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m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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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사막은 '온전히 비어 있음'의 상태였다. 자기를 비워낸 사막을 볼 때마다 깨달았다. 우리 삶의 우기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자연도 인간도, 근원으로 돌아가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니까요. 삶에는 흙탕물로 흐려진 것들에서 과감히 등을 돌릴 때 보이는, 그런 시원(始原)이 있습니다. 사막을 보는 시간은 한 본질이 다른 본질을 무화시키는 시간이에요."
"문학을 '하다'라는 건, 내가 하는 문학이 결국 나의 삶을 변모시키는 걸 의미해요. 불완전한 인간인 작가도 자신이 쓴 문학작품에 걸맞은 사람이 될 때가 있어요. 작가가 완전하기 때문에 완전한 작품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지점이 있고 그 지점을 극대화해 글 쓸 때 완전한 작품이 나옵니다. 삶의 터득이 있어 쓰는 게 아니라, 쓰면서 터득하는 삶인 것이에요. 그게 문학의 육화일 겁니다."
문학의 감동은 '공감'에서 온다. "문학이란 생면부지 남이었던 존재에 접속하는 것, 타자의 삶의 '복부'에 숨어들어가는 것이에요. 더러 작품이 멀게 느껴지고 독자가 지나치게 되는 얘기도 있지만, 삶이란 바로 그곳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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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같은 강력한 트라우마 사건은 삶의 경험에 의미를 부여하는 신념의 토대를 부수기에, 트라우마 당사자는 존재와 정체성의 위기를 겪게 된다. 그리고 삶을 지탱하는 보호와 보살핌의 밖으로 내던져지는 경험을 한 당사자는 온몸에 기억된 말할 수 없는 고통과 비밀을 끊임없이 재경험하고 주목하면서 동시에 이 고통의 존재를 외면하게 된다.
슬픔에 사로잡힌 도시, 자포자기한 회색, 부옇게 바래버린 어머니의 눈빛에 지치면서도 자지러지게 노오란 은행나무를 발견하고 경탄하는 우리 안의 생명력과 미감이 우리를 지켜줄 것이다. 이전과 같은 찬란하고 오만한 청춘은 아니겠지만, 그 슬픔과 고통을 그대로 느끼고 기록하는 것, 그 균열과 진동조차 내 삶으로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트라우마가 강요하는 과각성과 무감각에 저항하는 길이며, 아물어가는 상처를 품은 채 살아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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