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님, 다시 찾아오는 장마철, 가을 장마에 대한 대비는 하고계신가요? 올해는 유독 날씨가 변덕이 심해, 옷장 정리는 물론 종잡을 수 없는 날들이 이어지는데요. 마스크는 어느새 필수템이 되어버려 그 조차, 옷을 입을 때 고려해야 할 '과제'가 되어버렸는지 몰라요. 하지만 무엇이든, 생각하기 나름. 오늘은 럭키 킬리만자로의 좀 신나는 곡으로 시작해볼게요. 밴드명은 나름 거창하지만, 매우 경쾌하고 신나는 씨티팝 베이스의 전자 밴드 음악을 하는 이들이에요. 올해 봄 두 번째 앨범이 나왔고, 근래엔 '헤세이점프', DISH' 등 아이돌 그룹들과의 협업도 눈에 띄더라고요.
'비가 온다면 춤추면 되잖아(雨が降るなら踊ればいいじゃない)', 다가오는 장마, 홈 스튜디오에서 촬영된 mv, 커피 한 잔과 창을 두드리는 빗소리. 비오는 인생이란, 사실 그리 나쁘지 않을지도 몰라요.☔️
🐳 망상이 꾸는, 어느 여름밤의 꿈
일본의 12년차 배우 마츠자카 토오리에겐 일명 ‘망상의 기록'이라 불리는 두 권의 책이 있다. 제목도 있는 그대로 ‘망상'과 ‘망상2’인데, 이건 내게 좀 놀람, 그리고 배신이었다. 처음엔 그저 사전에 적힌 그대로 비현실적이고 비합리적인, 주관과 허황의 가벼운 수필 정도라 생각했지만, 주문을 하고 1주일, 집에 도착한 건 그럴싸한 사진집과 같았다. 판형부터 단행본의 국판이나 사륙판이 아닌, A4를 꽉채우는 국배판. 표지는 반짝반짝 코팅되어 있었고, 띠지에 적힌 문구는 ‘사상 최초 플라이어 북.’ 아마존 카트를 채울 때 난 왜 그걸 보지 못했을까.
그러니까 이 책은 가상의 영화에 대한 전단지 홍보물, 그것만으로 만들어진 책이다. 영화 일련의 과정을 촬영, 편집, 그리고 홍보를 포함 개봉 준비라고 한다면, 마츠자카의 이 두 권의 책은 그 중 기승전결의 전, ‘홍보의 한 부분'에 불과한 ‘전단지'만을 쏙 도려내 하나의 완성처럼 포장해낸 결과다. 그것도 가지각색 서로 다른 20개의 콘셉트로 완벽하게 연출된. 코미디부터 연애물, 호러와 스릴러 각종 장르를 망라해. 그곳의 마츠자카는 TV와 영화 속 그와는 다르고 또 같고, 어쩌면 이 자체가 ‘망상'이란 뜻이었을까. 세상엔 어쩌면 완결되지 않은, ‘망상'으로 완성되는 ‘이야기'가 있다고 생각했다.
‘일드'를 보지 않은지, 혹은 본지 이미 오랜 세월이지만, 마츠자카 토오리 주연의 신작 ‘그 때 키스했더라면(이후 '아노키스')'를 보고있다 나도 모르게 ‘뻥이란 참 좋구나' 같은 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제목에서 풍기듯 이 드라마는 러브 코미디에 고작 (하지못한) 키스 한 번을 후회하며, 모든 걸 단 한 번의 (불발된) 키스 탓으로 돌려버리는 황당무계한 설정의 스토리이다. 그렇게 현실 부적합의, 오직 망상에 기대 8화 전편을 끌고가는 꽤나 뻔뻔하고 늑살맞은 픽션 중 픽션.
