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란 바로 그곳에 있습니다

2023.10.31 | 조회 2.21K |
0
|

remem.

 

#

매번 사막은 '온전히 비어 있음'의 상태였다. 자기를 비워낸 사막을 볼 때마다 깨달았다. 우리 삶의 우기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자연도 인간도, 근원으로 돌아가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니까요. 삶에는 흙탕물로 흐려진 것들에서 과감히 등을 돌릴 때 보이는, 그런 시원(始原)이 있습니다. 사막을 보는 시간은 한 본질이 다른 본질을 무화시키는 시간이에요."

"문학을 '하다'라는 건, 내가 하는 문학이 결국 나의 삶을 변모시키는 걸 의미해요. 불완전한 인간인 작가도 자신이 쓴 문학작품에 걸맞은 사람이 될 때가 있어요. 작가가 완전하기 때문에 완전한 작품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지점이 있고 그 지점을 극대화해 글 쓸 때 완전한 작품이 나옵니다. 삶의 터득이 있어 쓰는 게 아니라, 쓰면서 터득하는 삶인 것이에요. 그게 문학의 육화일 겁니다."

문학의 감동은 '공감'에서 온다. "문학이란 생면부지 남이었던 존재에 접속하는 것, 타자의 삶의 '복부'에 숨어들어가는 것이에요. 더러 작품이 멀게 느껴지고 독자가 지나치게 되는 얘기도 있지만, 삶이란 바로 그곳에 있습니다."

원문

 

#

그해 은행나무의 노오란 빛. 왜 그렇게 살고 싶고, 죽고 싶고, 또 살고 싶었는지. 궁금하지만 내 기억의 소급은 노오란 빛 속에 용해되어 다시는 헤어나질 못했다. (…) 노오란 은행잎이 마지막 한 잎까지 떨어지듯 나는 내 속에 축적된 눈물만큼만 울면 된다.  

박완서 『나목』

전쟁과 같은 강력한 트라우마 사건은 삶의 경험에 의미를 부여하는 신념의 토대를 부수기에, 트라우마 당사자는 존재와 정체성의 위기를 겪게 된다. 그리고 삶을 지탱하는 보호와 보살핌의 밖으로 내던져지는 경험을 한 당사자는 온몸에 기억된 말할 수 없는 고통과 비밀을 끊임없이 재경험하고 주목하면서 동시에 이 고통의 존재를 외면하게 된다. 

슬픔에 사로잡힌 도시, 자포자기한 회색, 부옇게 바래버린 어머니의 눈빛에 지치면서도 자지러지게 노오란 은행나무를 발견하고 경탄하는 우리 안의 생명력과 미감이 우리를 지켜줄 것이다. 이전과 같은 찬란하고 오만한 청춘은 아니겠지만, 그 슬픔과 고통을 그대로 느끼고 기록하는 것, 그 균열과 진동조차 내 삶으로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트라우마가 강요하는 과각성과 무감각에 저항하는 길이며, 아물어가는 상처를 품은 채 살아가는 길이다.

원문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원문을 꼭 읽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다가올 뉴스레터가 궁금하신가요?

지금 구독해서 새로운 레터를 받아보세요

✉️

이번 뉴스레터 어떠셨나요?

remem 님에게 ☕️ 커피와 ✉️ 쪽지를 보내보세요!

댓글

의견을 남겨주세요

확인
의견이 있으신가요? 제일 먼저 댓글을 달아보세요 !

다른 뉴스레터

그냥 회복만 할 수는 없어 삶을 되찾아야 해

# 박경리 작가에게, 문학의 쓸모란 세상을 '바로' 보는 일이었다. 세상은 더럽고 치사하며, 협잡으로 가득한 난장판이다. 그러나 문학은 세상의 정면을 작가의 눈을 거쳐 독자에게 보

2024.10.24·조회 904

이제 책을 펼칠 시간이다

# '쓰고 읽기, 읽고 쓰기.' 그건 타자의 상처에 자신의 경험을 접촉하며 서로를 포옹하고 부축하는 일이다. 한강 문학 핵심이 여기에 있다. 우리는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국가대표

2024.10.14·조회 783·댓글 2

저 구석에 둥글게 몸을 말고 책을 읽는 사람이 있다

# 문학은 "아침에 슬펐어도 저녁 무렵엔 꼭 행복해질 거라고 말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당황스럽지만 계속 읽어본다. 오히려 문학은 "우리 자신도 고통이란 고통은 다 겪고 죽어야

2024.10.23·조회 750

불편한 걸 들여다보는 순간 내 세계가 넓어진다

# 같이 일하는 사이에서도 상대가 어떤 고통이 있는지 잘 이해하지 못한다. 그런데 소설을 읽다가 갑자기 나와 아무 상관도 없는 어떤 인물이 겪은 고통 때문에 마음이 한없이 뭉클해지

2024.05.09·조회 805

절박한 사람은 문장을 붙들게 되어 있어요

# 책이라는 매체 자체의 고유성을 부정하는 사람은 사실 적어 보인다. 누구나 책을 사랑하고, 사랑할 준비는 마쳤다. 내가 고르는 모든 책이 타인도 휘두른 명품일 필요는 없다. 또

2024.07.03·조회 760

인생은 때로 책으로 인해 향방이 결정된다

# 행동이 그 형식을 찾아내고 최후의 말들이 발음되고, 존재들이 존재들에 어울리고, 삶이 송두리째 운명의 모습을 띠는 그 세계가 바로 소설이 아니겠는가? 소설의 세계는 우리가 살고

2024.07.19·조회 659
© 2026 remem

영감을 주는 메시지.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좋은 문장들.

뉴스레터 문의remem@remem.so

메일리 로고

도움말 자주 묻는 질문 오류 및 기능 관련 제보

서비스 이용 문의admin@team.maily.so 채팅으로 문의하기

메일리 사업자 정보

메일리 (대표자: 이한결) | 사업자번호: 717-47-00705 | 서울특별시 송파구 위례광장로 199, 5층 501-8호

이용약관 | 개인정보처리방침 | 정기결제 이용약관 | 라이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