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희일비 #22] 완벽주의를 떠나보내며

2021.10.12 | 조회 3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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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곰의 일희일비

일희일비하는 우리의 일상에 대해 씁니다

사람을 무언가를 향해 달리게 만드는 것, 그러면서도 동시에 무엇과도 비교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멈춰버리게 만드는 것. 사람마다 그 '무언가'의 모양은 서로 다르겠지만, 저에겐 아무래도 '완벽주의'가 아닐까 싶습니다.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덕분에 더많은 것을 얻었지만, 또한 더 많은 것들에서 저는 한 번도 즐겁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오늘은 제가 일생 함께해온 그 완벽주의에 대해 써보고자 합니다. 부디 이번엔 안전이별 할 수 있기를 빌며.

 

오은영 박사가 진행하는 ‘금쪽상담소’라는 프로그램에 가수 초아가 출연했다. 그녀는 늘 ‘완벽주의’ 때문에 힘들었다고 했다. 완벽주의 덕분에 뒤늦게 시작한 연습생 시절에 더 빠른 두각을 나타낼 수 있었으나, 시간이 지나고 자신보다 더 잘난 후배들이 점점 치고 올라온다 느낄 때, 결국엔 절대 완벽해질 수 없다는 생각에 너무 힘들어졌다고. 오은영 박사는 그런 그녀를 향해 이렇게 말했다. 어린시절 부모의 부재로 인해 관심받고 싶어 하던 마음이 결국 인정욕구와 완벽주의 발전해, 더 잘하면 더 자주 사랑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키워왔을 거라고 말이다.

그리고 이 프로그램 속 초아의 모습을 보고 일견 ‘나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어 꽤나 힘들었다. 완벽히 같은 경험일 순 없겠지만, 나의 완벽주의 성향 역시 상당부분 어린시절의 경험에 기반해 자라왔기 때문이다. 나는 어린 시절 작은 동네에서 꽤나 똑똑한 아이로 인정받았다. 말도 빠르고, 성장도 빠르고, 늘 뭘 해도 빠른 나의 성취들은, 그리하여 쉽지 않은 빡빡한 현실을 살던 엄마의 자랑거리가 되어주었다.

그러나 중학생이 되고 사춘기가 시작될 무렵 나는 꽤 깊은 우울의 늪에 빠지고 말았다. 어떤 의미로든 불합리한 세상에 존재하고 싶지 않았고, 무언가가 되어야만 한다는 생각은 어린 나의 숨을 조여왔다. 그 시절 일기장에 ‘발코니에서 뛰어내리면 안아프게 죽을 수 있을까’ 따위의 무서운 말들이 종종 쓰여져 있기도 했다, 고작 14살의 내가 느꼈던 세상의 무게는 이처럼 너무나도 무거웠지만, 사실 더욱 무서웠던건 달라진 사람들의 시선이었다.

성적이 곤두박질치자 부모님이 나를 보던 눈빛은 기대에서 한심함으로 바뀌었고, 나를 대하는 선생님들과 친구들의 반응 역시 달라지기 시작했다. 나는 성적이 떨어져도 전혀 괜찮지 않았고, 그 등급에 따라 전혀 다른 인간으로 취급받는 경험을 했다. 그리고 그 시기를 겪으며 내 안엔 커다란 불안들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내가 살아있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남들 보기 좋은 성취들을 해내는 일이라는 것, 결국 뭔가 잘 해내지 못하면 나는 존재할 필요가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그 커다란 불안.

그래서 오히려 다시 열심히 살았다. 그 커져버린 불안을 채워나가려면, 무언가 해내는 수밖에 없었으므로. 그리고 다행히 좋은 담임선생님을 만났다. 선생님은 지금은 별로인 나를 탓하기보다, 나의 존재와 가능성을 믿어주고 칭찬해 주는 분이셨다. 그래서 나 역시 뭔가 해낼 수 있었던 언젠가의 나를 쉽게 찾을 수 있었고, 그렇게 다시 성적은 본래 궤도를 찾아 돌아왔다. 그리고 예상했듯이, 나의 성취가 다시 시작되자 돌아온 탕아처럼 나를 둘러싼 세상이 나를 보는 시선 역시 다시 따뜻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다시 가족의 자랑이 되었고, 그렇게 내 안에 심겨진 불안과 우울은 하얗게 잊혀져갔다.

