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계 기업에서는 5를 시켰는데 10을 하면 칭찬받고, 국내 기업에서는 5를 시켰는데 10을 하면 혼납니다."
얼마 전 취준생(취업을 준비 중인 학생)에게 한 말이다. 물론 5를 시켰는데 10을 하면 칭찬하는 국내 기업도 있다. 사실 기업 문화의 차이라기보다는 매니저의 성향에 따라 다르지만 전반적인 문화를 알려주려고 그랬다. 5를 시켰는데 10을 하는 이유는 그 일에 대한 주인 의식 때문이다. 큰 그림을 그리며 다양한 시도로 향상하려고 노력한다는 의미다.
언젠가 국내 회사에서 퇴사 면담을 하는데 매니저가 생각지도 못한 피드백을 줬다. 내 마음대로 일하고 자기에게 자세하게 보고하지 않아 섭섭했다고. 당시 나는 부장이었고 그는 상무였는데 시시콜콜 보고받고 마이크로 매니지먼트하길 원했던 걸까? 디테일한 보고를 원했다면 다니는 동안 피드백을 주던가 굳이 퇴사하는 사람에게 그런 말을 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는 범위 외의 5를 자신의 허락도 없이 마구 벌인 내가 마뜩잖았던 거다.
외국계 기업에서도 매니저의 성향 때문에 비슷한 상황을 겪었다. 예전 직장에서 글로벌 기업 교육의 베스트 프랙티스(모범 사례)를 고객 세미나에서 소개해달라는 요청을 영업 직원에게 받았다. 주로 사내 직원을 교육하는 내 업무 범위에서 벗어나 고객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생각을 하니 무조건 하겠다고 승낙했다. 하지만 매니저는 업무 분야가 아닌데 굳이 왜 하냐며 반대했다. 매니저를 설득해서 세미나를 진행하긴 했지만 주어진 일이나 열심히 하라는 보수적인 태도를 확인한 셈이었다. 결국 회사가 홍보되어 고객의 의사결정에 도움이 되는 일인데 영업 직원만 고객을 지원한다는 사고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내 인생은 내가 책임진다
사르트르의 철학을 주체의 철학이라고도 합니다. 자기 삶의 주체가 될 것을 강조하기 때문입니다. - 《미치게 친절한 철학》 중에서
선생님 그림자도 밟지 말라는 부모님의 말씀에 세뇌당한 나는 시키는 일은 뭐든 잘하는 사람이 될 거라 믿었다. 사회 초년생 때는 사수가 알려주고, 시키는 일을 열심히 했다. 일이 익숙해지니 근무 시간에 여유가 생겼다. 어차피 월급은 나오니 주어진 일만 하고 나머지 시간에 멍때리며 보내는 건 돈 낭비, 시간 낭비였다. 무엇보다 몸이 근질거렸다.
직장 생활을 해나가며 학생과는 다른 사람이 되어 내 일에서 주체가 되길 바랐다. 독립적인 성향이 점점 강해져 주어지는 일은 기본이고 시키지도 않은 일을 만든다. 같은 일도 어떻게 다르게 신나게 할지 고민한다. "사장도 아닌데 뭘 그런 고민을 하느냐?"라는 말을 때때로 듣기도 하지만, 더 잘할 수 있는데 굳이 안 할 이유가 있을까?
이런 나의 성향은 국내 기업보다는 외국계 기업에 어울린다. 국내 문화에 동화된 외국계 기업이 아닌 스타트업 정신을 가진 조직문화에서 빛을 발한다. 없으면 새롭게 만들고, 있는 걸 더 개선해 나가는, 도전이 실패가 아니라 학습의 기회로 여기는 회사.
도전의 기회 중 하나로 팀원의 성장을 돕는 매니저가 되었다. 시니어 팀원에게 내가 어떻게 하면 그가 즐겁게 일할 수 있냐고 물었다.
"저를 믿고 일을 맡겨 주는 게 좋더라고요. 그럼 알아서 잘해요. 대신 그 일이 매력적으로 보이게 해 주셔요."
큰 그림만 던져주면 스스로 세밀하게 그려 나겠다는 말이다. 그렇지. 나도 그랬다. 어라. 고난도 요구사항이 추가되었다. 어떻게 그림에 빠지게 할까? 새로운 프로젝트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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