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의 부재

소설

2021.06.08 | 조회 6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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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대생의 심야서재 뉴스레터

오직 글로서만 승부하는 글쟁이의 뉴스레터, 주로 생산성 툴에 관련된 글을 보내드립니다.(가끔 소설도 씁니다.)

요즘 들어 몸이 부쩍 이상해졌다. 미세먼지 영향이리라, 2년 넘게 써온 마스크가 불안정한 호흡의 원인이리라,라고 생각했지만 하여튼 평상시와 너무 달랐다. 아무런 움직임도 감지하지 못한 채, 마치 1차 세계대전의 참호 속에 잠시 찾아온 불안한 평화를 맞은 병사처럼, 심장은 저만치서 존재를 굳이 알리지 않은 채 서서히 고요 속에서 쪽잠이라도 취하는 듯했다.

하지만 며칠 전부터 이상한 기운이 감지됐다. 이따금 바깥세상으로 탈출이라도 할 것처럼 거세게 요동치는 박자 탓에, 그 흐름을 읽고 싶지 않아도 저절로 감지하게 되는 그런 불안한 상황이 예고도 없이 닥쳐오면 나는 어떤 중대한 사태가 벌어지는 게 아닌가 싶어 좀체 안정을 취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높은 곳에서 파도가 치밀어 오르면 나는 몸을 낮게 엎드리고 누워 그 사태를 관망하거나 잠시 몸을 일으켜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불안하게 한 발을 앞으로 내밀고 나머지 발을 다시 내딛는 그런 어설픈 동작을 반복해야 했다.

그러다, 기어코 오늘 아침에 일이 터지고 말았다. 그런데 일이 터졌지만 이상하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기묘한 상황을 인지하게 만드는 기운이 감지됐다. 새벽에 눈을 떴을 때, 여느 때처럼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하곤 나는 침대에서 몸을 부스스 일으켰다. 아무런 충돌도 부산함도 심지어 새벽의 낯선 움직임조차 느끼지 못할 정도로 너무나 무난했고 어제와 다를 바 없는 그냥 평범한 하루였을 뿐이었다.

그러다, 가슴에 이유 없이 문득 손을 올렸다.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었다. 손바닥으로 전달되어서 흘러야 할 어떤 전기적 신호, 어제까지 한없이 불안하게 동작하던 박자와 리듬이 멈춰있었다. 이상하다, 잘못됐다. 이렇게 멈추다니 온몸의 장치가 전류를 이제 흘려보내지 않겠다고 작정한 것이다. 그런데, 심장이 뛰지 않는 그러니까 자신의 생명의 원천을 잃은 상태에서 여전히 생각은 가열하게 뛰고 있고 부산하게 혈관에서 다른 혈관으로 에너지가 공급되는 현상은 과학적으로도 의학적으로도 설명할 수 있는 기묘한 현상이었지만, 나는 그 상황에서도 침착을 잃지 않고 그런 일은 언제든 닥칠 수 있었다며 애써 냉정을 유지하려 애쓰고 있었다.

나는 평상시처럼 화장실 앞에서 면도를 했으며 미지근 한 물로 샤워를 했으며 드라이기로 머리를 천천히 말렸다. 옷장에서 하얀색의 티셔츠 한 장을 꺼냈고 하늘색의 셔츠와 무릎 부근이 살짝 찢긴 청바지를 입고 노트북 가방을 주워들고 회사로 향했다.

그날 오후, 나는 그녀와 함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심장이 멈추게 되면 인간은 어떻게 될까?:” 나는 그녀에게 침착하면서도 강경한 어조로 물었다.

“글쎄, 심장이 멈춘다는 거 생명이 끝나다는 걸 의미하지 않을까? 무대 위에서 주연이든 조연이든 실컷 연기를 펼쳤으니 이제 뒤에서 잠시 쉬라는 뜻? 난 신이 인간에게 준 선물이 아닐까 싶은데? 그런데 난 그런 끔찍한 순간을 체험해보고 싶지 않아. 그냥 잠을 자다 편안하게 찾아왔으면 좋겠어. 슬며시 말이야.” 그녀가 말했다.

“어제 이상한 꿈을 꿨어. 꿈에서 내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에서 120층으로 이동 중이었어. 왜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에서 그것도 120층으로 이동했는지 이유는 명확하지 않아. 다만 내가 그곳으로 가야 한다는 건 그냥 당연했어. 마치 신이 나에게 내린 오래된 지령 같다고 해야 할까? 난 그래서 1층에서 120층까지 몇 사람과 함께 동승했지. 그들은 말이 없었고 서로가 누군지도 몰랐으며 자신의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거나 그냥 숫자판을 하나씩 훑어보거나 그냥 멍하게 서 있었어. 말 그대로 멍했지, 어딘가에 시선을 두지만, 너무나 흐리멍덩해서 아무런 목적이 없는 그런 동태 같은 시선 있잖아. 아무튼 우린 여행자처럼 그 안에서 잠시 동지가 됐던 거야."그녀가 말했다. 그리고 다시 그녀가 말하길.

