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람 미술관에서 함께 관람한 '미셸 들라크루아, 파리의 벨 에포크' 전에서 나는 작품보다는 기획 의도와 캡션에 더 빠져 있었다. 왜냐하면 오랜만에 그리운 프랑스어를 읽을 기회였기 때문이다. 아이는 각 섹션 별, 벽에 쓰인 영어를 소리 내어 읽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변성기인 목소리가 멋있어서 아이 옆에 찰싹 붙어 있곤 했다. 아이와 나는 꽃게처럼 옆으로 옆으로 자리를 옮겨가며 그림보다는 캡션의 단어를 작은 소리로 내뱉고 있었다. 이따금 내가 잘 아는 동네가 나오면 아이에게 그곳에 살던 얘기를 들려주었다. 그렇게 둘이 그림보다는 텍스트를 더 많이 보고 온 전시라고 생각했는데 아이는 따뜻한 시절의 미셸 들라크루아 작품 전시를 또 보고 싶다고 했다. 그런 전시회에 함께 가고 싶다고 했다.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작품도 좋아 보였다. 하지만 국회 도서관 여름호에 실었던 '에르빈 부름'의 '1분 조각'을 추천했다. 도슨트를 하기도 했고, 시민기자 대표로 기획취재를 가기도 했으며 칼럼을 쓰기도 해서 내 안에 내재된 내용이 어렵지 않았다. 아이가 네이버에 검색을 해보니 내가 쓴 글이 학술정보에 뜬단다. 아이는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10문장으로 줄여 영어로 발표하는 것이 수행평가라고 했다. 어렵지 않게 화가를 찾았고 충분히 흥미로운 주제인 '1분 조각'으로 수행평가 준비를 끝내고 내 앞에서 영어로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한 문장씩 끊어서 한국어로 번역해 들려주었다. 세상이 좋아졌다. 선생님이 문장을 구성하며 꼭 넣어야 한다는 요소들을 추가 입력하니 한글 문장이 영어로 완벽하게 탄생되었다. 허용되는 범위 내에서 영어 수행평가를 어렵지 않게 마칠 수 있었다. 내용을 암기해 발표하는 것이 남았다.
아이와 함께 미술관에 다닌 것이 쓸데없지 않았다. 미술로 접근해 영어에서 사용하게 되기도 한다. 그러니 체험학습용 미술관 다니기 보다(금방 싫증 날 수 있으니) 그저, 그냥 엄마와 함께 놀러 다니는 것으로 접근해 보면 어떨까. 아이가 미취학 일 때는 색연필, 사인펜, 작은 노트를 챙겨 다녔다. 그러면 아이는 미술관의 맨바닥에 엎드려 그림을 그리고 알 수 없는 문장을 적곤 했다. 내겐 아이가 끄적거린 작은 노트 모두 보물이다. 초등학생이 되고서는 친구들을 초대해 도슨트를 해주기도 하고 미술관 나들이를 갈 때면 주로 수다 꽃을 피웠다. 수다 내용은 작품에 관한 것도 있었지만 대개는 그림과 관련 없는 각자의 이야기들이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미술관을 함께 다닌 아이가 중학생이 되더니 그림을 찾는다. 따뜻한 그림이 있는 미술관에 함께 가자고 한다. 아마도 나와 함께 한 그 시간이 아이에겐 따뜻하게 느껴진 모양이다.
어떤 그림을 보고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기보다는 미술관에 간 그 자체를 즐겨 보면 어떨까. 어찌 되었든 중요한 것은 작가를 하나 더 알고 작품에 대해 이해하기 보다 그 안에 있는 경험이 중요하다. 기왕이면 무언지 모르지만 좋았던 기억으로. 그러면 아이는 그 좋은 기억 안에서 작가를 찾고 역으로 작품을 알아가게 될 거다. 아이와의 미술관 나들이는 그저 편안하게, 관람이 끝나고는 분위기 좋은 곳에 가서 식사를 하고 레모네이드 한 잔도 필수! 그리고 또 이러저러한 수다 꽃. 기분이 좋은 것에서부터 모든 것이 출발해야 오래 가지 싶다.
특별한 아이로 키우는 엄마가 아닌, 평범한 아이와 함께 하는 엄마는 그저 모든 것이 새롭고 기특하기만 하다.
*글쓴이 김상래
융합예술 연구센터 <아틀리에 드 까뮤> 대표, 인문·예술 커뮤니티 <살롱 드 까뮤>를 운영하고 있다. 국회도서관 <상상예술관> 칼럼니스트로 미술 관련 글을 기고하고 있다. <세상의 모든 문화> 필진으로 미술 에세이를 쓰며 블로그 <까뮤의 그림 배달>을 통해 그림을 나누고 있다. 학교와 도서관, 박물관 및 여러 기관에서 유아부터 시니어까지 문화·예술 관련 지식을 나누고 있다. 초등학교에서 창의융합예술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문화·예술로 가득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하루를 알차게 살아내고 있다. 여러 권의 미술 서적을 집필 중이며, 저서로 <실은, 엄마도 꿈이 있었어>, <나의 시간을 안아주고 싶어서(공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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