀 수 없는 방법입니다.

핀란드 올킬루오토 섬은 이게 가능합니다. 이 지역은 10억 년이 넘게 지진도, 지각 변동도 일어난 적이 없을 정도로 안정된 화강암 암반 지대입니다. 6만 년 뒤 쯤 빙하기가 시작돼 2~3km 두께의 얼음으로 뒤덮일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 무게를 견뎌내는 것도 문제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핀란드는 이곳에 '은둔자', '숨겨진 곳'이라는 뜻의 '온칼로(Onkalo)'라는 시설을 짓고 있습니다. 이 온칼로가 방사성 폐기물을 심지층에 영구히 처분할 예정입니다.

다만, 나루토 몸 안의 여우 요괴도, 전기밥솥에 봉인된 피콜로 대마왕도, 결국 어느 시점에는 봉인에서 풀려 난다는 걸 우린 봐 왔습니다. 창작물에서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하지 말라는 짓을 하고, 가지 말라는 곳에 가고, 열지 말라는 것을 여는 게 인류가 역사 내내 해오던 짓입니다. 온칼로의 문은 10만년간 절대로, 절대로 열려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10만 년짜리 경고를 남기는 게 가능할까요?

글자라는 게 만들어진지 만 년도 안 됐습니다. 글로 경고를 남겨 봐야 10만 년 뒤의 후세가 우리 글을 이해한다고 확신하기 어렵습니다. 해골 표시 같은 걸 붙이면 어떨까요? '어린 사내아이를 귀엽게 이르는 말'인 '옥동자'를 지금은 섣불리 칭찬으로 쓸 수 없듯이, 그림 심볼도 얼마든지 의미가 변할 수 있습니다. 경고하는 소리를 내면요? 10만 년이면 온칼로에 접근하는 지적 생명체가 인간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들도 우리와 소리에 대해 비슷한 감각을 갖고 있을까요? 아예 접근하는 생명체를 공격하는 무기 같은 걸 설치하면 어떨까요? 아마 도굴당한 피라미드의 주인들도 그런 함정을 파두면 도굴 당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을 겁니다.

10만 년이라는 압도적인 시간 앞에서는 우리가 보내는 어떤 경고도 오해되거나, 무시 받거나, 오히려 유혹으로 보일 여지가 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는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경고를 고안해야 합니다. 이미 인류가 멸종한 뒤라도 그 다음 종의 안전을 지킬 경고를 남겨야 합니다. 어려운 일입니다. 혹시 기가 막힌 아이디어가 있으시다면 핀란드에 제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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