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의 거의 모든 뉴스들이 인간의 어두운 부분에 과도한 스포트라이트를 비춘다
타인에 대한 끝없는 의심을 생성하는 것은 엘리트, 지식인도 못지않다. 브레흐만은 20세기의 명저로 손꼽히는 <파리대왕>이 지나치게 비관적인 작품이라 생각한다. 윌리엄 골딩의 소설적 가정과 달리, 실제로 남태평양에서 일어난 소년들의 무인도 표류생활을 추적한 결과는 충분히 지혜롭고 현명했다는 것이다. 레베카 솔닛 역시 “엘리트들이 늘 타인을 의심하는 것은 사람들의 본성이 자신처럼 이기적이라 착각하기 때문이고, 그래서 자주 무력에 의존하려 한다”고 꼬집는다.
세상에 점점 희망을 잃고 불안하고 무기력해지며 나와는 다른 이들에게 적대감이 커지는 자신을 발견한다면 되돌아보자. 성찰과 대안 제시가 있는 성숙한 의견보다 분노만을 부추기는 의견들에 몰입되어 있지 않은지. 무책임하고 선동적인 뉴스들과 자제력을 잃은 SNS에 지나치게 노출되어 있지는 않은지. “모든 이의 가슴에는 선한 늑대와 악한 늑대가 있고, 둘 중 강하게 성장하는 것은 내가 먹이를 주는 늑대다”라는 체로키 인디언들의 우화를 되새길 때다.
# 목표는 승리가 아니라 플레이의 지속이다
사실 살면서 얼마나 성공했든 몇 번을 실패했든, 죽을 때 인생에서 이겼다고 공표되는 사람은 없다. 비즈니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승리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어쩌면 이것은 기준점의 충돌이다. 대개 인간은 단기적인 좌표로 움직이고 거기서 안정을 찾으려 하지 않던가.
맥가이버 칼로 유명한 스위스의 빅토리녹스의 CEO 칼 엘스너의 발언에 감동받았다. “영원히 좋을 수도 없고 끝없이 나빠지기만 할 수도 없다. 우리는 다음 분기가 아닌 다음 세대를 바라본다.”
우리는 인생에서 다수의 무한게임에 참여하는 플레이어라는 사실을 기억하라. 커리어는 그중 하나다. 양육, 우정, 학습 같은 게임에서는 절대 승자가 될 수 없다. 이기면 즐거워하고 지면 고통스러워한다. 하지만 계속해서 게임을 이어 나갈 수 있다. 우리는 생명이라는 무한게임의 유한한 플레이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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