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물들인 시간
엄마는 이불을 꿰맸다. 홑청이 뽀송하게 마른 마루의 한낮, 엄마는 금색으로 십장생이 수놓아진 빨간색 비단 이불에 시침질했다. 계절마다 우리 집엔 빨간색 비단 꽃이 피고 지기를 반복했다. 엄마는 마루를 닦고 또 닦았다. 안방에서 건넛방을 가려면 엄마가 길들인 붉은빛을 띤 마루를 건너야 했다. 밟을 때마다 삐걱대던 낡은 마루 역시 계절마다 윤이 났다. 엄마는 식물을 잘 길러냈다. 해가 나는 시간엔 마루의 앞쪽으로 옮겼다가 저녁 즈음, 마루의 더 깊은 품 안으로 바싹 끌어당겨 두었다. 겨울철 추운 날씨엔 얼지 않도록 방 안으로 들여 온기를 느끼게 했다. 그렇게 온기를 머금은 화초는 죽지 않고 봄의 꽃을 틔우곤 했다. 엄마를 웃음 짓게 했다.
엄마의 그때 나이를 가늠해 본다. 내가 일곱 살쯤이니 엄마는 서른둘의 꽃다운 나이다. 틈나는 대로 집안의 곳곳을 보듬고 손질했다. 가족들이 조금 더 깨끗하고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자신의 젊음을 그곳에 물들였다. 우리는 모두 엄마가 만들어 놓은 따뜻한 울타리 안에서 함께 할 수 있었다. 칼 라르손이 그린 ‘바느질하는 소녀’를 보고 있자니 그의 아내 카린과 가꾼 집안 곳곳이 눈에 들어왔다. 붉은 서랍장 위엔 한낮의 태양을 만끽하는 화분들과 오른쪽 끝엔 재봉틀이 보인다. 그녀는 재봉틀을 두고 여덟 아이의 옷을 손바느질하고 있다. 싫은 기색 없이 단정한 카린의 모습에 엄마가 겹쳤다.
엄마가 물려준 것
“시집가면 할 텐데 안 해도 돼.” 집안을 살뜰하게 가꾸는 엄마가 습관처럼 하던 이야기였다. 설거지 하려던 내게, 빨래를 하려던 내게, 심부름을 하려던 내게. 그런 것들은 어쩐 일인지 큰 딸인 나보단 둘째 동생에게 그 역할이 가곤 했다. 아들 귀한 집의 딸 셋 중 큰딸이어서 그랬을까. 남자들이 연애 때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게 해줄게.”라고 하듯 엄마는 나를 그렇게 키워냈다. 엄마는 내게 삶의 어느 부분을 물려주고 싶었을까?
중학교 때 기억을 더듬어 본다. 가정 시간의 나는 바느질고리에 연꽃으로 수를 놓거나 동그란 틀 안에 목련?을 수놓을 때 꽤 집중했었다. 제법 솜씨가 좋았는지 친구들이 내게 부탁하기도 했다. 그러나 바느질하는 시간이 오면 꾀를 부리곤 했다. 수를 대신 놓아준 친구에게 바느질을 부탁할 정도였다. 한 자리에 오래 앉아 무언가에 몰두하길 좋아하는 아이였는데 바느질만큼은 재미를 붙이지 못했다.
엄마는 우리를 어느 정도 키워내고 일을 다시 시작했다. 우리는 엄마가 없는 시간, 많은 일들을 스스로 해냈다. 나는 엄마가 내게 했던 것처럼 동생들의 머리를 양 갈래로 묶어 주거나 혼자 하기 힘든 숙제는 밤을 새워가며 도와주기도 했다. 동생들은 필요한 준비물을 스스로 챙겨 다녔다. 엄마가 만들어준 안온한 뜰 안에서 자신의 의지로 생을 가꾸어가는 힘을 갖게 해준 것. 엄마가 내게, 우리에게 물려주고 싶었던 삶의 한 부분이 아니었을까.
나는 아이에게 어떤 삶을 물려주게 될까
엄마는 세 딸을 키우고 일하면서도 아빠를 위해 새벽마다 사과와 당근을 갈아주었다. 농약을 개발하는 연구소에 다니던 아빠는 밖에 나가 여러 식물의 잎을 관찰하는 시간이 많았다. 늘 검게 그을린 얼굴이 마음에 걸렸던 엄마는 지금도 이렇게 이야기한다. “너희 아빠 얼굴 하얗게 된 건 매일 사과와 당근을 갈아줘서 그런 거야.”
칼 라르손과 그의 아내 카린 베르구는 프랑스 유학 중에 만났다. 칼 라르손은 아버지에 대한 사랑의 결핍을 안고 행복한 가정을 꿈꾸었다. 그는 스웨덴 팔룬에 있는, 카린의 아버지가 물려준 집 ‘릴라 히트나스’를 그녀와 함께 아름답게 가꾸면서 여덟 명의 아이들을 사랑의 결핍으로부터 해방 시켰다. 카린이 집 가꾸기 이외에 독서를 좋아해서 칼 라르손의 그림 속엔 책 읽는 아이들이 자주 등장한다. ‘행복을 그리는 화가’라는 타이틀을 얻을 정도로 그의 그림은 우리에게 따뜻한 가정의 이상향을 선물한다.
가정을 만들어간다는 것, 쉽지 않은 일이다. 나보다 십 년이나 일찍 결혼한 엄마를 떠올려 본다. 어린 그녀가 삶을 아름답게 재단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노고로 빚어지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는 기쁨과 얼굴이 조금이라도 하얗게 변해가는 남편의 모습을 보는 즐거움에 있었던 것은 아닐지.
나는 우리 아이에게 어떤 삶의 모습을 물려주게 될까. 언젠가 아이가 가정을 갖게 되고 그 안에서 아이가 태어나면 칼 라르손이 그린 카린의 모습처럼 내 모습도 한 장의 그림, 사진으로 기억되면 좋겠다. 그들이 일궈낸 밝고 따뜻한 가정의 온기처럼 아이의 가정에도 빨간색 비단 꽃이 피고 지기를 반복하며 물들여지기를.
* 글쓴이 - 김상래
작가/도슨트, 학교와 도서관 및 기관에서 성인 대상으로 미술 인문학, 미술관 여행 강연 및 글쓰기 강의를 한다. 초등학교에서 창의융합예술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문화·예술로 가득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하루를 알차게 살아내고 있다. 그림과 글쓰기, 전시 감상 하는 '살롱 드 까뮤' 모임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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