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희일비 #19] 핑계를 멈출 때 삶이 시작된다

2021.10.01 | 조회 331 |
0
|

람곰의 일희일비

일희일비하는 우리의 일상에 대해 씁니다

길은 어딘가에 있겠지, 하고 쿨하게 집구하기 전선에 뛰어든 저는 많은 친구들의 진심어린 조언 덕분에 한동안 넉다운이 되어있었습니다. 생각보다 보통이란 말은 참 힘이 세더군요. 보통처럼 살고, 보통처럼 생각하고, 보통의 미래를 꿈꾸는 일. 그런 일에 관심없다고 생각했지만, 그만큼도 살기 힘든 현실 앞에 설때면 종종 보통이란 말에 집착하게 되는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은 그 '보통만큼' 때문에 힘겨웠던 지난 몇주간의 마음에 대해 써봤습니다. 부디 보통때문에 힘든 많은 이들에게 작은 위안이 되길 빌며.

 

애인과의 동거를 준비하면서 여러모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내 손에 쥐어진 몇푼 안되는 돈과 끝없이 치솟은 집값 덕분에 ‘내 몸 뉘일 곳 없는’ 현실에 대해서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고, 그냥 ‘같이 살자’고 합의하는 것 이상으로 함께 사는 일에 고려해야 할 점이 많다는 사실도 깨닫게 됐다. 호기롭게 ‘가자’고 외쳤던 건 난데, 정작 이 결정의 무게를 질 준비가 되어있는지 점점 자신이 없어졌다.

 

사실 처음 결정을 내릴 때는 오히려 수월했던 것 같다. 휴무가 평일인 애인과 조금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며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선 우리가 ‘물리적인 결합’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오가는 시간, 휴무 조정 같은 스트레스를 피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그냥 저녁을 먹으며 하루 일과를 이야기 할 수 있는 ‘우리만의 시간과 공간’을 갖는 일 뿐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의 동거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말들도 처음에는 동거를 쉽게 결정하는 좋은 ‘핑곗거리’가 돼주었다. 굳이 왜 남들 보기 안 좋은 선택을 하냐는 말 때문에 오기가 생겨 더 멋지게 같이 살아보고 싶기도 했고, ‘something new’가 없는 오래된 연인이 되어버린 우리에 대한 걱정 어린 시선들도 ‘넥스트 레벨’로 나아가기 위한 나의 욕망을 자극했다. 남들이 다 그렇다는데 나는 아닌데? 하고 반문하고 싶은 반골기질이 나의 생득적 특성이기도 하니, 이런 말들이 오히려 나의 결정에 불을 붙여주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 ‘오기’ 때문이었을까? 나의 결정을 들은 주변 사람들의 걱정어린(?) 말들이 더 많이 쌓여갈수록 나는 점점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어떤 이들은 사람과 사람의 결합이란 결국 경제적 공동체가 되기 위한 결정이므로 더 나은 삶을 보장해주지 않는 나의 선택이 결국 나를 불행하게 할거라 말했다. 또 어떤 이들은 누군가와 같이 사는 행위 자체를 쉽게 결정하면 안 된다고, 돌이킬 수 있다면 지금 이 순간 뿐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런 걱정 어린 시선들은 다시 자신감을 잃어가는 나에게 좋은 핑곗거리가 되어주었다. 이 모든 결정이 결국 나의 몫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그들도 결국 자신의 한계 안에서만 경험하고 조언할 수 있다는 사실을 지우는 좋은 핑곗거리 말이다.

 

‘남들은 그렇다더라’를 한두 번 들을 때는 ‘뭐 그러던지 말던지’라고 치부해 버릴 수도 있지만, 이 말들이 여러 루트를 통해 자주 들리기 시작하면 ‘사회적 동물’인 인간의 특성(혹은 한계) 상 ‘나는 정말 이상한가?’라고 스스로에게 되물을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러한 ‘남들 다 그렇게 산다’는 말들은 스스로의 선택에 대한 불안을 키우고, 또 이 불안들이 타인의 조언을 불러들이는 악순환의 고리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불안은 그 자체로 힘이 세서, 결국 ‘객관적 시선’이라는 당위를 핑계로 스스로를 더 옥죄게 된다. 애초에 보통의 삶을 꿈꾸지 않았으면서, 자꾸 ‘보통’이란 말을 입에 올리게 된 나처럼 말이다.