"한없이 엘리베이터가 마치 공중 산책을 하듯이 서서히 아니 그건 분명히 꽤 속도가 빨랐어. 어느 순간 120층, 그러니까 하늘과 구름 속에 도착했더라고. 난 그래서 거기서 내려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이 엘리베이터가 갑자기 기차로 변신하는 거야. 그냥 어느 순간 기차가 됐어. 그것조차 또 당연시됐지. 의문이 없었어. 그냥 감각적으로 받아들이는 거야. 그리곤 어딘가로 쏜살같이 움직이더라. 근데 그 기차란 것은 꽤 투명했는데, 바깥이 훤하게 보여서 그 주변이 바다라는 걸 잠적할 수 있었지. 그 바다를 위태롭게 질주하는 광경을 나는 그 기차 속에서 느꼈지만 동시에 바깥쪽에서도 그걸 신이라도 된 것처럼 관망하게 되더라? 근데 곡선 주로를 힘차게 달리는데, 이 기차가 선로를 이탈하고 만 거야. 그러니까 우린 모두 죽은 목숨이 된 거지,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서 서로를 쳐다보는데, 이 기차가 바깥쪽으로 튕겨져서 바다 한가운데로 고꾸라지는 와중에 우린 서로를 불쌍하게 바라보며, 목숨이란 게 이렇게 허무하게 바닷속으로 가라앉는구나, 이렇게 목숨은 무겁고도 가벼운 거였어.라고 침묵의 대화를 주고받았던 거야. 그때 난 속으로 생각했어. 우린 끝났구나. 완전히 끝났어. 난 120층으로 가던 길이었는데, 뜻하지 않게 바다 한가운데서 기차와 함께 소멸되는구나. 우린 영원히 발견되지 않을 거야. 이 상상의 바다에서 누가 우리를 견인하겠어,라고 생각하며, 난 이건 꿈일 거야.라고 소리를 아주 크게 질렀어. 비명을 질렀던 거지, 그런데 난 꿈에서 깨어나지도 않았고 심지어는 그건 꿈도 아니었고, 엄연한 현실이었지, 난 그거 더 절망적이었어. 어떻게 됐는지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기차에서 튕겨져 나와 바다 한가운데 동동 떠 있었던 거야. 난 수영도 할 줄 모르거든. 뭔가 이상하지 않아? 내가 왜 바다 한가운데 튜브도 없이 떠 있었단 말이야. 난 그렇게 살아남았고 곧 구조됐어. 난 심장을 쓸어내리며 안도했지. 내가 살아있고 심장이 멈추지 않았다는 사실에 감격하며 말이야” 그녀가 말했다.

“그 꿈 참 기묘한 꿈이네. 확실히 이상해. 어떤 메시지라도 담고 있는 걸까? 당신이 꿈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것처럼 내 심장도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그게 무슨 소리야? 심장이 다시 살아나다니 네가 좀비라도 됐다는 말이야?” 그녀가 내 왼팔을 꼬집으며 말했다.

“아니 그런 의미보다는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확인을 해보니까, 심장이 뛰질 않더라고. 근데 그게 전혀 이상하지 않은 거야. 오늘은 심장이 뛰질 않네? 근데 내가 여전히 숨도 쉬고 당신을 만나서 이야기도 하고 커피도 마시고 있네? 전혀 어제와 다를 바가 없잖아. 이 심장이라는 거 정말 우리에게 유용한 물건이 맞는 거야?” 내가 말했다.

“그거 기묘한데 말이야. 내 귀에 한 번 네 심장을 대볼 수 있을까?” 그녀는 신기하다는 듯이 웃으며 내 손목을 잡아당기더니 맥이라도 집어보겠다며 자신의 하얀 손을 슬며시 내려놓았다. 그리곤 다시 얼굴을 내 심장 쪽에 가까이 대더니 소리를 느껴보려 애썼다.

물론, 내 말이 사기가 아님을 시답지 않은 데이트 장난이라도 치는 그런 싱거운 남자의 농담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녀도 곧 이해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 사실에 대해 아무런 논평도 언급도 더 이상 하지 않았다. 그냥 심장이 멈추는 일이라는 건, 언제든 닥칠 수 있는 것처럼 이 세상이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얼마나 자주 벌어지겠느냐 하며 오늘은 멈췄지만 내일은 다시 뛰지 않겠느냐며 낙관적인 의견을 내놓았다.

"네 심장 계속 멈춰있을까?"

"글쎄, 그건 나도 모르겠어. 한 번 물어볼까? 언제쯤 다시 뛸 거냐고. 그때는 귀띔이라도 해달라고 말이야" 나는 웃으며 말했다.

