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題]

두번째 편지

2022.05.14 | 조회 33 | 0 |

지금우리가함께가라앉는다면

그러니 우리는 떠나자

어제의 일들은 항상 후회로 남는다.

과거의 내가 했던 선택들을 곱씹다보면 왠지 모르게

민망해져서 얼굴이 달아오르곤 한다.

거리낌없이 뱉어내던 번지르르한 말들, 

이를테면 사랑이라던가 영원이라던가 하는 단어들의 의미를

하나하나 헤아려본다.

경험도, 확신도 없었으면서 나는 어떻게 거침없이 

그런 말들을 잘만 늘어놓았을까.

모든 게 뜻한 대로 이루어질 것만 같던 때의 치기어린 고백이었나.

어제의 내가 내린 무수한 결정도 나를 옭아맨다.

말끝의 어미만 바꾸었어도 떠나보내지 않았을 인연과

손 놓지 않았다면 그토록 허무하게 끝나지 않았을 첫 연애.

감정을 숨기는 법을 알았더라면 갈기갈기 찢어지지 않았을

엄마의 허름한 마음과 자꾸만 생채기를 내려고 하던 내 안의 또 다른 나.

 

과거의 선택이 모여 시간을 메우고,

그 시간은 겹겹이 쌓여 현재의 나를 일구어낸다. 

그러니까 나는 단면으로 분석할 수 있는 인간이 아니라, 

내가 자라오며 취하고 버렸던 감정과 내 곁을 지키던 사람들의 흔적으로

면밀히 지켜보아야 알 수 있는 존재인 것이다.

 

한때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하던 때가 있었다.

스스로를 불쌍히 여기고, 그렇게 패배자로 몰아

우울의 끝에 서 있으려고 하던 때가 있었다. 

실제로 타인이 나에게 던진 비수의 양과는 별개로

나에게만 너무 무거운 질타와 폭력이 주어졌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를 가시로 둘러싸고, 셀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송곳을 박아댔다.

온통 암울한 것들 투성이라고 느꼈다. 

눈을 들어 내 주위를 둘러볼 필요도, 그럴 힘도 없었다.

그때의 내가 했던 말과 선택에 대해 지금까지도 땅을 치고 후회한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내 모든 걸 바치고서라도 그렇게 할 것이다.

나만 아프다 믿었고, 그래서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었으며,

내가 다치게 한 사람들은 그 누구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었기에.

나를 너무나도 아끼는 사람들에게,

또 내가 가장 사랑해야 할 사람들에게 나는 가장 독하게 굴었다.

밀어내고, 찌르고, 최후에는 얼굴도 제대로 쳐다보지 않았다.

참 어리고 미숙했다, 나는. 그 사실을 알고 있어 눈을 더 부릅떴는지도 모른다.

증오는 사랑의 한가지 형태랬나, 그때의 나는 그런 것들을 알 겨를이 없었다.

 

지금의 나는 고개를 들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날카롭게 돋은 가시를 거두고 모자를 눌러쓰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되었다.

봄이 왔음에, 꽃이 피었음에 행복할 수 있는, 그런 사람.

또 나는 이제야 안다.

나를 웃게 하는 사람이 내 곁에 많다는 사실을.

과거에도 나를 보며 웃어주는 사람이 있었으나 내가 고개를 돌려

외면해버리던 것이라는 사실을.

마음의 한켠이 따뜻해짐을 느낄 때면 내 옆에는 항상 누군가가 있었다.

대체 할 수 없는 무해한 미소로 봄날의 햇빛을 안겨주는 아이,

나를 잘 모르지만 우선 무작정 좋아해주는 고운 결의 마음을 지닌 아이.

내가 매번 똑같은 시시한 장난을 쳐도 매번 성심성의껏 받아주는 아이.

그리고,

무조건적으로 나를 믿어주는 엄마.

가장 힘들 때에도 눈을 피하지 않고 끝까지 안아주던, 나의 엄마.

지금껏 혼자의 힘으로 능력껏 살아왔다고 믿었는데

그건 사실이 아니었다.

