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님은 혹시 이런 대화를 나눠본 적이 있나요? 이건 비단 프로덕트 매니저만 할 수 있는 얘기는 아니지만, 직접적으로 고통을 받는 직군은 확실합니다. 리더든 고객이든 외부의 요구사항을 가장 먼저 받아들여야 하는 역할이기 때문이겠죠.
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 A와 B는 사실 직관형(S) PM입니다. MBTI 의 다른 요소들보다 상상력이 높고 아이디어를 발산 하는 N(직관형, iNtuition)과 현실적이고 디테일을 이야기하는 S(감각형, Sensing)의 차이가 PM에게는 조금 더 체감 되는 것 같습니다. 넓은 범위의 일을 수행하는 PM의 역할에서는 두 역량을 모두 어느정도 갖춰야 하는데, 한 쪽에 무게가 쏠려있다면, 일하는 방식도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프로젝트 경험이나 도메인에 대한 전문지식은 시간이 지나면서 학습이 됩니다. 하지만 '새로운 아이디어 도출' '비전제시' 와 같은 보다 추상적인 일 앞에서는 상대적으로 선천적인 센스를 필요로 한다는 느낌이 들죠. 이 문제에서 간과하기 쉬운 것은 'PM의 상상력'은 천재적인 발상이나 갑작스러운 창의적 영감이 아니라는 점 입니다.
PM의 상상력은 현실에서 시작합니다.
'미경님은 N아니었어요? 지금 당장 못할 것 같은 얘기도 자주 하시던데?' 라는 동료들의 피드백을 종종 듣기도 합니다. 저는 S입니다. 갤럽 강점검사 Top10 에도 전략/정리/집중 등의 테마가 가득하죠. 기억력도 좋습니다. 과거 정책이나 히스토리까지 기억하다보니, 현실성 없는 얘기를 들으면 손톱 밑에 가시처럼 매우 거슬릴 때도 많아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상력이 풍부한 것처럼 보일 때가 있나 보더라구요.
저는 그 비결이 바로 '다음 단계를 충분히 예측해두기' 라고 생각합니다. 어떠한 근거나 가설을 씨앗으로 삼아 수 많은 가능성들을 펼쳐놓고, 가고자 하는 방향을 찾아서 결론만 이야기를 하는 거죠. 그 과정에 얼마나 많은 검토가 있었는지에 대해서까지는 알려주지 않기 때문에 갑자기 이야기를 하면 '비전' 처럼 보이는 착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가 닥터 스트레인지처럼 모든 엔딩을 다 보고 올 수 있다면 좋겠지만, 충분히 다음, 다음, 그리고 다음의 다음까지 예측해보는 것은 PM의 상상력을 키우는 좋은 훈련이 됩니다.
'만약에' 훈련도 상상력을 키우는데 도움이 됩니다. 내가 일어날거라 생각해본 적 없는, 일어나길 바라지 않는 일에도 '만약에'를 붙여보세요. 만약 이 방향으로 들어선다면, 들어서지 않는다면을 여러번 검토해보세요. 단순하게 O/X 로 2번이면 4가지, 5번을 하면 32가지의 길이 열립니다. 이런 식으로 찾아낸 수 많은 경로 중에 어떤 길로 가는것이 우리가 그리는 프로덕트의 종착지 혹은 비전과 맞닿아 있다면 결정해보는 겁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는 것 아니겠어요?
직관형 PM의 상상력은 현실에서 시작해 경우의 수를 넓히는 방법을 써야 합니다. 수 많은 데이터, 다양한 데이터, 많은 레퍼런스, 고객의 보이스와 사업적 목표, 동료들과의 잡담에서까지 구독자님이 알고 있는 것들은 이미 넘쳐납니다.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something new 를 만들어내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됩니다.
현실성 없는 얘기를 구체화시켜보세요.
요구사항은 원래 모호한 것입니다. 현실의 문제를 프로덕트로 해석해내는 과정이기 때문에 통역과 해석이 필요하죠. 이 판단을 피저빌리티(feasibility, 실행가능성 또는 실현가능성) 라고 합니다. 만약 ‘피저빌리티가 너무 낮아요' 이런 피드백을 들어봤다면 ‘이건 너무 애매해서 개발 못들어간다' 라는 뜻이죠. 이는 PM의 핵심 역량인 문제 정의와도 맞닿아 있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뜬구름 그 잡채 앞에 서면 원래 잘하던 일인데도 짜증나게 만듭니다.
만약 구독자님의 포스팅에 오랜만에 SNS로 전 직장 동료가 “언제 밥 한번 먹어요" 라는 댓글을 남겼다면 ‘귀찮은데' 라거나 ‘밥 먹을일 없겠네' 라는 생각이 들겠죠.
