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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불평등, 기후변화, 생태위기 속에서도 삶의 전환을 말하는 목소리는 묻히고 만다. 솔직하고 담대하게 진리를 얘기한다는 뜻을 가진 ‘파레시아’의 철학은 사라지고, 구조를 해석하고 주체의 해방을 기획하는 사회학적 지식 생산에 관한 논쟁마저 대학 안에서 형해만 남은 지 오래다.
서평은 책의 감상을 적은 독후감과 달리, 읽은 책과 대결하면서 사유를 통해 지식과 의미를 생산하는 활동이다. 저자와 독자들 사이를 오가는 책의 통로로서 편집자, 연구자들에게는 필수적인 텍스트다.
철학하는 이들에게 몇가지 당부드리고 싶어요. 첫째는 마음가짐. 철학을 몰라도 그 자체로 즐거워야 해요. 스펙 쌓기보다는 향유한다는 생각이 있어야죠. 두번째는 시간 관리인데, 기쁘고 재밌으면 시간 내는 습관이 저절로 만들어집니다. 셋째, 겁먹지 말 것. 어려운 책도 거두절미하고 먼저 보는 게 좋습니다. 넷째는 타인들과 함께 공부하기. 나이가 들어서 진부해지는 것을 막을 수 있어요. 마지막으로는 글쓰기. 읽고 난 뒤 결국은 글쓰기로 내 지식은 완성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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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터스위트, 달콤씁쓸함이란 갈망과 사무침과 슬픔의 감정에 잘 빠지는 성향입니다. 유한한 시간에 대한 뼈저린 의식이며, 세상의 아름다움에 호기심을 갖고 통찰하는 일의 즐거움입니다. 삶에는 빛과 어둠, 출생과 죽음, 달콤함과 씁쓸함이 서로 붙어있다는 아이러니를 인정하는 태도지요.
슬픈 음악을 듣고 행복감을 느끼는 이 별난 감정의 정체는 뭘까? 궁금했어요.
우울증은 일종의 막힘이에요. 어둠, 상실, 절망, 열등감, 좌절에 꼼짝없이 막힌 기분이죠. 달콤씁쓸함은 어둠만이 아니라 빛도 의식해요. 상실만이 아니라 사랑도 의식하죠.이질적 상태를 동시에 볼 수 있기에 아름다움에 반응하고 호기심과 즐거움을 느낍니다.
적자생존은 백인 상류층의 우월성을 선동했던 사회진화론자 허버트 스펜서와 그의 동료들이 처음 사용했어요. 다윈은 오히려 온화하고 멜랑꼴리한 영혼이었어요. 자연의 잔인성에도 불구하고 아픈 고양이를 핥아주는 개, 눈먼 동무에게 먹이를 가져다주는 까마귀 등에 주목했죠. 다윈에게 더 맞는 구호는 ‘선자생존’입니다. 그는 ‘인간의 유래와 성 선택’이라는 책에서 가족과 인류를 넘어 다른 종까지 연민 작용을 확대하는 것이 인간의 가장 고귀한 일이라고 주장했으니까요.
보통의 아이들도 눈부신 지평선을 보면 슬퍼해요. 떠나고 헤어지는 것을 힘겨워하죠. 그럴 때 ‘언젠가 다시 보게 될 것’이라는 말보다 더 위안을 주는 가르침은 작별의 고통이 삶의 일부라고 말해주는 거예요. 아이들이 우는 이유는 우리가 기만을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온전하고 문제없는 게 정상이며, 낙담, 병, 이별, 피크닉의 파리떼는 비정상이라는 강박을 버리세요. 덧없음에 대해 알려주는 것은 아이뿐 아니라 어른에게도 위안이 돼요. 시인 제라드 맨리 홉킨스는 ‘봄과 가을’이라는 시에서 소녀에게 이렇게 가르쳐요. ‘인간이 태어난 것은 시들기 위해서란다. 네가 슬퍼하는 것도 마거릿, 너 자신인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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