 

그렇게 자꾸 ‘타인의 시선’이란 핑곗거리를 만들다 보니 결국 과도하게 스트레스를 받아 몸도 마음에도 탈이 났다. 그래서 최근에는 잠도 잘 못 자고, 판단력도 분별력도 다 흐려진 채 내가 제일 싫어하는 ‘똑같은 말로 자꾸 징징거리는’ 짓을 가까운 이들에게 되풀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모든 생각들을 멈추고, 원점에서 스스로에게 되묻기 시작했다. 남들 생각 말고, 내가 진짜 원하는 건 뭐지? 그리고 그 시간을 거쳐 얻은 결론은, 결국 이 모든 것들을 결정하는 건 나고, 이 결정이 인생을 돌이킬 수 없게 망칠 만큼 대단한 일도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원점으로 돌아와 생각해보니, 결국 이 모든 문제의 본질은 나의 선택에 달려있던 것이다. 단지 큰 결정을 앞두고 생긴 자연스러운 불안에게 내가 타인의 조언과 남들처럼 사는 삶이란 먹잇감을 너무 많이 던져주고 있었을 뿐.

 

이런저런 조언들 때문에 힘들어하는 나에게 가장 친한 친구가 해준 말처럼, 결국 내게 조언을 해주는 이들도 나와 같은 선택을 하고 살아내 본 경험이 없다. 그리고 삶으로 직접 살아내 본 적 없는 일에 대해 조언을 듣는 건 무의미한 일이기도 하다. 나에게 조언을 해준 친구들은 대부분 비슷한 삶을 살아온 사람과 정해진 수순대로 결합했으니, 나처럼 다른 선택을 해본 적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주변의 누군가가 나와 같은 선택을 했다가 실패했다면, 그들의 불행이 더욱 큰 인상을 남겼을 것이다. 인간은 원래 이익보다 손실에 더 민감한 동물이니 말이다. 그러니 이들의 입장에선 자신이 해온 선택과 배치되는 삶을 걸어가고자 하는 내가 진심으로 걱정될 수밖에 없었을 테고 말이다.

 

그래서 이제 더이상 ‘남들은 그렇다더라’는 핑계를 대지 않고, 스스로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물으며 나아가기로 다짐했다. 이건 내 삶이고, 또한 내 선택이니, 최소한 나랑 비슷한 길을 걸어가 본 적이 있는 사람들에게 조금 더 ‘구체적으로’ 질문해보면서 살기로 말이다. 그래서 앞으로는 굳이 내 안의 불안을 키우지 않고, 그렇다고 남들 핑계 대지도 않고,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더 깊이 고민해볼 생각이다. 결국 타인, 사회, 혹은 내면화된 타인의 욕구들을 거둬내고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해보는 일이 내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일일 테니 말이다.

 

본질은 결국 내가 원하는 삶을 선택할 수 있는 용기다. 그리고 그 선택의 무게와 딸려올 진실 때문에 자꾸 남들을 핑계로 도망치는 건 스스로에게 비겁한 행동일 뿐이다. 어쩌면 남들의 생각이란 핑계를 벗어던진 순간에야 진짜 자신의 삶을 시작할 수 있는 건 아닐까? 내 선택이 남들 보기 ‘삐까뻔쩍’하지 않더라도, 진짜 내가 원하는 일이라면 선택의 결과를 충분히 인정하고 받아들이겠다는 마음, 그 마음이야 말로 진짜 나다운 삶의 출발선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핑계를 멈추면, 드디어 내 삶이 시작된다.

 

이 말의 무게를, 고통스러운 시간을 헤쳐가며 배운 이 말의 힘을, 끝까지 잊지 않을 수 있기를.

 

 

 

다가올 뉴스레터가 궁금하신가요?

지금 구독해서 새로운 레터를 받아보세요

✉️

이번 뉴스레터 어떠셨나요?

람곰의 일희일비 님에게 ☕️ 커피와 ✉️ 쪽지를 보내보세요!

댓글

의견을 남겨주세요

확인
의견이 있으신가요? 제일 먼저 댓글을 달아보세요 !

© 2024 람곰의 일희일비

일희일비하는 우리의 일상에 대해 씁니다

자주 묻는 질문 오류 및 기능 관련 제보

서비스 이용 문의admin@team.maily.so

메일리 (대표자: 이한결) | 사업자번호: 717-47-00705 | 서울 서초구 강남대로53길 8, 8층 11-7호

이용약관 | 개인정보처리방침 | 정기결제 이용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