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2

뉴욕 - 로드아일랜드

2021.03.15 | 조회 867 |
6
|
공대생의 심야서재 뉴스레터의 프로필 이미지

공대생의 심야서재 뉴스레터

오직 글로서만 승부하는 글쟁이의 뉴스레터, 주로 생산성 툴에 관련된 글을 보내드립니다.(가끔 소설도 씁니다.)

뉴욕, JFK 공항, 백색 피부와 검정 피부가 혼합된 공항 직원들, 불친절하며 석연찮은 공기, 뉴욕은 모든 면에서 한국과 달랐다. 비로소 내가 이방인이라는 사실, 그곳 사람들에게 너무나 익숙했지만, 나에겐 너무나 낯선 신분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사실만 일깨울 뿐이었다.

낯설다는 감각, 나는 같은 길을 걷지 않는다. 목적지는 달라도 가는 과정은 늘 다른 방법을 선택하려고 노력한다. 시간이 덜 걸린들, 더 걸린들, 그것이 문제가 아닐 테니. 어떤 방법으로 또 무엇을 새롭게 배웠느냐가 더 중요하기 때문에…….

뉴욕에서는 대표와 나 둘뿐이었다. 대표는 15시간 이상을 퍼스트 클래스에서 비행을 아주 편안하게 마친 모양이었다. “이코노미 힘들었지? 혹시 떡국 먹었어?”라고 말하는 대표의 흡족한 표정, 살짝 치켜 올라간 좌우 입꼬리가 아직 선명하다. 그때는 그 말이 날 걱정해주는 것처럼 그렇게 고맙기만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얄미울 따름이다.

입국장에서는 아무도 우리를 기다려주지도 반겨주지도 않았다. 그 흔한 하얀색 표지판도 볼 수 없었다. 광활한 JFK 공항과 쓸쓸하리만큼 가벼운 캐리어 두 개. 공항을 나서면 까만색 벤 같은 것이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으나 그것도 예측과는 달랐다. 대표는 택시 한 대를 붙잡고 몇 십분을 흑형과 실랑이 중이었다.

우리의 목적지는 뉴욕이 아닌 로드아일랜드였다. "아뿔싸, 우리 뉴욕 한복판 45번가 가는 게 아니었던가. 로드아일랜드라니 그곳은 뉴욕과 가까운 섬이라도 된단 말인가?" 하지만 그 섬도 아닌, 낯익은(?) 뉴욕과는 너무나 멀리 떨어진, 그러니까 3시간 이상을 드라이브해야 하는 거리에 떨어져 있다는 로드아일랜드. 3시간, 역시 미국은 스케일이 남달랐다. 모든 것이 큼직큼직했다(심지어는 벌레도…). 땅도 넓고 공항도 넓고 비행기도 넓었다(라고 쓰고 이코노미석은 미국 국적 비행기도 별거 없더라, 그들의 마음도 그리 넓지 않더라, 라고 읽는다). 오사카에서 스톱오버하느라 21시간 이상을 비행했으니, 완벽한 비행 성년(?)으로 거듭난 셈이었는데, 유나이티드 항공 좌석은 대한항공보다 더 형편없었으니 나는 비행청소년(?)에 불과했을까?. 옆자리에 앉았던 흑형의 속사포 랩만 기억날 뿐……. 서비스도 엉망, 역시 Made In Korea가 최고다.

첨부 이미지

새벽에 도착하여 내리 3시간을 또 비좁은 택시 안에서 짐짝 취급을 당해야 한다니, 몸이 점점 오그라들어서, 캐리어 안에 쏙 들어갈 것만 같은 느낌적 느낌. 하지만 그런데도 그때는 불편함보다 신기함이 모든 감정을 지배했다. 21시간의 여정도, 추가된 3시간의 드라이브도, 설렘과 신기함을 무너뜨리지 못했다. 어쨌든 나는 뉴욕을 처음 밟은 남자였으니까, 그건 분명한 사실이었으니까. 지금 글을 쓰면서 잃어버린 어느 순간으로 돌아가는 놀라운 체험까지 겪는 중이니, 그것만으로도 뉴욕 첫 번째 출장은 과거에도 지금 이 순간에도 놀라운 기억으로 계속 진화 중이리라.

로드아일랜드에 가보니 다행히 섬은 아니었다. 바다든 강이든 창밖을 유심히 바라보면서도 물 한 방울 발견하지 못했으니까. 프리웨이인지 하이웨이인지를 쉬지도 않고 달렸는데, 제기랄 중간 화장실에 가고 싶었으나 휴게소 같은 건 찾아볼 수 없었다. “이런 뉴욕의 서비스는 뭐 이렇게 형편없는 거야. 스케일이 넓은 곳에서는 방광도 스케일이 커져야 하는 거야? 뉴욕 뭐가 이래?” 이런 불만을 토해낼 뿐이었지만, 그말이 영어로 번역될 수 없었으므로, 그 소리는 오직 나의 입에서 삐져나와 다시 귓속으로 관통할 뿐이었다.

