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희일비 #20] 교환일기 쓰는 남자

2021.10.04 | 조회 7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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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곰의 일희일비

일희일비하는 우리의 일상에 대해 씁니다

벌써 1년 째, 두 그룹의 친구들과 이메일로 '교환일기'를 쓰고 있습니다. 다 커서 무슨 초등학생 마냥 교환일기야? 하고 놀라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인스타 속 사진 몇 장 보다 더 깊은 서로의 속내를 알 수 있기에 이 일기를 쓰는 내내 저는 무척이나 행복해진 것 같습니다. 누군가를 궁금해 하는 일. 이 한 문장을 삶의 동력으로 살아온 사람으로써 더 많은 이들이 저처럼 가까운 이들과 교환일기를 써보는 삶을 꿈꿔봅니다. 서로의 깊이를 알아가는 것. 친구가 된다는 건 아마도 그런 게 아닐까요?

작년 말부터 두 그룹의 친구들과 교환일기를 쓰고 있다. 교환일기라고 하면 초등학교 때나 쓰던 유치한 말장난 정도가 떠오를 수도 있을 텐데, 2020년 버전의 교환일기에는 ‘이메일’이라는 최첨단(?) 도구가 사용된다. 방법은 간단하다. 교환일기 구성원들은 돌아가며 자신의 일상과 생각들을 쓰고, 정해진 기간 내에 이전 사람이 보낸 메일에 답을 해야 한다. 물론 정해진 기간을 넘긴다고 벌금을 물거나 감금되진 않겠지만, 우리는 우리의 우정을 소중히 해야한다는 ‘공공선’을 어긴 양심의 가책을 반드시 느끼게 만든다. 요즘 많이 바쁜가보다 하고 묻는 무언의 압박과 함께.

교환일기를 시작한 첫 그룹은 <사소한인터뷰>에서 함께 활동한 동갑내기 친구들이었다. 이들은 내 취향과 과거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친구들이기에, 지난 일 년 간 이 교환일기를 쓰는 내내 무엇보다 가장 솔직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우리가 나눈 일 년 간의 기록들을 돌아보니, 내 안에 이토록 수많은 날것의 감정들이 오고 갔다는 사실이 새삼스레 놀랍기도 했다. "내가 이렇게 솔직하게 찌질할 수 있다고?" 라는 말이 절로 나올정도로 말이다. 어느 날은 가족 간의 갈등 때문에 지치기도, 또 어느 날은 내 위치에 대해 불안해하기도 했다. 또다른 어느 날은 사랑받는 법을 배운 내가 기특하기도 했고, 또 어떤 날엔 겉으로 드러내지 못했던 내 가장 어두운 면에 대해 쓸 용기를 내기도 했다. 이 모든 '용기들'은 모두 나를 이해해 줄 수 있는 가장 안전한 장소가 되어준 친구들 덕분이었다. 그리고 이 '날것의' 기록들 덕분에 나는 친구들 앞에 흩어버린 감정을 주워담으며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돌이켜 볼 수 있었다.

 

친구들의 이야기도 마찬가지였다. 우리의 일기 속엔 서른다섯을 통과하며 느끼는 안정감과 불안감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커리어에 대한 불안감 뿐만 아니라, 일생의 동반자를 선택하는 과정 속에서 느끼는 고통과 행복, 그리고 설렘과 눈물이 고스란히 거기 담겼다. 우리는 가장 우리답게 할 수 있는 말을 나누었고, ‘통곡의 벽’이나 ‘환희의 기록’이 되어준 이 일기 덕에 우리는 서로가 가진 건강한 스스로를 잊지 않을 수 있었다. 지치고 힘들 때마다 서로에게, 너 지금 많이 지쳤으니, 조금 쉬다가 다시 한 번 생각하고 움직여보라고 말해 줄 수 있는 소중한 친구들. 이들과 함께 쓴 지난 1년을 돌아보니 생각보다 더 나은 내가 되어온 것 같아 괜시리 뿌듯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또 다른 교환일기는 한참 20대 후반을 통과하는 동생들과 함께 쓰고 있다. 이들 역시 각자의 자리에서 삶과 사랑에 대해 고민했으나, 우리는 서로가 지나온 시간과 삶의 결만큼 달랐다. 서른다섯 또래의 이야기와는 또 다른 밀도의 무언가가 우리 사이에 존재했기 때문이다. 20대인 동생들에게 나는 서른이 되어도 괜찮다는 말을 살아온 삶의 무게로 해줄 수 있었다. 반대로 자신 속에서 무언가의 가능성을 찾아내려 부딪히고 발전해가며 스물의 후반을 통과하는 동생들을 보면서 나는 내가 잊고있었던 ‘더 나은 나’를 발견하는 삶의 자세를 꺼내볼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마음에 숨은 열정과 힘을 일깨웠고, 어느 날에는 위로와 격려를, 또 어느 날에는 서로를 직시할 수 있는 조언을 서슴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동갑내기 친구들과 달리 이들과의 1년의 기록에는 더 잘 정제된 내가 들어있었다. 같은 사건을 묘사하면서도 동갑내기 친구들에겐 ‘날 것 그대로’의 감정을 전달했다면, 친한 동생들에게는 이 일들을 소화해내고 난 뒤 내가 배운 것들을 더 많이 썼던 것 같다. 그리하여 이 두 교환일기 덕분에 나는 조금 더 나은 내가 되어갈 수 있었다. 내 감정을 쏟아낼 수 있는 동갑내기 친구들 덕분에 역설적으로 감정에 너무 깊이 매몰되지 않을 수 있었고, 동시에 이 모든 감정들을 휘발해내는 대신 소화하고 정리한 뒤 친한 동생들에게 전달하면서 나는 무언가 끊임없이 배워나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벌써 두 그룹과의 교환일기를 쓴 지 1년이 지났다. 1년이 지나는 동안 서로에 대해 숨김없이 솔직할 수 있다는 것, 동시에 우리가 인스타그램 속 행복하기만 한 서로 대신 각자의 마음 속에 있는 작은 상처들을 끊임없이 궁금해 할 수 있었다는 것이 참 감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인가에 대해 가장 솔직할 수 있는 친구가 넷이나 되는 삶이라니! 일년 간의 교환일기를 돌아보고 나니, 인스타 400만 팔로워보다 더 든든한 빽(?) 네 명을 등에 업고 전쟁같은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기분이 들었다. 우리는 지금의 우리이며 동시에 무언가를 기록하고 나아가는 법을 배운 미래향의 우리가 될 수 있을테니 말이다.

앞으로는 더 많은 친구들과 교환일기를 써보고 싶다. 더 자주 나와 삶에 대해 쓰고, 또 더 자주 누군가의 삶에 대해 같이 고민하다 보면, 앞으로의 내 삶이 조금은 더 다양한 모양으로 커나갈 수 있지 않을까? 무엇에 대해 쓴다는 것, 그리고 그 ‘쓴다는 행위’를 공유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지난 일년 간 가장 잘 한 일이었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 글을 읽고도 교환일기 쓰기를 망설이고 있는 이가 있다면, 일단 한 번 시작해 보시길 강력히 추천한다. 귀찮음의 벽을 넘고 나면, 그 안엔 홀로 쓰는 일기에선 볼 수 없었던 ‘조금씩 커가는 내’가 담뿍 담겨있을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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