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새롭고 이상한 영화가 보고 싶어질 때가 있잖아. 요즘이 딱 그래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온라인 상영작을 뒤졌어. <버드 우먼>, <지옥의 화원>, <플리즈 이비 플리즈>를 거치고 나니 오늘은 뭔가 깔깔댈 수 있으면서도, 독립 단편영화스러운 영화가 보고 싶었어. 그러다 <영화전대 춘화레인저>를 발견했고, 이거다 싶어 바로 단돈 1,000원에 24시간 대여!
찾아봤더니 전대물에는 ‘OO전대 ~레인저’라는 작명 공식이 있더라고. 예를 들어 ‘비밀전대 고레인저’ 같이. 이 영화 내용이 비디오 가게 사장 춘화가 영화과 학생 요훈과 함께 전대물 영화를 찍는 거거든. <영화전대 춘화레인저>는 영화 만드는 것에 대한 영화야.
학점교류로 영화과 강의 들을 때 교수님이 했던 말이 생각나. 학생들이 한 학기에 꼭 한 편 이상 영화 제작에 대한 영화를 만들어 온다고. 근데 그 수업 과제로 영화를 만들며 느꼈어. ‘지금 우리 상황보다 재밌는 시나리오를 쓰기는 쉽지 않겠구나.’ 당시 촬영 장비를 놓을 곳이 없어서, 장비와 나란히 노숙할 생각을 하다가 고시원을 빌려 카메라를 침대에 재우기도 하고, 장비 카트를 덜덜덜덜 끌고 20분 동안 걷기도 하고, 코로나로 카페도 닫던 시기 저렴한 방을 빌려 침대에서 같이 편집을 하고... 줌으로 회의를 하면서 팀원들이 싸우기도 매번 싸웠는데, 산으로 가는 시나리오를 보며 그냥 지금 우리 모습을 찍는 게 훨씬 재밌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어. 근데 그 팀원 중 한명은 그렇게 힘들어했으면서도 다음 영화를 찍고 싶다고 말하더라.
주인공 요훈은 이제 영화 찍는 게 뭐가 재밌는지도 모르겠고, 압박감과 무력감에 시달리는 영화과 학생이야. 반면 춘화는 얼마 전 시나리오를 완성해 영화 촬영이라는 평생 소원을 이뤄나가며 행복해하지. 요훈은 그런 춘화를 부러워 해. 무언가를 오래도록 계속 좋아할 수 있다는 것, 좋아하는 것을 하며 온전히 재밌을 수 있다는 건 진짜 부러운 일이야.
좋아하면서도 계속해서 의심하고 주저하게 돼. 마음껏 재밌는 건 왠지 무섭달까. 어쩌면 뭔가를 만든다는 건 춘화와 요훈의 상태를 오가거나 동시에 겪는 일인 것 같아. 너무 하기 싫은데 너무 하고 싶고. 너무 하고 싶어서 너무 하기 싫은 걸까?
어쨌든 이들은 전대물답게 레인저의 기본 인원수인 다섯 명을 채워 각각 색 하나씩 맡고 도시에 출몰한 괴수를 물리치러 가. 괴수가 있는 현장으로 가던 중, 핑크 요훈은 영화 찍는 게 싫어 위기에 빠져. 그때 레드 춘화가 말하지. “떠올려라. 넌 왜 영화가 하고 싶었지?”
얼마 전 나도 이 질문을 받았어. 내가 듣고 있는 다큐 강의를 하시는 감독님께. 왜 다큐가 하고 싶냐고. 분명 이유가 있었던 것도 같은데 모르겠어. 뭐라고 말해도 내 마음 같지 않달까. 그 감독님을 보고 있으면 몇십 년 동안 영화를 하시면서 어떻게 지금까지 영화를 저렇게 사랑하지 싶어. 감독님은 다큐 하는 이유를 분명한문장의 형태로 가지고 있을까?
지금 나는 비둘기를 소재로 다큐멘터리를 찍고 있어. 서울역에서 주로 촬영을 하고 있는데 찍고 있으면 “뭐 찍는 거예요? 이거 왜 찍는 거예요?”와 같은 질문들을 받게 돼. 그럴 때마다 뭐라 해야 할지 아득해져서 매번 다른 대답을 해. 거기 서있으면서 영화나 촬영 이야기도 꽤 들었어. 서울역에서 기타 치는 아저씨는 과거 자신이 카메라맨이었다며 나에게 틸팅을 아냐고 물었어. 또 어떤 할머니는 내게 홍상수 감독의 <강원도의 힘>을 보라고 추천해주시며 본인은 인디가 좋다고 말씀하셨어. 한 아주머니는 자신이 영상했던 사람이라며 내게 재미 삼아 찍지 말라고 화를 내시기도 했어.
여러 이야기를 듣고, 여러 장면을 보며 영화를 찍는 이유도 영화의 내용도 계속 계속 변해가는 것 같아. 그래도 그래도 다행히 지금까진 고통 보다 재미가 커. 그래서 아직은 계속 해보고 싶어. 우리가 살아가는 매일에 분명한 이유는 없어도 살아나가는 것과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다시 <영화전대 춘화레인저>로 돌아갈게. 각성한 요훈이 일어나고, 레드 춘화의 "모두의 힘을 하나로!"라는 외침과 함께 요훈이 든 붐마이크에서 레이저가 나가. 춘화레인저는 그렇게 괴수를 쓰러뜨리고 세상은 일상으로 돌아오지. 그들은 비디오 가게에 앉아 완성된 영화를 봐. 영화 시작 전 화면조정 바의 색이 춘화레인저의 색과 겹쳐 보여. 레드, 옐로우, 그린, 블루, 핑크.
나도 춘화처럼 완성된 내 첫 영화를 볼 수 있을지 궁금하다. 지금으로선 어떻게 될지, 영화라는 게 되긴 할지 모르겠어. 그래도 어쨌든 몇 달 뒤에는 꼭 어찌저찌 완성된 영화를 보여줄 수 있음 좋겠다. 그럼 그때까지 재미를 지켜내 볼게!
FROM. L
뉴스레터 제목은 <영화전대 춘화레인저> 엔딩곡 가사 중 일부입니다.
🥄 이 영화도 한번 🥄
<고대전사 맘모스맨>
<봉준호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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