새벽 2시가 되어서야 우리는 호텔에 간신히 도착했다. 온통 까만 것만 가득한 세상, 미국은 원래 이런가, 짜증을 부리고 싶다가도, 국제 미아가 되고 싶지 않다면 정신없이 대표를 따라다녀야 했다. 호텔 체크인을 마치고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대표가 예상치 못한 카드를 내밀었다. “내 방은 따로 달라고 했으니까, 각자 방을 쓰자고” 음, 미국에 오니 대표의 스케일도 커지는 건가 싶었으나, 대리 따위와 한 방을 쓰지 않겠다는, 말하자면 그와 나의 신분을 명확하게 규정짓고 싶다는 의지의 발산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어쨌든 더블 배드룸을 독차지 한다는 게 그리 나쁘지는 않았으니까.

방을 안내받고 뉴욕의 호텔, 아니 로드아일랜드의 호텔, 방바닥(?)을 처음 밟아본 순간이 지금도 생생하다. "미국은 신발을 벗지 않아, 그게 그들의 문화야"라는 대표의 조언에 따라 나는 신발을 신고 넓은 호텔방을 누비고 다니려 했으나, 카펫이 너무 깨끗해 보였으므로 슬리퍼를 대신 이용하기로 했다. 그때 대표의 충고가 또 떠올랐다. “냉장고 안에든 과자나 음료수는 절대 섭취하면 안 돼. 그거 다 차지(Charge) 되는 거야.” 음, 냉장고를 열었더니 Made In America 딱지가 붙은 과자와 음료수가 즐비했다. 먹을 수 없는 전시품 같은 것들이었지만, 나는 코카콜라를 거칠게 뜯어버렸다(대표의 험악스러운 얼굴이 순간 떠올랐지만......)

뉴욕에 도착한 그날 밤은 마친 설날이었다. 택시 안에서 기사에게 지금 한국은 “Luna New Year”라고 말하던 대표의 능숙한 회화 솜씨가 생각났다. 만약 한국에 있었다면 지금쯤 어떤 봉변(친척들의 예상치 못한 공격)을 당하고 있었을까, 생각하니 난 안도의 한숨만 쉬고 있었달까.

 


 

현재 오픈한 공대생의 심야서재 모임 안내해 드립니다.

 

어떤 글이든 요청하시면 최대한 써 보겠습니다.

 

공대생의 심야서재 뉴스레터 주변에 소개하기 📣

주변 사람들에게 '공대생의 간헐적 뉴스레터'를 추천해 주세요. 아래 사이트를 지인에게 추천해주세요.

https://brunch.co.kr/@futurewave/1136

오늘 글은 어떠셨나요?

피드백을 남겨주세요

다가올 뉴스레터가 궁금하신가요?

지금 구독해서 새로운 레터를 받아보세요

✉️

이번 뉴스레터 어떠셨나요?

공대생의 심야서재 뉴스레터 님에게 ☕️ 커피와 ✉️ 쪽지를 보내보세요!

댓글 6개

의견을 남겨주세요

확인
  • 권효정의 프로필 이미지

    권효정

    0
    over 4 years 전

    이번 글은 기행문 초입 같아요 ^^ 뒷 이야기가 기다려집니다

    ㄴ 답글 (1)
  • 일과삶의 프로필 이미지

    일과삶

    0
    over 4 years 전

    ㅎㅎ 대표가 좀 얄밉긴 하지만 영어는 잘했나 봅니다 ㅎ

    ㄴ 답글 (1)
  • 망망의 프로필 이미지

    망망

    0
    over 4 years 전

    상사님과 함께한 여행일과 그리고 공심님만의 여행 에세이 !가 될 것같네요! 저도 뒷 이야기를 빼꼼이 목 내밀고 기다려 봅니다.!

    ㄴ 답글 (1)
© 2025 공대생의 심야서재 뉴스레터

오직 글로서만 승부하는 글쟁이의 뉴스레터, 주로 생산성 툴에 관련된 글을 보내드립니다.(가끔 소설도 씁니다.)

메일리 로고

도움말 자주 묻는 질문 오류 및 기능 관련 제보

서비스 이용 문의admin@team.maily.so

메일리 사업자 정보

메일리 (대표자: 이한결) | 사업자번호: 717-47-00705 | 서울특별시 성동구 왕십리로10길 6, 11층 1109호

이용약관 | 개인정보처리방침 | 정기결제 이용약관 | 라이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