갑작스런 비행기 사고로 남자와 여자의 혼이 뒤바뀐다는 유사 설정의 ‘뻥'들을 우린 얼마나 많이 봐왔던가. 남여과 뒤바뀌어 본의 아니게 BL이 되고, 내가 아닌 나의 삶을 살며 깨달음을 얻거나 화해를 하는 전개에 우린 얼마나 (알고도) 속았는가. 어차피 드라마가 끝나면, TV를 끄면 금새 사라지고, 없던 이야기가 되어버리지만 이 현실 부적응의, 하지만 경쾌한 ‘뻥의 팡파레’는 아직도 우리 곁에 계속 반복되고 있다. 그러니까 우린 왜 자꾸 뻥에 취하게 되나. 드라마 속 주인공 모모치는 소심하고 숫기없는 마트의 아르바이트생이지만, 그에겐 만화 속 또 하나의 세계 ‘세이카의 하늘'이 있고, 그건 곧 하나의 ‘망상', 애초 ‘세이카의 하늘'은 ‘세상에 같은 하늘은 없다'는 의미에서 지어진 타이틀이다.
마츠자카 토오리의 이 드라마가 새삼 새로운 건 어느 하나 없다. 영혼이 뒤바뀌는 게 아니라 일방적으로 ‘빙의'되었다는 게 다르다면 다른 포인트지만, 그래봤자 거기까지의 이야기이고, 내성적인 주인공이 하나의 사건을 계기로 변화해가는 스토리는 일드의 하나의 장르로 만들어도 될만큼 진부하다. 어떤 면에서 ‘아노키스'는 일드의 모든 클리셰를 빠짐없이 차용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근래 대부분의 일드와 달리 만화 원작이 아닌 오오이시 시즈카의 오리지널 스토리이고, 그럼에도 만화같기 그지없고 극중 존재하지 않는 만화 ‘세이카의 하늘'이 등장한다. 이 미묘한 픽션과 논픽션 사이의 줄타기는 무엇인지.
게다가 비행기 사고 후 남의 영혼으로 살아가게 된 만화 작가 필명 카니카마 죠, 본명 유이즈키 토모에의 이곳에 있지만 저곳에도 있고, 이곳에 없지만 저곳에는 있는, 생사를 왕래하는 ‘선택적 출현 방식'은 어떤 리얼리티의 구현인지. 그 탓에 아소 쿠미코는 단 1회만에 사망하지만, 마지막회까지 영영 살아있기도 하다. 드라마는 이 둘 사이의 ‘들고 남’을 절묘하게 수행하고 있다. 그런데 무얼 기준으로. 어쩌면 이건 일상 곳곳의 무수한 ‘가정법'들의 재연인 걸까. 이미 엎어진 일을 주워담지 못해 벌어지는 ‘아노키스'는 우리가 가지 못했던, 혹은 않았던 또 하나의 현실을 애써 이곳에 데려오려 한다. 세상 모든 망상에 이유는 본래 없고, 어차피 또 하나의 픽션일 뿐이지만 그건 때로 삶을 구원하기 위한 ‘뻥’이기도 하다.
내가 일드를 멀리하고 있던 탓인지, 아니면 무엇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아노키스'의 시청률을 공개되지 않고있다. ‘세컨드 버진', ‘집을 파는 여자', ‘아이 둘' 등 탄탄한 스토리 라인의 작품을 만들어왔던 오오이시 시즈카의 신작, 마츠자카 토오리가 결혼을 발표하고 첫 드라마, 이우라 아라타와 마츠자카의 좀처럼 볼 수 없는 TV에서의 협연으로 흘러가는 드라마. 갖출 건 다 갖춘 이 드라마는 (나를 비롯) SNS에서 ‘재밌다'는 소리가 심심찮게 들려오지만 현재 발표된 2분기 일드 시청률 1위는 타케노우치 유타카 주연, 만화 원작의 ‘이치케이의 까마귀'다. 더불어 보통 10회 정도로 완결되는 일드의 관행과 달리 ‘아노키스'는 8화 완결, 지난 18일 종영을 했다.
코로나 때문에? 올림픽 편성을 대비해? 이유에 대한 설왕설래가 좀처럼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보다 근본적으로 왜 10화가 아닌 8화에서 마침표를 찍었을까. 어쩌면 ‘망상'이란 본래 그런 것이었을까. 아무런 근거도 없지만 세상의 어떤 이야기는 완성되기 전에 ‘할 일'을 다 하고 떠나는 게 아닐까. 세상은 모든 일에 이유를 찾기에 혈안이지만, 세상은 애초 기승전결로 흐르지 않는다. 모모치가 카니카마 죠와 만나 ‘세이카의 하늘'의 의미를 알아버린 순간, 이 이야기는 아마 그걸로 충분하다.
