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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고’(推敲)라는 말의 어원이 ‘밀고 두드린다’라는 걸 처음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잠깐 감격했다. 쓰는 일이란 곧 퇴고의 일, 어쩌면 사는 일도 그런 일. 철없는 문청이었던 나는 그때 제대로 밀고 두드릴 줄 몰랐고, 성급했고, 그래서 그 단어의 함의가 반가웠지만, 아직까지도 그런 서툰 날들을 퇴고하느라 계속 쓰는 중인지 모른다.
기록에 남겨야 할 자신들의 글감을 열가지 층위로 나눈다면, 아홉이나 열의 깊이에 해당하는 이야기는 적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일곱이나 여덟 정도의 깊이라면 충분하다고 했다. 아홉까지 내려간다면 고마운 일이지만, 그럴 수 없더라도 자책하지 말라고 했다. 글이란 적을 수 있는 때와 그럴 수 없는 때가 따로 있으니, 언젠가 쓰겠다는 마음을 품는 것만으로 지금은 충분하다고 했다. 지금 쓸 수 없는 나를 받아들이는 일은, 먼 훗날의 쓰기를 위한 보이지 않는 첫 페이지인지도 모른다고.
기시감처럼 무언가 정리를 해야 할 것 같은 때가 다시 돌아왔다. 올해 우리 사회가 적은 원고는 너무도 부끄럽고 묵직해 당장에 퇴고는 불가능할지 모른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가 적었던 부끄러움이, 더 나은 내일의 기록들을 위한 것이기를. 두드리고, 다시 또 두드려, 포기하지 않고 계속 두드려 언젠가 밀어 열리는 서로를 만나게 되기를.
# 스스로에게 해줄 말들
아이가 되레 잘못한 일을 떠올리며 “나, 아침에 유치원 늦은 적도 있고 동생이랑 싸운 적도 있는데?”라고 한다면, 어른답게 “사람이 그럴 때도 있는 거야. 하지만 전반적으로 봤을 때 너는 네 나이에 맞게 잘 자라고 있어”라고 해주었으면 한다.
아이의 1년을 쭉 정리해주면서 “너 대체로 괜찮은 아이야”라고 말해주면, 자기신뢰감도 강해지고 전체를 통찰하는 능력도 발달한다. 전체를 통찰하는 능력이 떨어지면, 작은 실패에도 크게 좌절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통찰능력과 자기신뢰감’이라는 선물부터 준비해 보는 것은 어떨까. 주의할 점은 “대체로 잘했다”라고 말할 때, 무조건 “넌 멋져”, “넌 괜찮은 아이야”라고 두루뭉술하게 말하지 않는 것이다. “구체적인 증거를 모아 봤더니 이러저러하다, 대체로 잘했다”식으로 말해야 한다. 그러려면 부모 먼저 숙제를 해야 한다. 아이의 1년을 돌아보고, 올 한 해 우리 아이에게 칭찬해 줄 일이 뭐가 있을지 구체적으로 적어 보아야 한다. 그런데 그러고 나면 분명히 저절로 “우리 ○○이 이 정도면 정말 1년 잘 살았네. 대견하다”라고 말하고 싶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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