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되네...?

얼떨결에 대단한 발견을 해버렸던 사례들: 그래핀, 전자레인지, 하디-바인베르크 법칙

2023.07.30 | 조회 14.9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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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퍼노트

당신의 삶에 양념 같은 지식을! '그런 건 어떻게 알았어?' 할 때 '그런 것'들을 전해 드립니다.

어제는 최근 가장 뜨거운 뉴스였던 초전도체에 대해 간단하게 알아 보았습니다. 여전히 진위 여부에 대한 많은 논란이 있지만 다행인 것은 금방 확인이 될 예정이라는 점입니다. 과학 연구에서는 재현성이 중요합니다. 제가 어떤 놀라운 발견을 했다고 주장하더라도, 다른 사람이 실험 과정을 똑같이 밟았을 때 결과가 다르게 나타난다면 제 발견을 인정해 주기는 어렵습니다. 이 때문에 사기꾼들은 어떤 실험의 결과만 성공했다고 우기고 과정을 숨겨 놓고 있는다든지, 재현하기 까다로운 실험을 제시하여 시간을 벌어 두고 그 사이에 바짝 돈을 당기는 방법을 사용하곤 합니다. 이번 LK-99의 경우에는 찾아낸 방법을 깨끗하게 공개했는데, 전문가들에 의하면 이 방법을 재현하는 게 놀라울 정도로 간단해서 진위 여부가 금세 밝혀질 거라고 합니다.

양파에게 좋은 말을 해주면 욕을 했을 때보다 잘 자란다는 주장의 경우에도 재현성이 없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양파에게 좋은 말을 해주면 욕을 했을 때보다 잘 자란다는 주장의 경우에도 재현성이 없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때문에 만약 상온 상압 초전도체를 찾아낸 게 사실이라면, '왜 진작 이 방법을 찾은 사람이 없었지' 싶을 거라고 하는데요, 역사에 이런 사례는 또 없었을까요? 오늘은 의도치 않게 대단한 발견을 했던 사례들을 모아 보았습니다.

'그래핀'은 탄소 원자들이 육각형 모양으로 연결되어 평면 구조를 이루는 탄소 동소체입니다. 

구리보다 100배 이상 전기가 잘 통하고, 반도체로 주로 쓰이는 단결정 실리콘보다 100배 이상 전자를 빠르게 이동시킬 수 있다. 강도는 강철보다 200배 이상 강하고, 최고의 열전도성을 자랑하는 다이아몬드보다 2배 이상 열전도성이 높으며, 탄성도 뛰어나 늘리거나 구부려도 전기적 성질을 잃지 않는다. 이런 특성으로 인해 그래핀은 차세대 신소재로 각광받는 탄소나노튜브를 뛰어넘는 소재로 평가받으며 ‘꿈의 나노물질'이라 불린다

위키피디아, '그래핀'

이렇게 좋은 특성이 많지만, 평면 구조의 결정을 하고 있어서 불안정하기 때문에 실제로 생산해서 써먹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그러던 2004년 안드레 가임과 콘스탄틴 노보셀로프가 충격적으로 간단한 방법으로 흑연에서 그래핀을 분리해내는 데 성공합니다. 이 공로로 두 사람은 2010년 노벨상을 수상합니다.

'꿈의 나노물질' 그래핀의 구조
'꿈의 나노물질' 그래핀의 구조

그 방법은 스카치테이프를 흑연에 붙였다 떼는 것이었습니다. 안드레 가임은 금요일 저녁마다 진행 중인 연구와는 무관하게 재미 삼아 간단한 실험이나 연구를 하곤 했습니다. 하루는 '세상에서 제일 얇은 물질 만들어 보기'를 목표로 흑연에 스카치테이프를 붙였다 떼어 봤는데, 탄소 원자들이 육각형 모양으로 연결되어 평면 구조를 이루고 있음을 확인합니다. 기대도 안 한 그래핀을 흑연으로부터 분리해낸 것입니다. 일이나 하지 무슨 쓸데없는 짓이냐며 핀잔을 줄 수도 있었을 시간 덕분에 위대한 발견을 해내는데 성공했다는 점이 제가 이 이야기에서 특히 좋아하는 부분입니다.

1945년, 미국의 방위산업체 '레이시온'에서 일하던 퍼시 스펜서라는 사원은 새로운 레이더 기술을 위해 '마그네트론'이라는 장치로 실험을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실험 도중 스펜서는 출출했는지 마그네트론 옆에서 쉬면서 주머니에 있던 초콜릿 바를 먹으려 했습니다. 그런데 주머니 속에 있던 초콜릿 바는 모두 녹아 있었습니다. 스펜서는 혹시 이게 마그네트론 때문에 녹은 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흥미를 느낀 스펜서는 다른 음식들을 놓고 실험을 해봅니다. 옥수수를 놓고 실험해 보니 옥수수는 팝콘이 되었고, 계란을 놓고 실험해 보니 계란은 터져 버렸습니다. 스펜서는 극초단파를 수분에 쏘면 온도가 올라간다는 사실을 깨닫고 마그네트론으로 음식을 데우는 기술을 특허 출원했고, 레이시온은 이 특허를 사들여 최초의 전자레인지를 출시합니다.

1908년, 레지널드 퍼넷은 멘델의 유전법칙에 대한 강의를 하다 질문을 받습니다. 단지증은 우성 형질이고, 우성과 열성 유전자를 동시에 가지면 우성 형질이 발현 되니 세대가 거듭되면 사람들이 죄다 단지증이 되어야 할 것 같은데 왜 실제로는 단지증을 보기가 어렵느냐는 질문이었습니다. 퍼넷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했습니다. 이후 퍼넷은 친구인 수학자 G.H.하디와 밥을 먹다 이 이야기를 꺼내는데요, 하디는 중학생도 풀겠다면서 냅킨에 간단한 수식 몇 개를 적어 그 문제를 해결해 줍니다. 깜짝 놀란 퍼넷은 하디에게 논문을 쓰라고 권하는데 하디는 이게 무슨 대단한 발견이라고 논문까지 쓰냐며 시큰둥해 합니다. 결국 하디는 매우 귀찮아 하며 A4 한 장짜리 논문을 발표하는데 이것은 하디-바인베르크 법칙이라고 불리며 지금도 유전학의 기초 중의 기초를 이루고 있습니다.

'되는데요'를 혹시 기억하시나요? 네티즌들 간에 24인용 텐트를 혼자 칠 수 있느냐 없느냐로 논쟁이 붙었다가 '벌레'라는 닉네임을 쓰는 유저가 '되는데요'라는 짤막한 댓글과 함께 실제로 24인용 텐트를 혼자 쳐내는 것을 인증했던 사건이 11년 전에 있었습니다. 부정적인 말들이 유행어가 되는 사례들이 많지만, '되는데요', '오히려 좋아' 같은 긍정적인 유행어들에 아무래도 마음이 더 갑니다. 초콜릿 바가 녹으면 아무래도 기분이 나쁘기 마련인데, '오히려 좋아' 할 수 있었기에 전자레인지의 발명으로 이어질 수 있지 않았을까요? 긍정적인 마음으로 또 새로운 달을 맞이하시길 바라며 오늘의 페퍼노트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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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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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ㅇㅇ

    1
    about 1 year 전

    너무잼밌다

    ㄴ 답글
  • 행복하게 살자

    1
    about 1 year 전

    이번 초전도체도 이게 되네? 로 혁명을 가져다 줬으면 좋겠네요 ㅋㅋ

    ㄴ 답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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