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여러분? 한 주 동안 안녕하셨나요? 저는 너무 더워 죽겠습니다. 이따금 일어나서 에어컨을 틀고 잠드는 날들의 연속인데요. 제가 그렇다면 여러분들도 마찬가지가 아니실까 싶어서 이번에 퍼 올린 장아찌는 '납량특집'입니다.
납량 : 서늘함을 맞다.
우리가 흔히 쓰는 납량이라는 말엔 사실 공포나 귀신을 상징하는 의미가 하나도 담기지 않다는 사실 알고 계신가요? 여름이 걷힐 수 있도록 서늘함을 맞이하는 모든 행위는 납량이 될 수 있다고 하는데요. 피서나 휴가는 알아서 좋은 곳으로 가실 테니, 저는 클리셰에 가까운 오싹한 그 '납량'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여름을 알리는 시그널과 같았던 납량특집이 어느덧 방송국에서 자취를 감춘 것만 같은데요. 이불을 뒤집어쓰고도 기어이 보게 만들었던 서늘한 그 시절의 레퍼토리들을 함께 만나봐요. 우리!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던 그 시절 이야기 : 전설의 고향
납량특집 하면 뭐니 뭐니 해도 전설의 고향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공영방송 KBS는 우리의 소중한 수신료를 이용하여 여름을 버틸 스산한 한기를 선물했는데요. 한국 최초의 스릴러 드라마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이 이야기는 경기도 양평에서 전해지는 이야기입니다" 등으로 시작하던 인트로 문구를 통해 알 수 있듯, 전국 각지에 구전되는 이야기들을 각색하여 만든 호러 드라마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대체로 한을 품은 여성들의 등장이 빈번했던 것 같은데,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말을 더욱 공고히 하는 데에 일조한 프로그램이 아닐까 싶습니다. 납량특집 하면 전설의 고향이라는 평가가 괜히 생긴 것이 아닌 게 무려 1977년부터 1989년까지 12년간 안방극장의 한기를 책임졌던 효자(?), 불효자(?) 프로그램입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편은 역시 구미호입니다. 꼬리가 아홉 개 달린 처녀 귀신 구미호는 이 이후로 전설의 고향뿐만 아니라 다양한 소재로 재해석 되며 다방면으로 우리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습니다. 검색해보니 많은 사람들이 가장 인상적이라고 꼽는 건 이광기 아저씨가 절뚝거리며 따라오던 "내 다리 내놔" 편이라고 하네요. 다른 내용은 기억 안 나도 "내 다리 내놔"는 기억나는 걸 보면 모두의 뇌리에 강력하게 남은 다리 분실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전설의 고향은 70, 80년대 대대적인 흥행을 한 뒤, 90년대와 2000년대에 이르러 몇 번 더 우리와 함께했습니다. 하지만 CG의 발전으로 더욱 실감 나는 영상을 선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인기는 초반에 뭇 어린이들이 화장실을 못 가 발을 동동거리게 하던 그 시절에 비할 것이 못 되었습니다. 몇 년 전 여름이었던 것 같아요. 뭘 봐야 할지 모르겠어서 하릴없이 채널을 돌린다는 게 60번 대까지 갔는데, 전설의 고향을 해주더라고요. 우리가 흔히 보는 스릴러물에 비하면 조악하기 짝이 없는 분장에 허술하기가 이를데 없는 스토리였는데 자꾸 보게되더라고요? 납량특집이란 제게 취향이라기 보다는 추억의 영역이라 힘이 강했던 걸까요? 여러분도 한번 테스트 해보시라고 전설의 고향 한 편을 공유합니다.
여름철 스크린을 강타했던 공포영화의 향연
여름이 왔구나, 느낄 수 있는 상징적인 장소가 영화관이었던 시절이 있었던 거 기억하세요? 7, 8월이 되면 영화관 포스터가 온통 까맣고 빨갛고 얼룩져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공포 시리즈물로 한 획을 그었던 학원 스릴러 여고괴담부터 사극의 영향으로 만들어진 '아랑'과 '장화홍련' 등 포스터부터 오싹한 공포영화들이 영화관의 실내 온도를 낮추는데 이바지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다 똑같은 공포영화지만 한국 공포와 일본 공포 그리고 서양의 공포가 각각 달랐던 기억이 있는데요. 그 시절 귀신들을 한번 만나볼까요?
