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세대는 회식을 좋아하지 않는다고들 한다. 사전에 일정을 확인하지 않고 갑작스럽게 회식을 통보하거나 고기를 굽는 등 갖은 뒤치다꺼리를 막내에게 요구하는 일방적인 행태 때문일 거다. 얼마 전 읽은 책에서 회식에 참여 못 한다는 MZ세대 직원에게 이유를 들은 팀장이 아연실색했다는데. 오래 기다리던 택배가 오는 날이라 직접 받아 언박싱해야 한다는 이유로 회식을 거절했다고. 귀한 손님이 오는 것도 아니고, 가족 생일도 아닌 택배에 회식이 밀렸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고.
여전히 보수적인 조직에서는 센스있는 건배사를 찾아 외쳐야 하고, 주말마다 임원과 등산을 한 후 막걸리를 의무적으로 마셔야 한다고 들었다. 나조차도 그런 직장을 절대 다닐 수 없을 것 같은데, 젊은 직장인들은 얼마나 숨이 막히고 힘들까? 사회에서 만난 사람과의 모임인데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우대받으려고 용쓰는 사람의 모습을 봐도 꼰대스러움에 치가 떨릴 정도인데 말이다. 그런 이유로 한때 공무원이 선호 직업 1위였지만 요즘은 그 인기가 시들해졌다고 한다.
한때 나도 참여하고 싶지 않은 회식의 흑역사가 있다. 평소 못먹는 음식을 먹으니까 회식까지는 괜찮다. 문제는 2차다. 노래를 극혐하는데 굳이 노래방에 가잔다. 어두컴컴하고 퀴퀴한 냄새가 나는 지하 노래방. 어쩔 수 없이 따라가 가만히 앉아 있으면 자꾸 노래를 부르라고 시킨다. 사람들 앞에서 춤추고 노래 부르느니 밤새워 야근을 하겠다. 어릴 땐 분명 동네 할머니와 할아버지 앞에서 춤추며 "저 푸른 초원 위에"를 불렀다. 그때 내 평생의 끼를 모두 발산했는지도.
국내 기업에 다닐 때만 해도 회식의 주메뉴는 삼겹살이었다. 2차는 호프집에 가서 골뱅이나 소시지 안주를 먹었다. 3차로 노래방에 가곤 했다. 외국계 기업에 근무하면서부터 조금씩 회식 문화가 바뀌었다. 팀장의 성향 때문이었는지 몰라도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하거나 영화나 뮤지컬을 보는 문화 회식을 했다. 생각해 보면 그때가 가장 즐거웠다.
아태지역 소속으로 국내에 팀원이 없는 외국계 기업에 근무한 적이 있다. 국내에 있는 직원 대상으로 교육을 기획했다. 외부 강사를 초빙하거나 직접 강의하고 보고했다. 국내 회사에서 일하지만 혼자 섬에서 일하는 느낌이었다. 몇몇 친한 동료가 생겨도 사적 네트워크였고 공적인 조직이 아니었기에 팀 회식이 부러웠다. 아주 어쩌다 다른 부서의 초대로 같이 회식하기도 했지만, 일 년에 한두 번 정도였다. 국내에 같이 일하는 동료 하나 없는 것만큼 외로운 일도 없었다.
국가는 자연의 피조물이며, 인간은 본성적으로 사회적 동물임이 명백하다.
–《정치학》 - 《미치게 친절한 철학》 중에서
그렇다. 우리는 혼자보다는 함께 일하는 사회적 동물이다. 우리가 '일'이라는 독특한 생활양식을 만든 것은 혼자 무언가를 하기보다는 함께 힘을 합쳐 결과를 이루어 내는 게 훨씬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회식은 그런 일을 관계로 엮는데 필요한 윤활유다.
여기서 갖은 양상을 본다. 회식에도 철학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얌체형 인간은 노노다. 식당 테이블에 앉으면 수저부터 세팅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나나나!) 물까지 따를 때까지 손가락 까딱 안 하는 인간이 있다. 정말 모르는 것인지 모르는 체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눈 좀 뜨고 다니시라고! 회식 테이블에서 해물탕 대자를 시켜 먹는데, 동료 한 명이 말 한마디 없이 고개를 숙인 채 정신없이 먹더라. 뭔가 귀한 재료가, 전복 같은 게 분명히 있었는데, 국자가 몇 번 오고 가더니 사라졌다. 뭐지?
아무튼 우리는 사회적 동물이므로 일이 되었든 회식이 되었든 다른 사람을 배려하면 좋겠다. 배려까지 바라지 않는다. 최소한 공평하게,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에피쿠로스는 “우리가 가진 것이 아니라 우리가 즐기는 것이 우리를 풍요롭게 한다”며, 올바른 마음가짐만 갖춘다면 아주 적은 양의 치즈만으로도 소박한 식사를 성대한 만찬으로 바꿀 수 있다고 말한다. -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중에서
회식의 메뉴나, 매너나, 장소를 다 떠나서 가장 중요한 건 올바른 마음가짐이다. 팀으로 같이 뭔가를 만들어 보겠다는 마음가짐만 있다면 소박한 식사가 진수성찬으로 변한다. 그래도 때로는 한우가 먹고 싶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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