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회사에서 새 노트북을 받았습니다. 입사할 때 받은 노트북을 4년이 지나야 새 노트북으로 교체해 주기에 그날을 손꼽아 기다렸죠. 시간이 갈수록 노트북의 속도는 느리고, 하드 디스크 용량이 부족해서 계속 파일 지우는 게 일이었거든요. IT 부서를 방문해서 새 노트북을 수령해 기존 노트북에 있는 파일을 모두 복사했습니다. 과거 노트북 설정의 문제였는지 기존 파일을 다 복사해도 새 노트북 하드 디스크의 30% 정도만 차지하더군요. 제가 뭔가 서버와 연동하는 프로그램을 잘못 설정해서 서버의 파일과 동기화를 하다 보니 노트북 용량이 부족했나 봅니다. 제가 잘못하고선 애꿎은 노트북 탓을 했네요.
금요일에 기분 좋게 새 노트북을 받아 프로그램도 깔고 맞춤화를 한 후 월요일에 즉시 업무를 시작하도록 준비했어요. 절전모드로 해두고 주말을 보내다가 문득 아웃룩 설정을 빠뜨린 게 기억나서 토요일에 새 노트북을 펼쳤습니다. 그런데 전원 버튼이 보이지 않았어요. 식은땀이 났습니다. 설마 전원 버튼이 없을 리가요. 이리저리 뒤집어보고 자세히 살펴봐도 전원 버튼은 없었습니다. 노트북 제작 오류이겠죠? 아니 그럼 IT 부서에서는 어떻게 노트북을 설정했을까요?
사진에 intel core라고 표시된 파란 스티커 옆 작은 네모를 열심히 눌렀지만 전원 버튼이 아닌 듯했습니다. 일단 주말에 작업은 어려울 것 같았고 월요일 9시가 되자마자 IT 부서에 모바일로 채팅 문의해야겠다 생각했습니다. 월요일 아침은 IT 부서가 가장 바쁠 시간인데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죠. 그나마 주말에 문제를 알아 미리 마음의 준비를 했기에 다행이다 싶었어요.
월요일 아침 9시가 되자마자 문의했더니 IT 부서 담당자는 오른쪽 상단에 전원 버튼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분명 오른쪽이고 왼쪽이고 아무것도 없는데 말이죠. 그래서 사진까지 찍어서 보내줬습니다. 도대체 어디에 버튼이 있는지 알 수 없다고 말했죠. 그렇게 말하고 다시 오른쪽 상단을 자세히 쳐다보니 낯익은 전원 표시가 키보드에서 보였습니다. 아뿔싸, 전원 버튼이 키보드 위에 함께 있을 줄 상상이나 했을까요? '전원 버튼은 키보드가 아닌 다른 버튼으로 존재한다'라는 저의 선입견이 무너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요즘 노트북은 키보드에 전원이 있는 경우가 많다네요. 제가 너무 모르고 살았어요. (옛날 사람 ㅠㅠ)
새로 입사하는 분들을 대상으로 버추얼 교육을 진행하는데 가끔 비디오를 못 켜는 분이 계셨습니다. 본인은 비디오를 켰다는데 화면이 까맣게 나오더라고요. 카메라를 가린 게 아니냐고 물었지만 그렇지 않다고 하셔서 IT 부서와 확인해보라고 말씀을 드렸어요. 제 마음속으로는 '분명 카메라를 가린 게 맞는데 왜 그걸 모를까?'라며 답답하게 여겼어요.
제가 바로 그 답답한 사람이었습니다. 새 노트북으로 콘퍼런스 콜을 하는데 어느 날 제 비디오 화면이 까맣게 보였습니다. 노트북을 자세히 살펴봐도 카메라 가리개는 없었어요. 카메라 설정 문제일 거로 생각하고 IT 부서에 문의했습니다. IT 부서 담당자는 카메라가 가려진 것이라며 옆으로 밀면 된다고 답했습니다. 아무리 봐도 없다며 또 사진을 찍어 보냈습니다. 다시 찬찬히 보니 카메라 가리개가 정말 작아서 의도적으로 밀지 않으면 밀리지 않을 듯이 조용히 숨어 있더군요. 억지로 힘을 줘서 미니까 비디오 화면이 보였습니다. 노트북을 닦다가 밀렸나 봅니다.
직접 겪어보기 전까지는 다른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면 안 되겠더라고요. 저 같은 사람이 많은지 위의 사진에 보시면 오른쪽 아래 스티커에 카메라 가리개 설명 사진이 있습니다. 이마저도 오늘 사진 찍으며 발견했습니다. 노트북에 붙은 스티커는 모두 광고라고 생각하고 자세히 보지 못한 제 잘못이 큽니다.
결정적으로 저의 무던함과 아둔함을 새 노트북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과거 노트북으로 아침에 VPN을 연결하는데 10분에서 30분 정도 걸렸습니다. 때로는 노트북을 껐다 켜야 겨우 붙었어요. 제 노트북의 문제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어요. 그냥 회사 VPN이 느린가 보다 생각했지요. 새 노트북이 기존 노트북과 큰 차이가 없는데 차이가 있다면 메모리가 2배라고 들었어요. 그래서일까요? 새 노트북으로 VPN을 연결하면 딱 30초가 걸렸어요. 빨리 접속되어 생산성이 늘어 좋지만, 원인을 찾지 않고 현상을 당연하게 받아들인 제가 부끄러웠어요.
변화와 도전의 전도사라고 소리치고 다니지만 정작 저는 기존 방식만 집착하고 현상에 의문을 품지 않는 고정 마인드셋의 사람이 아닌가 잠시 멈짓했습니다. 새 노트북 덕분에 고정된 시선을 펼쳐 당연한 현상의 원인을 밝히는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헌 노트북을 반납하듯 제 고정 마인드셋은 버리고 새 노트북처럼 성장 마인드셋으로 오늘을 시작합니다.
여러분에게도 비슷한 경우가 있지 않나요? 저만 어리바리한 거 아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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