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삶] 오랫동안 나에게 하고 싶던 말

그랬니, 그랬구나

2022.12.10 | 조회 46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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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삶의 주간 성찰

일하고 배우고 느낀 성찰을 나눕니다

여기 네 여자가 있다.

이정선, 삼천이라고도 불렸다. 백정의 딸로 갖은 모욕을 받으며 아픈 어머니를 돌봤다. 호기심 가득하고 세상을 마주하고 싶던 그녀는 운명적으로 남편을 만나 어머니를 두고 개성으로 떠났다. 17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생전 가본 적 없는 개성에서 의지할 사람 없이 삶을 꾸려 나갔다. 평생의 인연 친구 새비를 19살에 만났다.

박영옥, 네 여자의 중심이다. 소설의 화자는 이지연이지만, 실질적인 주인공은 박영옥이다. 등장인물의 연결점이고, 과거와 현재를 이어준다. 시간은 환상일 뿐이며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동시에 존재한다는 이지연 남편의 믿음을 증명한다. 아버지는 그녀를 살갑게 대하지 않았고, 남편 역시 상처를 주고 떠났지만 주변의 여성에게 사랑을 듬뿍 받았다. 사랑을 대면하기 두려워 회피하려 했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었고 그 사랑은 손녀 이지연에게까지 흘렀다.

길미선, 아픔의 상징이다. 엄마인 박영옥과도 연락을 끊고, 남편과 남편의 남동생들에게까지 무시당하고, 딸과도 시한폭탄을 안고 만난다. 결정적으로 첫 딸, 이정연의 죽음은 이 모든 아픔의 시작점이자 관계의 마침표다. 하나하나 맞서며 살기에 세상은 험난하다 판단하고 피하며 지혜롭게 살았다고 여기며 딸 이지연이 평범하게 성장하길 바랐지만 딸은 이혼으로 치달았다. 유방암의 재발로 희망이 없어 보였지만, 친구 명희의 도움으로 자기 삶을 찾아 나섰다.

이지연, 희망을 꿈꾼다. 5살 때 잃은 언니를 가끔 떠올렸지만, 상처받은 엄마는 냉정했다. 평범한 가정을 꾸리려 애썼지만 남편의 외도로 상실감만 컸다. 그녀에게 회령은 회복의 도시고 할머니 박영옥은 차가운 백사장에서 바라본 환한 반달이었다. 할머니 박영옥이 있었기에 그녀에게도 밝은 밤이 다가왔다.

소설 《밝은 밤》은 여성 4대의 상처와 회복, 우정과 사랑을 담은 백 년의 이야기가 현재를 중심으로 과거로 오가며 미래를 말한다. 이 책을 읽고 떠올린 질문과 성찰은 세 가지다.

첫째, 작가는 왜 여성으로 가득한 세상을 만들었을까? 4대 여성의 가족, 친구, 주변 인물을 포함하여 수십 명이 등장한다. 그런데 제대로 된 남자는 없거나 주변부에 존재한다. 이정선의 남편 박희수(이지연의 증조부)는 처음에는 이정선을 존중하고, 전쟁의 희생자가 되지 않도록 구해주는 듯했다. 하지만 개성에서 방앗간 일을 하며 백정의 아내를 지켜주지 않고 무시했다. 자신의 딸마저 이미 결혼 경험이 있는 길남선에게 떠맡겼다. 새비 아저씨는 새비 아주머니의 반대를 무릅쓰고 일본에 돈 벌러 갔다가 원폭증에 걸려 돌아왔다. 박영옥의 남편 길남선은 북에 아내가 있다는 사실을 숨기고 장가를 갔고, 나중에는 전처를 따라갔다. 길미선의 남편은 딸과 아내가 삼촌에게 감정적인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못 본 체했다. 삼촌들은 이지연을 욕했다. 이지연의 남편은 외도까지 했다. 더군다나 수학을 전공하고 박사가 된 암호학자 김희자가 기자와 인터뷰할 때 기자는 "여자로서 수학을 전공하는 게 어렵지는 않으셨을까요?"라는 질문으로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현실에서 여성이 억압을 당하고 차별을 받지만, 이 소설에서 여성과 남성의 비중에 괴리감을 느꼈다. 여성작가여서 여성의 이야기가 많은 것일까? 아니면 성별로 차별받는 여성의 존재감을 극대화하려는 페미니스트적인 발상인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여성천하 소설은 여성 독자인 나에게도 부담스러웠다. 독자의 한줄평에 "여성이라면 누구나"라는 글도 있는데 남성 독자는 얼마나 이 소설을 읽을 지, 읽는다면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했다.

