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을 두려워하고 피하기에 급급한 저는 언제나 좋은 게 좋은 거라며 늘 양보하고 조금은 손해 보고 산다는 마음으로 살아왔습니다. 언제나 이익을 남기며 살 순 없어요. 함께 살아가는 사회니까요. 그런데 어쩔 수 없는 상황은 그렇다 치더라도, 의도적으로 이용당하는 상황까지 참으면 안 된다는 걸 최근에 알았습니다. 또한 다른 누구보다 저를 사랑한다면 더이상 싫은 건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맏며느리니까 당연히 시댁을 최우선으로 둬야 하고, 당연히 시부모님을 모셔야 하고, 명절엔 당연히 시댁 식구를 챙겨야 한다는, 시부모님이 연세가 많으니 시부모님이 우선이고, 친정 부모님은 아직 나이가 있으니 나중에 챙겨도 된다는 말도 안 되는 논리를 못 이기는 척 받아들였습니다. 갈등을 피하고 싶었으니까요. 그래야만 하는 줄 알았습니다. 저희 부모님은 늘 시부모님을 잘 섬겨야 한다고 강조하셨으니까요.
이유는 정확하진 않습니다만, 글쓰기가 작은 불꽃이 되었습니다. 글을 쓰고 성찰하며 저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조금씩 저를 돌보기 시작했고, 작은 용기가 생겨났습니다.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기보다는 조금씩 자기 주장을 했습니다. 20년 이상 맏며느리로 살며 명절에 한 번도 친정에 가보지 못한 저를 가엾이 여겨 처음으로 명절에 제주도 여행을 떠난 게 발단이었습니다. 진정한 자아 독립을 선언했습니다.
최근 저는 1년 동안 침묵한 카카오톡 단톡방 2곳을 나왔습니다. 국민 메신저 카카오톡이 편리한 점도 있지만, 불편한 기능도 있지요.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타인에 의해 단체 대화에 초대되기도 하고, 단체 대화방이든 오픈 채팅방이든 나갈 땐 나갔다는 메시지가 뜹니다. 사람이 많은 오픈 채팅방에서는 닉네임을 '.'같은 남들이 알아보지 못하는 방식으로 변경하여 나갈 순 있지만 마음은 찜찜합니다.
카카오톡에 새로운 메시지가 올 때마다 뜨는 빨간 알람에 매우 예민합니다. 온통 붉은 알람을 켜두는 분도 있더라고요. 저는 카카오톡뿐 아니라 모든 앱의 알람을 다 꺼야 마음이 편한 사람입니다. 그러니 형식적으로 들어있는 방에서도 새로운 톡이 오면 모두 읽음 처리하느라 바쁩니다.
단톡방을 나올지 말지 망설인 지 1년도 넘었을 겁니다. 침묵한 카카오톡 방을 나오기로 드디어 결심했습니다. 용기를 내어 당당하게 말하고 나왔습니다. "읽지도 않는 단톡방에 제가 있는 건 의미가 없으니 나오기로 결심했다"고 말하고 방에 있는 분의 행복과 건강을 빌며 나왔습니다. 이리도 간단한 걸 왜 1년이나 고민했는지 헛웃음만 나옵니다. 카카오에서는 최근 유료 서비스 이용자들이 만들 수 있는 단체 채팅방인 ‘팀 채팅방’에만 조용히 방을 나갈 수 있는 기능을 도입했고 앞으로 범위를 늘리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는데요. 카카오가 도와주기 전에 제 힘으로 먼저 나왔네요.
내친김에 받기고 하고 읽지 않는 단체 이메일도 수신 거부를 찾아 클릭했습니다. 보지 않는 메일을 습관적으로 지웠는데 '이걸 왜 수신 거부 하지 않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신자가 줄어들면 메일을 보내는 추최 측이 실망할지도 모른다는 소심한 배려도 있고, 그냥 귀찮아서이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제 주간 성찰 뉴스레터를 수신 거부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정말 읽지 않고 지우신다면 저도 현실을 받아들여야죠.
특히 올해 제가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기로 더 강하게 결심했습니다. "아니오"라고 말할 용기를 가지기로 했습니다. 친구의 부탁을 다 받아주거나, 오히려 더 많은 걸 베푸니 당연하게 여기더라고요. 친구의 좋은 일에 진심을 다해 축하하고 챙겨줬는데 제가 같은 입장이 되었을 때 형식적인 인사치레만 혹은 그 조차도 받지 못할 땐 좌절했지요. 기브앤테이크를 따지는 건 아닌지 수없이 의심했는데요 결국은 존중이 없다는 걸 알았습니다. 더 이상 호구는 되지 않겠습니다.
나는 인간관계에 있어 ‘존중’을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꼽는다. 사소한 일상에서든 일에서든 존중이 사라지면 마음이 괴롭다. 사람의 마음은 대단한 일이 벌어져야만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존중받는다는 느낌이 들면, 아무리 피로한 일도 해낼 수 있다. 그래서 태도가 중요하다. -《태도의 말들》중에서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 제 삶은 크게 바뀌었습니다. 번역서를 내거나 책을 낸 작가가 되었다거나, 글쓰기 수업을 한다거나 뭐 그런 결과론적인 변화만이 아닙니다. 글을 쓰면서 사고가 깊어지고, 상황도 세밀하게 관찰하고, 과거도 재해석하고, 기록에 더 집착하게 되었습니다. 가장 큰 변화로 저를 더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여전히 거절하는 게 쉽지는 않습니다만 글쓰기로 힘을 얻습니다. 상대가 원하는 걸 해주기 보다 싫어하는 걸 하지 않는게 더 중요하다고 합니다. 진심으로 자신을 사랑한다면 원하는 걸 하기보다는 싫은 일을 하지 말아야 겠다고 이 글을 쓰며 또 다짐합니다.
제가 "아니오"라고 말하더라도 놀라지 마세요. 그게 저를 사랑하는 증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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