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코지마 히데오의 창작하는 유전자> 코지마 히데오
- 책도 영화도 음악도 사람이 만든 것인 만큼 모든 것이 ‘대박’일 수는 없다. 오히려 90퍼센트는 ‘꽝’이다. 하지만 나머지 10퍼센트에 굉장한 작품이 존재한다. 나도 창작을 생업으로 하고 있는 만큼 그 10퍼센트에 들어갈 작품을 계속 만들고 싶다고 늘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나는 누군가가 만든 10퍼센트의 ‘대박’을 찾아내기 위한 감각을 계속 갈고닦고 있다. 그렇다고 특별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서점에 가서 인연을 느낀 책을 사서 읽는다.
- 아무튼 두 사람이 대화하는 마지막 장면이 아름답고 눈부시다. “단 한해의 여름 동안 자신이 한 것을 생각해 봐.”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내 것으로 만들지 못했어.” “만들었어.” “무엇을?” “인생이지.”
- 팔리는 것, 세상에 먹히는 것을 만드는 방법론의 하나로 과거의 성공 체험을 바탕으로 팔리는 요소를 도입하는 마케팅 수법이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는 하고 싶지 않다.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오늘이 영원히 오늘인 채로 있다면 과거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마케팅적인 것을 통해 만들어도 반응이 좋을지 모른다. 하지만 내일은 반드시 온다. 과거의 것이 그대로 통용될 리 없다. 어제의 경험은 하나의 선택지에 지나지 않는다. 어제 이랬으니까 오늘도 이럴 거라는 기대가 맞는 경우는 절대 없다. 하지만 어제까지의 경험이 있기 때문에 새로운 유대를 맺는 일에 확신을 가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듣는다. 미술관과 박물관에 가고, 사람을 만난다. 역사로부터 배워서 미래를 만들기 위해서는 이런 행위를 성실히 쌓아 가는 길밖에 없다.
# 애덤 드라이버는 왜 잘생겨 보일까
혹시 완벽한 미남이라는 것의 고전적 의미는 사라지고 있는 걸까? 우리는 완벽하게 좌우대칭으로 꽉꽉 채운 미남의 향연을 더는 스크린으로 보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대신 각자의 개성을 지닌 수많은 형태의 각기 다른 아름다움을 보고 싶어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에게 애덤 드라이버의 얼굴은 오직 얼굴이 아름답다는 이유만으로 스타가 되는 시대는 끝났다는 선언처럼 보이기도 한다.
# 아홉 살 꼬마가 기억하는 만큼만
딱 그만큼, 아홉 살 꼬마가 기억하는 만큼만 영화에 담기로 했다. 분쟁의 와중에도 서로 우정을 나눈 이웃들 이야기, 비극의 시대에도 희망을 놓지 않은 가족 이야기를 해보기로 했다. 카메라는 아이 눈높이로 낮게 두고, 조명은 최대한 자연광을 쓰고, 담담한 흑백의 화면에 단단한 인간의 아름다움을 채워넣었다.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 7개 부문 후보에 오른, 배우이자 감독 케네스 브래너의 역작 〈벨파스트〉는 그렇게 완성된 영화다.
혼자 겪는 일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혼자 겪는 일이 아니라는 걸 이 영화로 말해주고 싶은 것이다. 겁에 질려 서로를 경계하는 일, 막연하긴 했어도 막막하진 않았던 미래가 정전이라도 된 것처럼 갑자기 캄캄해지는 일. 같이 겪는 일이어서 오히려 훗날 함께 나눌 게 쌓이는 시간이라고 믿어보고 싶은 것이다. 너무나 근사하고 너무나 먹먹한 마지막 한 컷, ‘올해의 엔딩’이라 불러도 좋을 그 ‘한 사람의 흐릿한 초상’을 마주하며, 나처럼 당신도, 어떤 상실감과 모든 그리움이 위로받길 바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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