둘째, 갈등을 피하는 게 능사일까? 이지연은 남편과의 관계가 위태로울 때도, 진심 어린 사과만을 바랐지만 받지 못했다. 엄마와의 관계가 정말 끝이 날까 봐 두려워 싱거운 이야기만 나눴다. 그렇게 피하고 맞으며 감정의 쓰레기통에 빠져 살았다. 엄마가 그렇게나 바라던 평범한 삶은 남편의 외도로 깨지고 말았다. 작은 돌을 피하다 큰 돌에 깔린 셈이다. 엄마 길미선도 마찬가지다. 첫 딸을 잃은 슬픔을 극복하지 못했고, “맞서다 두 대, 세 대 맞을 거, 이기지도 못할 거, 그냥 한 대 맞고 끝내면 되는 거야."라고 조언한다. 맞서면서 인생을 살 수 없다고 그냥 피하는 게 지혜로운 거라 알려준다.

갈등에 익숙하지 않은 나는 사실 정면으로 부딪치는 방법도 모르고, 지혜롭게 해소할 줄도 모른다. 갈등의 조짐이 보일라치면 도망가기 바빴다. 상대가 나를 싫어하는 것 같으면 굳이 만나지 않았고, 불만이 감지되면 그 자리를 피했다. 상대가 말로 통할 것 같으면 조목조목 설명하고 설득하지만, 막힌 사람이라면 힘들어도 내가 직접 처리했다. 상대를 바꿀 순 없어도 나는 바뀔 수 있다고 믿고 요리조리 편한 길만 다녔다. 그게 길미선이 말하는 지혜일지는 모르겠지만, 여전히 관계는 어렵다. 돌이켜보면 피하는 게 능사는 아니다. 이지연처럼 곪아 터지면 해결 방법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세게 부딪히거나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게 지름길일 테다.

과거 황당한 경험을 했다. 이전 직장에서 한 다른 부서의 매니저에게 동의를 구해 해당 팀원에게 업무 협조를 요청했다. 시간이 넉넉지 않은 프로젝트여서 최대한 그가 기꺼이 업무를 공유받아 일할 수 있도록 설명했다. 그런데 그가 갑자기 사무실 전 직원이 들을 만큼 큰 목소리로 외쳤다. 

"난 사장이 시켜도, 그 누가 시켜도 못하니까 알아서 해!"

수치심을 느꼈다. 갈등의 조짐이었다. 누군가가 나에게 큰소리로 반말하는 걸 모든 사람이 보고 들었다. 이때 반응에 따라 다른 사람들이 나를 평가할 것이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세게 받아치면 사람들은 나를 두려워할 것이고, 지고 들어가면 나를 무시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감정보다는 다른 사람의 시선이 먼저였다. 그 순간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랐다. 평생을 살며 처음 맞은 상황이었다. 

부끄럽게도 당당하게 말하지 못하고 나를 합리화하기 시작했다. 

'내가 여기서 과잉 반응하면 더 이 사람의 화를 돋우게 되니 일단 벗어나자.' 

'나중에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끼겠지.' 

그 자리를 그냥 벗어났다. 그리고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했다. 내 감정을 철저히 무시했다. 길미선처럼 한 대 맞고 끝낸 것이다. 

친구들은 언어폭력이라며 인사팀에 알리라고 했지만, 그조차 시도하지 못했다. 만일 한 번 더 그런 상황이 온다면 이제는 여성 선배들의 평생의 지혜로 용기를 내고 싶다. 여성이든 누구든, 약자는 용기를 내어 표현하고, 안전한 곳에서 공유할 수 있도록, 우리 사회는 더 오픈하고, 배려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에게 거짓말하지 않고 손을 내밀 것이다. 감정적인 가능성으로부터 차단된 채로 미지근한 관계 속에서 안전하게 살아가지 않겠다.

"그랬니, 그랬구나, 나도 마음이 아프다."

세 번째는 다른 누구도 아닌 나의 관심을 바라면서, 누구도 아닌 나에게 위로받기를 원하면서 나를 기다리는 나에게 손을 내미는 것이다. 나를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을 용인했던 나와 자신을 공격하기 바빴던 나에게도 다가가 귀를 기울일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겠지.

"나야. 듣고 있어. 오랫동안 하고 싶었던 말을 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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