망상은 어쩌면 보다 일상적이다. 망상은 해를 끼치지 않아 허풍과 다르다. 망상은 흔적을 남기지 않아 거짓말과 상이하고 망상은 근거를 들고 증명하려 하지 않기에 ‘잘못된 확신'이 아니다. 그렇게 보다 ‘꿈'에 가깝다. 사전은 망상을 꽤나 해서는 안될 일처럼 기술하고 있지만, 우린 사실 조금씩 ‘망상의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가장 흔하게 하루에도 발에 치일듯 자꾸만 하게되는 각종 ‘후회'들. 그건 이미 끝나버린 일을 두고 여태 돌아오지 못하는 ‘지연된 시간’이고, 곧 현실이 아니다. 대표적으로 ‘그 때 키스했더라면.’
하지만 그럼에도 망상은 현실과 반응하며 작동하는 이상한 서사이고 그렇게 ‘고립된 현재형’이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불현듯 보게된 드라마 ‘아노키스'에서 인물들은 갑작스레 돌변한 상황에 잘도 적응하는데(남자로 돌아온 딸을 단 두 번 고함을 친 후 이해하는 엄마나 몸만 남편인 여자를 통해 집 나간 남편을 이해하는 아내나), 그건 드라마라서 꿈꾸는 꿈, 내일에 대한 기대이거나 현실에 대한 판타지이다. 그러니까 망상은 현실을 돕는다. 내가 무심코 뱉었던 ‘뻥이란 참 좋구나'란 말은 아마 그런 '잠자는 망상'에 대한 반응이 아니었을까. 죽었지만 남자의 몸으로 다시 한 달을 살았던 카니카마 죠, 토모에의 사후를 설명하는 건 드라마에서, '신이 우리에게 주신 여분의 시간이었을거야', 그의 엄마의 말이 유일한데, 망상은 때로 구원의 믿음이 되기도 하는걸까. 어찌되었든 망상은 최소, 현실을 해치지 않는다.
🚦 망상할 수 있는 용기, 후회란 어쩌면 상상의 신호일지 몰라요
망상, 오늘은 '일드'를 빌려 망상에 대해 이야기했는데요, 망상이란 왜인지 부끄러워 자꾸 숨기기만 했던 것 같아요. 누군가에 들킬까 얼른 가슴 깊숙이 도로 감춰버리게 되는, 그런 감정같은 거 말이에요. 어릴 적 전 늘 학교가 버스로 최소 30분 이상이라 창가 자리에 앉아 피아니스트가 되어 무대에서 연주를 하는, 망상을 라흐마니노프랄지, 리스트 당시 영화 '샤인'이 나왔던 터에 그 영화의 OST를 들으며 망상하기도 했어요. 10대, 학창 시절이었지만 지금 돌이켜봐도 부끄러움에 당장이라도 숨어버리고 싶어져요.🤭
하지만, 마츠자카 토오리의 저 사진집 아닌 사진집을 보면서, 가끔 듣는 야밤의 라디오 스다 마사키의 '올 나이트 니뽄'을 들으면서, 망상이란, 아무 눈치도 보지 않는 나와의 만남이 아닐까 생각할 때가 있어요. 어른이 되면서 망상을 하지 않는다는 건, 동심을 잃어가는 것과 같은 세월의 변화처럼도 느껴지고요. 망상 좀 한다고, 누구에게 피해를 주는 건 아니잖아요. 그건 어쩌면 하지 못했던 나의 실천일지도 모른다고, '일드'의 망상을 빌려 생각해보았답니다.
헤어지는 곡으로 바운디의 '도쿄 플래쉬'를 골라봤어요. 2000년 생, 올해로 고작 스물 하나 밖에 되지 않은 젊은 뮤지션인데, 작사/곡은 물론 프로듀싱까지, 근래 주목받는 크리에이터에요. 내가 아직 21라면, 혹은 스무살의 내가 지금 또 있다면. 이런 망상은 어떨까요? 구독자 님의 여름 막바지 스퍼트, 우리 함께해요~.🏃🏻♀️🏃🏽♂️
*내일(8월 13일) 저녁 9시, 밤에 읽는 뉴스, '야후 재팬' 읽어드립니다'가 발행됩니다.
*아래는 공개중인 '무료 회원을 위한 레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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