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님 안녕하세요.
오늘은 저의 오래된 병명 중 하나인 갑상선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갑상선에 문제가 있다는 걸 알게 된 건 결혼 초반이었는데요. 항진증과 저하증을 오가며 십 년 넘게 약을 먹었어요. 쉽게 에너지가 소진되고 몸이 붓는 등 즉각적인 신체 변화가 있긴 하지만 '고통'을 주지는 않은 병이라 골치 아픈 친구 정도로 생각하고 평생 잘 다스리며 살아가고 있었답니다.
심지어 갑상선을 '투병'이라 이야기하는 것은 좀 나약한 거라 여겼어요. 가끔 연예인들의 '갑상선 기능 저하증 투병 고백'이라는 기사 헤드라이트를 보면 마치 '꽃가루 알레르기로 매일 눈물 투병 중'이나 '겨울철 피부 건조해 간지러워 괴롭다 고백' 이런 느낌이었거든요.
누구나 크고 작은 질병 몇 개는 가지고 사는 거 아닌가? 라는 마음이 컸던 것 같아요. 그러다 최근에 조직검사를 받게 되었어요. 아직 결과가 나오지 않아 앞으로 이 글이 시리즈가 될지 아닐지 모르겠지만, 우선은 구독자님의 건강을 빌며 편지를 적어봅니다.
3. 산책하는 말들 / 아픈 몸을 살다
병을 안고 살아갈 용기
24. 1. 15 /조직검사
크기는 작지만 모양은 좋지 않다던, 오래 지켜보던 녀석의 조직검사를 했다. 목 왼쪽 아주 작은 크기 결절의 존재를 안지는 꽤 오래되었다. 초음파를 한 건 세 번째인가 네 번째 정도. 매번 아직은 더 지켜보자 결론 났는데 이번엔 달랐다. 더딘 속도지만 크기가 커졌다고 한다.
“5미리가 넘었으니 조직검사를 해보죠.”
“네.”
“크기는 작아도 모양이 나쁘다고 얘기 했었죠. 악성인지 양성인지 결과를 보고 앞으로 어떻게 할지 선택하게 얘기해 줄게요.”
“네네.”
그렇다니 그런가 보다 했다. 조직검사 후 좋은 결과와 안 좋은 결과의 차이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암이거나 암이 아니거나 라는 걸까. 악성이거나 양성이라면 뭐가 달라진다는 건가. 암이면 다 걱정해야 할 정도인 거고 아니라면 이전처럼 3개월에 한 번씩 검진만 받으면 되는 건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건 시술인지 수술인지 일까.
그러니까 지금 내가 얼마만큼의 불안과 걱정을 안고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지 묻고 싶었다. 하지만 병원이란 항상 너무 바쁘고 어렵고 조금은 두려워서 할 말을 잃었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 거의 다 도착해서야 질문할 것들이 생각나기 마련이다.
조직검사라는 말이 무언가 본격적이 되는 것 같아서 한 발 물러서고 싶었지만 딱히 안 하겠다 미룰 적당한 이유를 찾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내 이름이 호명됐다. 시술이 얼마나 걸리는지나 물어볼걸. 조금 있다 집에 올 아이 생각이 났다.
목에 마취 주사를 맞고 굵고 커다란 바늘이 두 번 정도 피부를 뚫고 들어갔다. 아프다기보다는 불편했다. 옷자락을 잡은 손끝에 힘이 살짝 들어가는 정도. 만약에 암이라면 앞으로 이렇게 불편하고 불쾌한 경험을 몇 번 더 하게 되겠지 같은 생각들을 하며 검사가 끝나길 기다렸다.
집에 와서 검사해 보니 조직검사는 두 종류가 있는데 내가 받은 건 두꺼운 바늘로 하는 중심바늘생검이었다. 다른 검사 방법도 있는지, 그 차이는 무엇인지는 역시 설명해주지 않았다. 우유를 사도 저지방인지 멸균인지 따져보는데 내 목에 들어가는 바늘은 고를 수 없구나.
암 일수도 있다. 결과는 최악을 상상하고 과정은 대책 없는 긍정으로 밀어붙이는 편이라 자연스레 안 좋은 쪽으로 기울었다. 불행을 모두 피해 가는 사람은 없고, 이게 내가 겪어야 하는 불행이라면 감당해야겠지 담담하다.
세상에는 평생을 괴롭힐 끔찍한 불행이 많은데 그래도 이건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서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어야 하는 종류는 아니니까. 차라리 다행이었다. 치료 방법이 있고, 천만다행으로 다른 가족이 아닌 내가 겪으면 되다니, 나쁘기만 한 일은 아니다.
그래도 암 일지도 모른다는데 보호자와 함께 오거나 (앞 순서 조직검사 환자는 가족과 함께 왔다) 눈물이 왈칵 쏟아져야 하는 건가. 블로그를 검색해 보니 조금은 호들갑 떨어도 괜찮을 것 같지만 아무튼 나는 괜찮았다.
암이 아닐 수도 있다. 암이라고 해도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결절이니 일찍 알아챈 것일 것이다. 지금까지 쏟아부은 보험비 이제야 거둬들인다고 생각하자. 억울해서라도 한 번 아프고 넘어가야 할 판 아니었나.
그래도 엄마에게 조직검사를 했다고 이야기하지 못했다. 검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잠도 제대로 못 주무실 텐데. 나는 괜찮아도 엄마는 괜찮지 않을 거라는 사실이 지금 가장 날 두렵게 하는 일이다. 내가 지금 내 목에 결절 보다 내 딸의 코감기가 더 신경 쓰이는 것처럼.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잠깐의 아픔도 내 딸은 겪지 않았으면 하는게 엄마에게 받은 뿌리깊은 모성이겠지.
검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다시 잘 먹고 잘 자야겠다. 요즘 잠을 못 잤더니 다시 임파선이 부었다고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 성실하게 하루를 보내며 결과를 기다려야지. 잘 자고 잘 먹고 내 옆에 사람을 사랑하며 읽고 쓰자. 그렇게 지내는 것 외에 별 다른 도리가 없거니와 그것만이 날 돌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두려움과 우울은 삶의 일부다. 아플 때 겪는 '부정적인 감정'이 따로 있지 않다. 살아내야 하는 경험들이 있을 뿐이다. 힘든 순간에 필요한 것은 부정이 아니라 인정이다.
아픈 몸을 살다
아서 프랭크의 <아픈 몸을 살다>의 한 부분인데요. 사실 제 글에서 쓴 '인정'과는 반대의 의미로 쓰인 글이에요. 아픈 사람은 명랑을 가장한다는 이야기지요. 두려움과 우울을 인정해야 한다고요. 아픈 사람에게 강요되는 긍정과 명랑에 대해 설명한 글인데 이 부분만 뚝 떼어 놓고 적으니 제 글과도 연결된 느낌이라 옮겨 봅니다.
다시 편지할게요.
:)
24. 1. 17
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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