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R 담당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이 시기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주제가 있습니다.
바로 평가 시즌에 반복되는 갈등입니다. 직원들은 “평가 기준이 불분명하다”, “결과를 납득할 수 없다”라고 말하고, 관리자는 “공정하게 평가했는데 왜 받아들이지 못하는지 모르겠다”라며 답답함을 토로합니다.
불공정하다는 인식이 쌓이면 불만은 곧 냉소로 번지고, 조직의 성과 기반은 흔들립니다.
공정성이 확보된 평가 제도는 직원 몰입과 성과 창출을 동시에 끌어올리는 강력한 레버가 될 수 있습니다.
지금 HR이 마주한 과제는 단순한 절차 개선이 아니라, 신뢰할 수 있는 제도를 통해 공정성을 설계하는 일입니다.
공정성은 선언이 아니라, 제도가 보여주는 일관된 메시지와 행동에서 만들어집니다.
평가 신뢰도 저하가 조직에 미치는 영향
구성원이 평가 결과를 신뢰하지 못하면 성과 관리 제도는 제 역할을 하기 어렵습니다.
불공정하다고 느끼는 순간 결과에 대한 수용성은 떨어지고, 이는 곧 업무 몰입도와 동기 저하로 이어집니다. 평가가 오히려 불만을 키우는 장치로 인식되면 조직 성과를 끌어올리기는커녕 성과 관리 체계 전반이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HR은 평가의 공정성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구성원이 신뢰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신뢰받는 평가 시스템 구축을 위한 4단계 전략
평가의 공정성과 구성원의 신뢰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목표 설정부터 평가 기준, 피드백, 그리고 결과 활용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세심한 접근이 필요합니다.
1단계: 명확하고 공정한 목표 설정
목표의 적절성 확보가 첫 번째 관건입니다. 목표는 직무의 권한과 책임 범위 내에서 설정되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고객 서비스(CS) 담당자는 '제품 불량률 감소'가 아닌 '고객 대응 만족도 증가'를 목표로 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제품 불량률 감소는 제품 기획 및 생산팀의 책임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직무 권한과 자원을 넘어선 무리한 목표는 달성이 불가능하며, 에너지 낭비와 함께 구성원의 사기 저하 및 무력감을 유발합니다. 목표의 구체성 및 측정 가능성도 중요합니다. 목표는 얻고자 하는 '결과'를 '도전적'이고 '구체적'으로 정의해야 합니다. 목표 대상, 달성 수준, 방향성을 명확히 하여 ""하반기 매출을 00원 이상 달성한다""와 같이 구체적으로 서술해야 합니다. 질적 목표 역시 고객 만족도 점수와 같이 양적화시켜 측정 가능하도록 지표를 설정할 수 있습니다.
목표 난이도의 현실성을 고려해야 합니다. 목표 난이도는 조직의 최근 성과와 여유 자원(예산, 인력, 지식, 경험, 시간 등)을 고려하여 설정해야 합니다. 성과가 부진하고 자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도전적 목표(stretch goal)'는 패배주의적 태도를 야기하고 오히려 성과를 저해할 수 있습니다.
참여와 합의 과정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목표 설정은 상급자와 부하직원 간의 충분한 협의 과정을 통해 이루어져야 합니다. 일방적인 목표 할당보다는 목표의 목적이나 논리를 충분히 전달하여 효과적인 정보 교환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합니다.
2단계: 객관적이고 정확한 평가 기준 및 방법
역량 및 행동지표의 명확화가 필요합니다. 역량 모델링 단계에서는 통계 조사나 전문가 회의를 통해 도출된 역량의 적합성을 검토하고 수정해야 합니다. 평가 과제를 설계할 때에는 특정 직무에 유리하거나 불리한 내용이 제시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며, 이는 피평가자들의 불만과 수용성 저하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평가자 전문성 및 공정성 확보도 핵심입니다. 평가자는 사람에 대한 관심이 높고, 업무 성과가 뛰어나며, 올바른 소신과 철학을 가진 사람을 선발해야 합니다. 평가 방식의 객관성 유지를 위해서는 관찰된 행동을 긍정적/부정적 행동으로 분류할 때, 관찰 내용 자체와 평가자 개인의 의견을 명확히 구분해야 합니다.