그러나 무언가를 빠르게 성취해낼수록, 오히려 내 안은 더 빠르게 부식되어갔다. 무언가를 잘 해내도 하나도 뿌듯하지 않았고, 외려 지금의 이 성취마저 지키지 못할까봐 늘 불안했다. 누군가가 내 안의 ‘2등 시민’같은 모습을 볼까봐 늘 두려웠고, 그 두려움은 또다시 무언가를 성취해 내야한다는 압박감으로 나를 짓눌렀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감정을 억압하기 시작했다. 감정을 느낄 시간에 나는 더 많은 걸 해내야 했고, 남들이 보기 좋은 나라는 모래성이 언제든 씻겨갈까봐 노심초사했던 것이다. 늘 쫓기던 사는 삶은, 그리하여 겉은 딱딱하지만 단단한 마음의 기반은 없는 부실공사된 내면으로 내게 남겨졌다.

물론 덕분에 많은 것을 얻었다. 생각보다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었고, 무언가 해내다보면 더 빨리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그러나 어린 시절 나의 경험들은 꼭 중요한 결정을 할 때 나의 발목을 잡곤 했다. 두어 번 퇴사를 하고 다른 일을 할 기회가 있을 때도, 또한 남들과 다른 ‘내가 원하는 삶’을 선택하려 할 때도 내 안에선 늘 이런 의문들이 떠올랐다. ‘진짜 남들이 널 한심하게 봐도 괜찮아? 네가 지금보다 뭔갈 못해도 남들이 좋게 봐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대충 살면 대충 사는 만큼 뒤쳐지고 가까운 사람들도 너를 떠날텐데?’

이런 부정적 신념이 잘못됐다는 것도, 나 스스로 충분히 극복해 낼 수 있을 거라는 것도 알지만, 내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거나 인생의 큰 결정을 내리는 상황이 생길 때마다 나도 모르게 이런 말들에 발목이 잡힌다. 그리고 그때마다 한국 사회가 정해둔 트랙 위를 벗어나 누군가에게 손가락질 받는 스스로의 미래가 더욱 두려워져, 결국 나는 현재의 삶에 안주하는 선택을 하고야 만다. 어린 시절 내면에 낙인찍힌 말들의 힘은 이렇게 세서, 결정적인 순간마다 불쑥 튀어나와 삶을 멈추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바쁘고 고달팠던 부모님과 주변 사람들의 삶을 머리로 ‘이해’하는걸 넘어서, 내 마음 속 깊이 불편함으로 남아있던 어린 시절의 마음들까지 모두 관조적으로 볼 수 있는 상태가 되어야 진짜 나를 사랑할 수 있게 된다는 오은영 선생님의 말이 참 좋았다. 이렇게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그때의 생생한 배척의 감정들도 다 지나가고 결국 흘러갔구나 하고 '진심으로' 관조할 수 있을 때, 그리고 그 마음들에서 스스로 발을 빼 부정적 신념의 늪으로 들어가지 않을 수 있을 때, 진짜 내 삶을 살 수 있다는 사실. 그 사실이 그래도 나에게 '달라질 수 있다는' 작은 희망이 되어준 것 같다.

인생에 있어 큰 결정들을 해야 하는 요즘, 또다시 어린 시절 내면화한 비난의 목소리들이 자주 나의 발목을 자주 잡는다. 그래서 지친 심신을 다독이며 멈추어 쉬는 대신, 나는 매일을 더 나아가지 못하는 스스로를 비난하고, 내 선택에 의문을 가지며, 또한 내 삶 자체를 부정하는 일에 몰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흔들림들이 그 누구의 탓이 아니라 내 내면의 소리 때문이라는 것을 '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한 변화라고 생각한다. 어찌됐든 이 문제의 키는 내가 쥐고 있다는 사실. 달라지기 무척 어렵겠지만, 그럼에도 내가 손을 놓으면 언젠가는 스스로를 자유롭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 주는 희안한 위로감이라고 해야할까. 뭔가를 해볼수라도 있다는 건 참 다행스러운 일이니까 말이다.

삶이란 관성의 영역이라 아마 이런 스스로의 마음들을 관조할 수 있는 데까진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러나 위기는 기회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번 갈림길 위에선 불안에 이끌려 강박적으로 ‘남들이 옳다는’ 선택을 하는 대신, 진짜 내가 원하는 삶을 용기 있게 선택해보고자 한다. 결국 내 마음을 바꾸는 힘은, 부정회로만 돌아가는 내 머릿속의 예측들을 깨부술 ‘예측관 다른 결과들’을 경험하는 데 있으니까. 내 머릿속의 신념들에 반박할 다른 경험. 그 경험들이 결국 나를 구원할 것이라 믿는다. 내 관성적 불안에 균열을 내어줄, 새로운 나의 삶들을 고대하면서, 오늘도 다시 용기를 내 봐야지.

잘가라 완벽주의야. 그리고 잘가라 내 마음 속 상처받은 어린 날들아.

이제 나는 더 이상 그 때의 내가 아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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