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태지역팀 10%의 인원이 잘렸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혹시라도 한국도 해당할까 봐 문의하는 팀원도 있었는데 다행히 그러진 않았습니다. 모두 놀라 회사에 실망하고 정떨어진다는 반응이었습니다. 나가야 하는 직원 중에 저성과자도 있지만,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직원도 있고, 최근 아이를 출산한 엄마도 있습니다. 작년 출장지에서 함께 밥 먹고 조언도 주고받은 동료도 있어서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살아남은 것에 안도의 한숨을 쉬어야 할지 떠나는 자에게 위로의 눈빛을 보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그들은 작별 인사도 못 하고 조용히 사라지겠지요.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은 저도 여전히 마음이 어지럽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는데요. 이런 상황을 처음 보는 직원의 마음은 어떨지 착잡합니다. 한국과 일본은 그나마 노동법의 보호를 받는다지만 예외는 아닙니다. 동남아 국가의 경우 해고 통보를 받고 짧은 시간 안에 짐을 싸서 나가야 하더군요. 전 직장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있었는데요. 인도에 있던 동료는 아침에 갑자기 매니저와 인사팀과의 미팅이 잡혔다며 울먹였습니다. 미팅이 끝난 후 짐을 싸서 떠나야 했죠. 그렇게 하나 둘, 비자발적으로 우리 곁을 떠납니다.
평생직장이 아닌 이상, 영원한 동료는 없다지만 예상하지 못한 이별이기에, 또 나에게도 닥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심장은 차갑게 굳어갑니다. 항상 좋을 수는 없겠지만, 왜 이런 아픔과 시련이 우리에게 오는 걸까요?
과거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습니다. 당시는 힘들었지만, 극복하며 더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고 지났으니 이렇게 편하게 말할 수 있겠죠? 회사가 인수합병되어 인원의 1/3을 줄인다는 소문이 돌았고 이미 명단이 만들어졌다는 말도 있었습니다. 보통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서는 매출을 생성하지 않고 돈을 쓰는 부서로 인지되는 교육담당이 주요 대상입니다. 교육담당이었지만, 인수합병에 주도적인 변화관리를 담당했고 인사팀 소속이어서 설마 저는 아닐 거라고 믿었습니다. 대상이라면 매니저가 언질을 줬을 텐데 아무런 낌새도 없었거든요.
이런 상황에서 살아남으려면 중요한 일을 하는 핵심 인재이거나 혹은 매니저가 가치 있게 여기는 직원이어야 하는데요. 아니었나 봅니다. 교육담당이니 중복이라고 생각했겠죠. 매니저가 조용히 저를 불러서 그동안의 불만을 토로하며 명예퇴직을 권고했습니다. 적어도 인사팀이라면 다 알고 있었을 텐데 미리 알려주지 않은 매니저가 섭섭했습니다. 사실 지금도 용서할 수 없습니다.
당시 교육담당으로 직무를 바꾼 지 2년도 안 된 부장이었고 막 기업교육으로 대학원을 시작한 때라 난감했습니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 아이도 키우고 돈을 벌어 대학원에 다니는 입장이었는데요. 처음 겪는 일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적절한지 알 수 없는 명예 퇴직 패키지를 받고 나가야 할지, 아니면 버텨야 할지 알 수 없었어요.
다른 이유로 1년 동안 보직 없이 버티다 결국 다른 곳에 취업하고 퇴사한 동료도 생각났지만 그런 용기는 없었어요. 다행히 아는 노무사가 있어서 상담했습니다. 제안받은 명퇴금에서 한 달 정도 더 받는 것으로 합의를 보고 다른 곳에 취업하는 게 정신 건강에 좋겠다고 권하더군요.
개발 13년, 교육담당 2년으로 퇴사한 저는 교육담당 업무보다 개발 업무로 일자리 제안을 더 받았지만, 다시 개발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없었습니다. 평생 일을 얻지 못할지도 모르는 리스크를 안고 대학원을 다니는 게 사치는 아닌지 수없이 고민했습니다. 다행히 끝을 보겠다는 신념이 있었기에 학업을 중단하지 않았고, 그 과정에 취업의 기회를 얻었습니다. 바닥을 치고 다시 시작한 교육담당 직무를 13년 더해 이제는 개발 경력 보다 더 긴 경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아픔이 있었기에 성장했고, 평생 직장은 없어도 평생 직업은 있다는 믿음으로 지금까지 일합니다.
10%가 나가고 남은 90%는 살아남은 자로서 슬픔을 견디어 내며 나간 이들의 일까지 떠맡게 되겠죠. 언제 우리가 그 10%에 해당할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필살기를 하나씩 키우기도 하겠죠. 당분간 협업보다는 경쟁이 만연할 수도 있습니다. 회사 밖의 기회도 기웃거려 봅니다.
죽음이 예정되어 있기에 오늘 하루가 빛나는 것처럼, 언제 회사를 떠나야 할지도 모르기에 오늘 하루 최선을 다해 일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과거의 저처럼 억울하지만 떠나야만 하는 동료가 아픔을 빨리 잊고 더 좋은 성장의 기회를 얻기를 기대합니다. 부디 경기가 좋아져서 우리 모두가 이런 아픔을 경험하지 않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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