내가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쳇바퀴 돌아가듯 반복되는 따분한 학교생활 속에서

눈물 한번 흘리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결국

사람 때문이었다. 

친구들의 말이, 엄마의 눈빛이 살게 했나 보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세상에 드리워진 장막을 다 거두어갔나보다.

그걸 모르고 여태 난 내가 잘난 줄 알았다.

누구 도움 없이도 잘해왔다고 뿌듯해했으니까.

어김없이 또 후회다. 과거의 내가 떠올렸던 바보같은 생각들.

내가 가슴을 할퀴고 찔렀는데도 안 아픈척 어떻게 껴안아줄 수 있었어?

어떻게 나 안 포기했어

어떻게 나 같은 걸 키웠어, 엄마.

솟구치는 감정에 울컥할 줄도 아는 사람이 되었구나 싶다.

인간이 되려고 애쓰고 있다,

삶을 사랑하는 법을 배워보려고.

 

과거의 선택이 모여 시간을 메우고,

그 시간은 겹겹이 쌓여 현재의 나를 일구어낸다. 

그러나 현재의 나는 본질적으로 과거의 나와 다르지 않다.

변한 것은 나도, 나를 둘러싼 세상도 아니다.

변한 건 단지 내 고개가 향하는 방향일 뿐이다.

시간의 틈새로 후회는 여전히 들낙거린다.

물론 여전히 별 것 아닌 일에 상처 받고

별 것 아닌 일에 누군가의 마음에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아직도 사랑은 잘 모르겠고 아직도 감정은 복잡하기만 하다.

다만 나는 이제 안다.

이 모든 것에서 한발짝 떨어져 나 자신을 지켜보는 법을.

삶에 정면으로 충돌하고 나가떨어지는 내 유의미한 통증을

사랑하고 아끼는 법을. 

또 나는 이제야 믿는다.

나를 진심으로 좋아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나도 누군가에게 행복이 될 수 있다는 걸.

그래서 더는 후회에 집착하지 않는다. 과거의 내가 했던 일들에 머물지 않는다.

그때로 돌아간다면 나는 또다시 갈피를 잃을 게 분명하니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결국에는 똑같은 선택을 할게 뻔하니까.

무엇보다 내가 어떤 결정을 내려도

나를 사랑해줄 사람들이 있다는 걸 이제는 아니까.

나도 이제는 그들을 지킬 줄 알아야 한다.

 

 

과거에 매몰되어있던 감정들이 빛의 속도로 나를 향해 달려온다.

한달음에 달려가 그것들을 마중한다. 어서 나에게 안기라고,

얼른 내 품에 숨으라고 외치면서. 그런데 어쩐 일인지 그 감정들이

미세한 차이로 나를 스쳐지나간다. 그 덩어리를 바라보는 내 공허한 눈빛.

저것들이 과연 어디로 가는가,

이대로 내 슬픔과 우울과 웃음의 기억을 영영 잃어버린 것인가.

그런데, 저기 어딘가에서, 현실과 꿈, 바다와 하늘, 죽음과 삶의

경계 어디쯤에 반짝, 하고 무언가가 빛난다. 

불규칙적으로, 그러나 선명하게, 찬란하게 별처럼 수놓인다.

그제서야 나는 마음을 놓는다. 입가에 조소를 띄우고서

아, 저것들이 내 미래로 갔구나. 나를 지나쳐 내 미래로 떠났구나,

하며 스스로 되뇌이어 본다.

이제 나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그 감정의 덩어리가 사라진 방향을 향해 삶을 묵묵히 걸어갈 뿐.

부딪히고 무너지고 울고 고개드는 일을 반복할 뿐.

빛의 과거는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빛의 현재에는 무채색의 삶이 흘러가고 있다.

빛의 미래만이 환하게 웃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사실 그건 틀렸다.

한 발짝, 딱 한 발짝만 떨어져서 시간의 흐름을 내려다본다면

쉬이 알 수 있으니까.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특별히 빛바래거나 특별히 화려한 지점 따위는 애초에 없다.

내 삶은 언제나 발광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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