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줄 놓고 길을 걷다 보면 누군가가 다가와 묻습니다.
"도를 믿으십니까?"
코로나로 이런 분도 많이 줄어들긴 했지요. 브런치나 블로그 글을 스쳐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이렇게 묻고 싶어요.
"산책을 믿으십니까?"
회사와 집의 편도거리가 2km가 된 시점부터 걷기를 즐겼어요. 만원 버스나 지하철로 시달리며 이동하는 시간이나 여유 있게 걸어가는 시간이 비슷하다는 것을 알고 걸어서 통근했습니다. 30분 정도 걷는 동안 영어방송을 듣기도 하고, 혼자 문장을 외며 중얼거리기도 했죠. 때로는 이런저런 생각을 했는데 그때마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산책을 즐기게 되었어요. 이직한 회사는 4km 거리여서 지하철만 타고 다녔는데 막상 1시간 걸어보니 힘들지 않았어요. 한계는 깨기 위해 존재하나 봅니다. 저의 산책 거리는 그렇게 2km에서 4km로 점프했죠. 그럼 저는 왜 여러분에게 막아서서 산책을 전도할까요?
첫째, 산책은 오감을 깨웁니다.
코로나가 시작되며 집콕을 했어요. 강제 재택근무였습니다. '아니 왜? 꼭 그렇게 해야만 하나?' 사람을 만나고 싶다고, 출퇴근하고 싶다고 몸과 마음이 아우성쳤어요. 하지만 작은 반란은 일주일 만에 돌아섰습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 맞더군요. 일주일이 지나니 재택이 편해졌어요. 그 편함 속에서 원칙이 필요했는데 그중 하나가 하루 1시간 산책입니다.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지키는 루틴이죠.
처음엔 동네 산책으로 시작했어요. 1시간 동네 주변만 맴돌았어요. 어느 날 선정릉에 도전해 보고 싶었죠. 생각보다 멀지 않더군요. 저의 걷기 한계 거리인 4km 범위에 들었거든요. 그 이후 매일 선정릉을 산책합니다. 선정릉 바깥 길에 접어드는 순간 코가 벌렁거립니다. 축축한 흙냄새가 코를 자극합니다. 비 오는 날엔 찐하게 다가오는데 신기하게 맑은 날에도 커피 향이 납니다. 요즘은 단풍이 제대로 들어 빨갛고 노란 잎이 자태를 뽐내네요. 이어폰 속에서 들려오는 오디오북에 집중하거나 때로는 잔잔한 음악에 몸을 맡깁니다. 저도 모르게 춤도 추고 흥얼거리며 경쾌한 발걸음을 내디딥니다.
둘째, 산책은 체력을 관리합니다.
걷기가 운동이 안된다며 반대하는 사람도 많아요. 하지만 걷기조차 하지 않으며 다른 운동도 하지 않는 게 현실이 아닌가요? 꼭 걷기가 다이어트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 않거나, 운동량이 부족하다 하더라도 집이나 사무실에서 8시간 이상 앉아 일하는 사람에게는 서서 걷기가 도움이 됩니다. 한국건강증진개발원에서도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신체활동의 기회가 점점 줄어가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걷기는 누구든지, 언제, 어디서나 일상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신체활동"이라고 소개합니다. 규칙적으로 바르게 걸으면 사망위험, 심장병, 뇌졸중, 고혈압, 당뇨병, 비만 위험, 우울증 위험, 치매 위험을 감소시킨다고 하니까요.
실제로 꾸준히 하루 4km 걸어 군살이 빠졌어요. 술도 끊고 먹는 양도 줄이긴 했지만 특별히 다른 운동을 하지 않고 걷기만으로 체력을 관리합니다. 근육이 부족하기에 최근 계단 오르기 운동을 시작했어요. 계단 오르기 운동은 조금 힘드니 우선 걷기부터 시작해 보세요.
셋째, 산책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합니다.
산책이 아이디어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은 많아요.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나 하정우의 《걷는 사람, 하정우》만 읽어도 당장 달리거나 걷고 싶죠. 정여울의 《그림자 여행》 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합니다.
"일감의 실마리가 영 풀리지 않을 때, 차라리 살짝 포기하는 심정으로 무작정 산책을 나가면 신기하게도 돌아오는 골목 어귀에서 싱그러운 착상이 떠오르곤 한다."
정여울의 《그림자 여행》 중 '나를 깨우는 산책자의 발'에서
《Informal learning: A new model for making sense of experience》에서 창의적인 프로세스는 준비, 인큐베이션, 통찰, 평가를 거친다고 해요. 특히 인큐베이션 단계가 중요한데, 특정 문제에서 벗어나 잠재의식으로 병렬적인 프로세스를 따릅니다. 인큐베이션은 움직임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나 실제로는 이동하며 생겨납니다. 운전, 걷거나 조깅, 정원 돌보기, 집안일을 하면서 통찰을 인큐베이션하는 거죠.
4km 출근길에서는 주변의 건물과 나무, 꽃을 보며 사색에 잠겼고, 한때는 집 주변 공원을 세바퀴 돌며 아이디어를 쏟아냈어요. 이제는 선정릉을 돌며 새로운 도전과 결심을 만듭니다.
이렇듯 산책은 오감을 깨우고, 체력을 관리하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전합니다. 그러니 "산책을 믿으십니까?"라고 다가오는 저 같은 사람이 있다면 반갑게 "네"라고 대답해야 하지 않을까요? 오감으로 살아 있음을 느끼고 체력도 증진하고 아이디어도 얻는데 돈 한 푼 들지 않아요. 돈보다 소중한 시간은 필요합니다만 이런 종합선물세트를 받는다면야...
자! 내일부터 저와 함께 산책을, 선정릉에서 만나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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