- 혹시 좋은 소식 있어요? 이직이라든지, 결혼이라든지? (Why)
- 다른 분들도 같이 갈까요? 누구랑 먹을까요? (Who)
- 저는 요즘 프로젝트가 바빠서 다음 주 목요일이면 좋을 것 같아요. (When)
- 혹시 못드시는 거 있으세요? 어떤 요리 좋아하세요? (What)
- 좋은데 가서 먹으면 좋겠네요. 요즘 저는 여기 가보고 싶던데요. (Where)
- 어떻게 연락드리면 될까요? 일정 보내드릴까요? (How)
이런 질문들을 하고나면 아마 이런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게 됩니다.
육하원칙에 맞게 적절한 질문을 던지는 것만으로도 전 직장 동료와 2주 뒤 화요일 이직 후 이야기를 나누는 약속, 즉, 피저빌리티를 높이는 대화가 되었습니다. 글을 쓸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래 문장을 한번 볼까요?
- 현재(언제) = 현재의 기간은? 1주일? 1개월? 올해?
- 고객불만의 증가(무엇을) = 빈도가 증가? 이전 동기간에 비해 증가한? 절대 수치가 높은?
- 해결할 방안(어떻게) = 운영적으로? 정책적으로? 시스템적으로?
이 문장에서 보이지 않는 것들도 있습니다. 바로 ‘Why’ 인데요. 모호성 높은 요구사항들은 요구사항 자체가 모호한 것도 있지만, 이 맥락이 나온 배경이 없어서 이해가 어렵다는 문제를 가집니다. 그럴 때에는 ‘이 얘기는 어떤 배경에서 나온걸까요?’ 라는 질문을 해보세요.
이제 처음보다 어떤 일들을 해야할지 조금 선명해지지 않으셨나요? 우리가 ‘모호하다'라고 느끼는 본능적인 감각은 ‘디테일이 없다' 보다는 ‘선명하지 않다'에 가깝습니다. "구체화"는 내용을 더 세세하고 자세하게 만드는 것을 의미하고, "명시화"는 분명하게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세세한 내용보다는 어떤 일이 빠져있는지, 어떤 일이 선명하게 보이지 않는지에 초점을 맞추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장 구체화에 뛰어들기보다는 “명시화”를 먼저 챙기세요. 빠진 항목을 먼저 채우라는 말은 완벽한 계획을 세우기보다는 지금 당장 해야 할 일, 혹은 누락된 중요한 부분을 먼저 처리하는 것이 더 우선순위가 높다는 의미니까요.
하지만 인생은 실전이죠, 상위 리더가 N이라면?
N형 리더는 일반적으로 비전 중심적이며, 멀리 내다보는 전략과 추상적인 목표를 선호합니다. 그들은 미래의 변화 가능성을 상상하고, 새로운 기회를 탐색하는 것을 즐깁니다. 그러나 그들의 비전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행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비교적 덜 신경을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리더도 완벽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N형 리더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모호한 비전으로 인해 구성원을 효과적으로 설득하기 어렵고, 구체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조직의 행동력을 높이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상황이 반복되면 조직의 불만을 키울 수 있습니다.
만약 N형 리더가 영화의 제작자라면, S형 PM은 감독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프로듀서는 영화의 큰 방향을 설정하고, 자금 조달, 배우 캐스팅, 제작 스케줄 관리 등 전체적인 전략을 수립하는 역할을 합니다. 반면, 감독은 제작자가 설정한 큰 그림을 바탕으로 촬영 현장에서 각 장면을 구체적으로 연출하고, 배우와 스태프를 지휘하여 실제 영화를 완성해 나가는 역할을 합니다. PM은 이 감독처럼,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세우고 팀을 이끌어 실제 결과물이 나올 수 있도록 조율하는 역할을 합니다. 제작자가 세부적인 연출에 깊이 개입하지 않고 감독에게 맡기는 것처럼, 리더는 전체적인 방향을 제시하고 실행 단계에서는 PM이 그 역할을 수행하도록 하는 것이 더 효율적입니다.
저는 오늘의 레터에서 리더의 비전을 명확하게 만들고, 조직이 그 비전을 실행할 수 있도록 돕는 것도 PM으로서의 역할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매사에 이렇게 일해야 되나 하는 현타가 올 수는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더 혹은 회사의 방향과 개인의 방향이 일치할 때야 말로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지름길이거든요.
저는 많은 분들이 이 점을 간과하고, 헛소리 하는 리더를 돕지 않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먼저 다가가 내가 돕겠다는 마음으로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그리고 프로덕트의 성공 뿐만 아니라 조직의 목표도 어떻게 더 명확히 할 수 있을지까지 생각해보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아 질문을 드립니다. 요즘 구독자님은 어떤 모호함을 마음에 두고 있으신가요? 이걸 선명하게 해보려면 어떤 질문을 던져봐야 할까요?
✨ MBTI로 바라보는 PM의 일은 제 MBTI에 맞춰 4편으로 계획되어 있습니다. 이 글을 통해 구독자님과 제가 얼마나 가까워졌는지 궁금해요. 오늘의 뉴스레터는 구독자님에게 어떤 의미가 있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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