켜켜이 쌓인 한으로 가득한 처녀귀신, 한국
한국의 귀신들은 대체로 이유가 분명합니다. 구천을 떠돌 수밖에 없는 이유들이 있어요. 범죄에 연루 되었으나 그 일이 해결되지 않았다거나(아랑), 떠나기 전에 꼭 해야 하는 말이 있습니다. (여고괴담), 사연 없는 무덤 없다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알고 보면 함께 곡소리를 내게 되는 사연의 주인공들이 넘쳐나는 것이 한국 공포영화 귀신들의 특징이네요. 그리고 이 가련한 귀신들은 하고 싶은 말 다하고 나면 아련하게 가야할 곳으로 비교적 순순히 잘 갑니다.
네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일본
일본 귀신들은 비슷한데 달라요. 구천을 떠도는 덴 당연히 그만한 이유가 있으니 억울한 죽음을 당한 사람들이 대다수라는 건 공통점이지만, 이들은 살을 눈 감고 날리는 수준으로 마구잡이로 던집니다. 네가 억울하게 죽은 건 알겠지만, 그 옆집 사람이 왜 그렇게 시달려야 하는지는 당최 설명이 안 돼요. 힘들었겠다 싶다가도 공감해줄 여지를 어느 순간 잃게 되는 것이 열도의 한 많은 귀신들 특징이 아닌가 싶습니다.
건드리지 말라면 건드리지 좀 마세요, 미국
미국이라 그래야 할까... 암튼 서양인들의 공포는 하지 말라는 것만 안 해도 평화로울 것 같은 동네에서 자꾸 느닷없이 뭘 열고 건들고 하는 친구들에 의해 일어나는 경우가 많은 듯 합니다. 하지 말라면 좀 하지 말고... 이상하면 이사를 좀 가든가 하지... 집값도 별로 비싸 보이지 않는 동네에서 왜 그렇게 뻗대다가 아까운 목숨을 잃는 건지 당최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스트레스를 풀려고 보다가 하지 말라는 것만 골라하는 징글징글한 주인공들 때문에 되려 스트레스를 받게되는 게 서양의 공포였던 기억이 납니다.
정성 어린 공포 : 공포영화 홈페이지
엽기하우스가 성행하던 그 시절엔, 개별적인 홈페이지를 갖는 콘텐츠들이 정말 많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중 하나가 영화 홍보 홈페이지인데요. 지금처럼 QR도 뭣도 없던 시절, 영화 제목을 검색하면 가장 먼저 영화 관련 홈페이지가 떴습니다. '스승의 은혜'를 치면 '스승의 은혜' 를 홍보하기 위해 그 컨셉 그대로 스산하게 만든 홈페이지가 가장 먼저 검색되곤 했어요. 들어가서 눌러보면 인물들 하나하나의 사연도 알 수 있었고 어느 순간 팝업으로 튀어나오는 귀신들을 보며 화들짝 놀라기를 여러 번 했습니다. 영화와 관련한 후기와 기대 평을 남길 수 있는 공간도 따로 조성되어 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요즘처럼 왓챠나 네이버 영화 등에서 쉽게쉽게 원하는 내용만을 취하는 건 어려웠지만, 관심 있는 사람들만이 만들 수 있었던 오싹하고도 정다운 연대의 장이 매력적이었어요.
그 시절 홈페이지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 있을지 찾아보았는데, 아쉽게도 2004년의 기사만이 발견되었습니다. 기사를 읽어보니, 영화 홍보를 위해 만들어진 대부분 사이트들은 영화가 내려가고 나면 성인사이트로 둔갑을 하여 사람들에게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다고 하네요. 이건 저도 몰랐던 사실이었어요!
오늘은 그 시절 우리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던 납량특집으로 장아찌를 담가보았습니다. 자료를 모으며 '납량특집'을 검색하다 보니, 최근엔 '왜 납량특집이 사라졌을까?'라는 주제로 '납량'을 다루더라고요. cg의 발전으로 사람들이 어지간한 공포엔 놀라지 않기 때문에, 관찰 예능과 같이 자연스러운 프로그램이 유행하는 요즘 시기 트렌드에 맞지 않기 때문이라는 이유 등이 언급되었는데요. 가장 가슴 아팠던 내용은 현실에 다양한 범죄가 등장하면서 귀신보다 무서운 것이 사람이라는 생각이 깊어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었습니다. '납량'이 자아내는 서늘함이 사람들 사이로 흐르지 않는 시대가 온다면 좋겠습니다.
오늘 저녁은 전설의 고향을 한번 봐볼까 봐요. 분명 조악하기 짝이 없겠지만, 향수가 되어버린 전설의 고향은 허술한 그대로 매력이 있으니까요! 이런 방식의 납량이 아니더라도 더운 여름, 각자의 방식으로 납량하시길 바랍니다! 저는 다음 주 또 다른 이야기로 찾아올게요!
댓글 1개
의견을 남겨주세요
푸팀장
외국공포영화특 : 이사옴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