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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시스 이야기는 우리에게 익숙한 나르시시즘과는 거리가 있다. 나르시스는 물에 비친 아름다운 모습에 도취된 나머지 손을 뻗어 그 대상에게 다가가려 한다. 그러나 물에 손이 닿을 때마다 생기는 파동으로 인해 그 아름다운 모습은 사라지고 만다. 결국 ‘변신’에 나온 나르시스 이야기의 핵심은 실체가 아닌 허상을 사랑하는 일의 고통이다. 허상을 사랑하는 사람은 아무리 그 사랑이 강렬해도, 혹은 그 사랑이 강렬하기 때문에, 끝내 충족감을 얻을 수 없다. 갈증을 달래기 위해 샘을 찾은 나르시스는 이룰 수 없는 사랑이라는 더 심각한 갈증에 시달리다가 죽게 되는 것이다. 타인이 아닌 자기 이미지를 사랑하는 일이야말로 허망한 일이라는 메시지, 이미지가 아니라 실체를 사랑해야 된다는 메시지, 이미지와 실체를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는 메시지가 거기에 있다.
자기 자신만 사랑했던 존재로서만 나르시스를 규정하는 일은 너무 가혹하다. 오비디우스의 ‘변신’ 어디에도 나르시스가 물에 비친 미소년이 다름 아닌 자기 자신임을 알아차렸다는 말은 없다. 나르시스는 끝까지 그 미소년이 타인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그는 자신이 아니라 타인(이라고 여겨진 존재)을 사랑하다가 죽은 것이다. ‘변신’에 나오는 나르시스는 타인에게서 자기 모습을 발견하고 사랑에 빠지는 이 세상 많은 연인들을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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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보면 옷매무새를 만지거나 머리 모양을 본다. 하지만 전 저를 본다. 내가 거품인가라는 생각을 한다. 예전에 예능 출연을 많이 할 때 나 자신에게 물어봤다. 내가 거품인가? 난 부활을 알리기 위해 나온 것이다는 생각을 했다. 작곡가도 마찬가지다. 거울 속 자신과 대화를 해야 한다." 부활 김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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