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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었다. 이 도시의 속성이라는 것이 하나로 수렴돼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곳저곳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이루고 있는 다양함 자체가 뉴욕의 정체성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다양한 사람을 볼 수 있기에 타인의 존재를 받아들이기도 쉬웠다. 나와 다른 타자의 존재를 알게 되는 것만으로도 이해의 범주가 넓어진다는 사실을 너무 모르고 살아온 것이 아닐까. 우리는 모르는 것을 두려워하고, 두려워하는 것을 배척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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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만이 유일하게 타인을 바라볼 수 있게 한다. 입을 다문다고 해서 둘 중 어느 누구도 자신의 생각 뒤로 몸을 감출 수도, 상대방의 고향에 발을 들여놓을 수도 없다. 침묵 속에서 낯선 사람 앞의 낯선 사람이 됨으로써 그들은 친밀해진다.” —『은밀한 생』 파스칼 키냐르
“그런데 사랑이란 정확히 이런 것이다: 은밀한 생, 분리된 성스러운 삶, 사회로부터 격리된 삶. 그것이 가족과 사회로부터 격리된 삶인 이유는, 그러한 삶이 가족보다 먼저, 사회보다 먼저, 빛보다 먼저, 언어보다 먼저, 삶을 되살리기 때문이다.” 『은밀한 생』 속에 깃든 빛, 부려진 언어, 펼쳐진 삶으로부터 나는 상상하기 시작했다. 각자의 사랑으로 은밀해진 사람을, 삶을, 세상을. 이것이 어쩌면 책이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일지도 모른다.
책이라는 우주에 발 들인 순간, 우리가 들이는 것은 발뿐만이 아니다. 온몸에 온 마음을 짊어지고 우주를 유영해야 한다. 돌아올 때까지 방황하기를 그치면 안 된다. 자신의 (괜찮은) 일부만 드러내려고 제아무리 애써도 (괜찮지 않은) 삶을 통째로 내바치게 되는 게 사랑이다. 독서도 마찬가지다. 책을 선택하는 것은 나이지만, 독서 후에 일어나는 변화는 내 소관에서 벗어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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