우린 작게 웃고 남은 커피를 마셨다. 뜨거운 기운이 온몸으로 퍼져나가는 것이 혈액 대신 커피가 온몸을 채울 것 같은 상상을 했다. 물론 그런 까맣게 변신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내가 커피 인간이 되는 사태가 벌어지지 않았으니 그나마 다행이었을까.

그녀와 헤어지고 오후에 잠시 도서관에 들러 헤세의 소설을 반납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날 저녁 그녀의 룸메이트로부터 갑작스러운 소식을 들었다. 전철을 타고 한강을 넘어가던 중 원인 불명의 사고가 터지는 바람에 기차가 한강으로 추락했다는 이야기. 그 사고로 기차에 탑승한 인원 2천 명 가까이가 목숨을 잃었다는 엄청난 이야기. 내 심장이 갑자기 멈춘 것만큼 온 세상의 정상적인 흐름을 멈추게 만든 이야기.

나는 그녀와 2년 가까이 만났다. 그녀와 같이 책을 읽었고 작가의 꿈을 같이 꿨으며 무료해지면 그녀의 집에서 같이 잠을 잤다. 우린 아마도 많은 이야기를 나눴을 것이다. 발자크든, 헤세든, 버지니아 울프든 우린 열심히 읽었고 열심히 이야기했으니까. 그런데 그녀의 죽음을 접한 순간, 나는 그녀와 몸을 섞은 기억도 그녀와 나눈 대화의 내용도 그녀의 얼굴까지도 기억해 내지 못했다. 심지어 그녀와 내가 사귄 사이였는지 그 사실도 증명될 수 없는 오래된 난제처럼, 그저 그 사실 자체가 환영이 아닐까 생각했다.

부재 그러니까 이 세상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 어제까지 그랬지만 지금 이 순간부터 현실이 아니라는 가정, 아니 분명한 사실이 그녀의 존재를 다시금 내 의식 하부에서 표층으로 부활시켰지만 그녀의 존재는 절대로 부각되지 않았다. 나는 어느 순간 중요한 것을 잃은 어쩌면 사랑을 상실한 남자였지만, 눈물도 격한 비명도 그 어떠한 감정의 몸부림조차 부릴 수 없었으니 나는 감정에 인색해진 사람이 되었거나, 그 상실의 인식을 스스로 거부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심장이 멈추어버린 탓일지도. 상실이란 심장의 운동과 관련이 있을 것이리라.

그녀는 이 세상에 없다. 그런데 나는 이 세상에 남았다. 내 심장은 더 이상 뛰지 않는다. 그러니 나는 죽은 것이다. 그런데 나는 살아서 이 모든 존재의 상실을 느끼고 있다. 나는 죽은 것도 맞고 살아 있는 것도 맞으리라. 어떤 운명의 굴레에서 잠시 비켜서서 그 시간의 수레바퀴 속에서 같이 회전하는 생명의 흐름이라는 것도 가끔은 이렇게 예기치 못하게 어긋나게 되는 걸까. 그게 삶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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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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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unflower 🌻

    0
    almost 3 years 전

    소설의 형식을 빌리니까 죽음의 깊이가 더 와 닿네요. 살아있으나 죽으거나 마찬가지인 그래서 죽음을 더 인정할 수 없음이요. 감정을 쏟아붇지 않아도 더 깊이있게 주제를 담을 수 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ㄴ 답글 (1)
  • 열말

    1
    almost 3 years 전

    심장이 더 이상 뛰지 않는 사람이 느끼는 존재의 상실은 어쩐지 무감하군요.

    ㄴ 답글 (1)
  • veca

    0
    almost 3 years 전

    죽음을 예상하고 심장이 멈추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사람하는 사람의 부재는 심장이 멈춘 것과 같다는ᆢ 공심님 소설중 제일 좋았습니다.

    ㄴ 답글 (1)
  • 옥돌여행

    0
    almost 3 years 전

    너무 슬프네요. 처음엔 공심님 심장에 이상이 있는 줄았는데 다행이에요 ㅎㅎ 근데 그의 그녀에게 사고라니 너무 하시는군요.^^

    ㄴ 답글 (1)
  • 드림그릿

    0
    almost 3 years 전

    소설인데 잠깐 착각하고 글을 읽었네요..휴 소설이라 다행이예요~

    ㄴ 답글 (1)
  • 조히

    0
    almost 3 years 전

    우와~~ 공심님께 로긴해서 글달기 힘들다는 말을 체감했어요 그래도 해냈답니다ㅋㅋ 소설도 현실의 상징으로 사랑하는 누군가의 부재를 하게된다면? 하고 쓰셨을까 생각해봤네요~멋진소설 잘 보고 갑니다:)

    ㄴ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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