HR 담당자들에게 왜 여전히 상대 평가를 고집하느냐고 물어보면, 가장 먼저 돌아오는 대답은 인센티브 재원의 한계입니다. 절대 평가를 도입하면 고성과자에게 지급할 보상을 위해 추가 재원이 필요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만큼의 여유를 확보하기 어렵다는 것이죠. 그래서 상대 평가라는 방식을 택해 저성과자의 몫을 줄이고, 그만큼을 고성과자에게 배분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입니다. 결국 제로섬 게임의 논리입니다. 문제는 이 제로섬 게임이 조직 내부의 경쟁을 지나치게 자극하고, 협력보다 개인 성과에만 집착하는 문화를 만들 수 있다는 점입니다. 상대 평가 제도가 성과를 끌어올리기보다는 불필요한 긴장과 갈등을 조장한다면, 관점을 바꿔볼 필요가 있습니다. 성과 중심의 문화를 유지하면서도 협력을 해치지 않도록 '보상과 연동하지 않는' 성장 중심의 절대 평가를 고려할 필요도 있습니다.
3단계: 효과적인 피드백 및 소통
적시성이 가장 중요합니다. 부정적인 피드백을 쌓아두지 말고 즉각적으로 전달해야 합니다. 오래된 피드백은 개선에 도움이 되지 않고 감정만 상하게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잦은 피드백이 뛰어난 피드백 스킬보다 중요합니다.
구체성 및 행동 초점도 필수적입니다. "잘 했어"와 같은 모호한 칭찬보다는 어떤 내용이나 행동이 성과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는지 구체적인 정보를 전달해야 합니다. "활발하게", "꼼꼼하게"와 같은 성격이나 기질에 대한 피드백은 방어적인 반응을 유발하고 변화하기 어렵기 때문에 피해야 합니다.
경청과 공감의 중요성도 강조해야 합니다. 고품질 경청은 상대방의 자기 통찰을 촉진하고 방어적인 태도를 감소시킵니다. 이는 '나에게 관심과 배려를 보여주네'와 같은 정서적 연결감과 긍정적인 감정을 통해 상대방이 마음을 열고 피드백을 수용하게 만듭니다.
상호 합의 및 지원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앞으로 실행해야 할 행동에 대해 상호 합의해야 하며, 일방적인 지시보다는 리더가 기대하는 행동과 긍정적인 결과를 전달하는 방식이 효과적입니다.
4단계: 평가 결과의 투명한 공개 및 활용
평가 결과의 투명한 공개가 필요합니다. 평가 결과를 구성원들이 접근하기 쉬운 방식으로 공개하고, 외부 전문가와의 성과 정보 공유도 확대되어야 합니다.
환류 및 제도 개선을 통해 평가 결과를 분석하여 사업 관리, 조직 관리, 예산 등에 반영하고, 미흡한 사업에 대한 개선 방안을 수립해야 합니다. 평가 결과를 차기 목표 재정립과 새로운 방향 제시를 위한 자료로 활용하여 문제 해결 능력을 증진하고 책임성을 확보해야 합니다.
정보 시스템 구축을 통해 성과 데이터가 체계적으로 관리되고 부서별 성과에 대한 분석이 가능하며, 이해관계자들과 성과 정보를 공유하기 용이하도록 성과 정보 시스템을 구축해야 합니다.
신뢰 기반 평가 문화의 구축
공정하고 신뢰받는 평가 시스템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모든 기업과 조직에 모두 적용할 수 있는 완벽한 평가 시스템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제도가 가장 옳으냐’가 아니라, ‘지금 우리 조직에 무엇이 가장 적합하냐’는 것입니다.
HR의 역할은 정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현재 조직의 상황과 맥락을 면밀히 진단하고 그에 맞는 평가 방식을 설계하는 데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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