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곧 설날이네. 양력으로는 1월이 거의 다 지나갔지만 뭐, 아직 K-새해는 오지 않았으니. 2023 이제 시작인 거 아니겠어( ͡~ ͜ʖ ͡°) 이번 편지에선 다가올(?) 새해를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해 얘기해보려 해. 하지만 구체적인 계획은 참으로... 세우기도 지키기도 어렵더라고. 그래서 그 대신, 올해를 살아가며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과 문구를 생각해보려 했어. 내가 2023년에 간직하고 싶은 문구는 '고개 들기'야.
새해를 활기차게 시작해보고 싶었지만, 솔직히 마냥 유쾌할 수는 없었어.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참사와 성실한 혐오를 마주치며 희망찬 다짐보단 막막함이 앞섰던 것 같아. 그럼에도 무력에 빠지지 말고 ‘고개를 들자’고 마음먹은 건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라는 영화 덕이 커.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는 1990년 이란에서 발생한 대지진 이후의 삶을 담고 있어. 영화는 감독이 전작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에 출연했던 아이들의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 그들이 사는 마을, 코케로 향하는 여정을 따라 흘러.
감독의 노랗고 낡은 차 안에는 어린 아들이 타 있고, 그 차창 밖으론 폐허가 된 마을들이 보여. 하지만 영화는 이런 차창 밖 풍경을 그저 지나치는 '풍경'으로 대하지 않아. 오히려 감독의 여정이 길을 따라 사람들을 만나고자 하는 장치로 보여. 감독은 창문을 열고 사람들에게 길을 묻고, 영화에 출연했던 아이를 아는지 묻고, 그들 혹은 그들의 무거운 짐을 실어주기도 하고, 가끔은 차 밖으로 나가 마을에 잠시 머물기도 해.
대지진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수많은 집들이 무너졌으나 그곳엔 여전히 생동하는 삶과 온기가 있어. 우연히 찾아간 마을에선 사람들이 선뜻 물을 나누고, 물건을 깨뜨린 아이들을 혼내는 엄마의 목소리도 들리고, 양복을 빼입은 새신랑도 보여. 새신랑은 지진이 일어난 다음 날 결혼했다고 해. 이에 감독이 "가족이 모두 무사했냐"고 묻자 그는 “삼촌, 숙모 거의 65명이 죽었다”고 답해. “그런데 어떻게 식을 올렸죠?”라고 감독이 다시 묻자, 그는 말해. “우린 신혼을 빨리 시작하자고 했죠. 언제 죽을지 모르니까요. 살아 있는 동안 인생을 즐기려고요. 다음에 지진이 오면 죽을지도 몰라요”
차는 또 달리고, 우연히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에 출연했던 한 아이를 만나. 그 아이가 들고 있던 자루엔 건물의 잔해 속에서 물건을 캐내기 위한 곡괭이가 담겨 있어. 감독은 아이를 태우고, 차는 그가 사는 마을로 향해.
도착한 곳엔 집을 잃은 사람들의 텐트가 여럿 설치되어 있어. 그곳에서 감독이 다른 아이들과 대화하던 도중, 아들이 달려와 여기 머물고 싶다고 말해. 그곳의 사람들이 월드컵 결승전을 보기 위해 안테나를 세우고 있었던 거야. 감독은 안테나를 세우는 사람에게 물어. “지진으로 많은 사람이 죽은 상황에서 왜 축구 경기를 보려 하죠” 그가 답해. “저도 여동생과 조카 셋을 잃었어요” “그렇지만 어찌합니까. 월드컵은 4년마다 열리고, 그리고 삶은 계속되죠”
머릿속에서 재난, 대지진, 참사라는 단어를 굴리고만 있을 때엔 희망은 쉽사리 보이지 않다는 걸 다시금 떠올려. 고개를 들어 나와 타인의 아주 구체적인 삶을 마주할 때에야 웃음과 온기를 만날 수 있는 것 같아. 지금까지의 기억을 돌이켜 봐도 분노를 예상했던 곳에서 우정을, 절망을 예상했던 곳에서 여유와 나눔을 발견해왔어. 항상 삶의 현장엔 내 예상보다 훨씬 다양한 색이 존재한다는 것. 이 점을 기억하며 내 머릿속만 들여다보고 오만하게 절망하지 않기를. 온기의 가능성을 인지하고 가능한 움직여 보기를 바라.
너는 2023을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고 싶은지 다음 편지에서 알려줘!
그럼 무엇보다 즐거운 새해 보내고 다시 만납시다🌞
FROM. 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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