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극적으로 자신의 삶을 개척하며 당차게 살아가던 20대 친구에게 도대체 어떤 계기로 그런 삶을 사는지 질문한 적이 있습니다. 우연히 읽은 책에서 영감을 얻었는데 책 제목이 좀 이상하다며 망설이더군요. 하지만 인생을 살아가는 데 큰 도움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제목을 듣고 웃음이 피식 나왔죠. 그러고는 잊었습니다.
올 1월 매일 독서 습관 쌓기 방에서 원서를 주로 읽는 M님이 책을 인증 읽자 J님이 자신은 《될 일은 된다》로 읽었는데 원서로도 읽고 싶다고 답했습니다. 순간 20대 친구와 나눈 대화가 생각났습니다. 그 친구가 언급한 책이었죠. 원서 제목이 《The Surrender Experiment》이니 번역서 제목을 부제처럼 '내맡기기 실험' 혹은 '인생의 흐름대로' 이런 식으로 지었다면 어땠을까요? 《될 일은 된다》라는 제목은 책을 가볍게 만드는 느낌입니다. 20대 친구의 추천도 생각났고 다른 분들도 읽으셨기에 원서를 샀습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8월 중순이 되어서야 읽기 시작했습니다.
저자 마이클 A. 싱어는 《상처 받지 않는 영혼》(The Untethered Soul)으로 더 유명한 것 같아요. 영성공동체 ‘템플오브유니버스’를 이끄는 명상지도자인 그는 1970년대 초 플로리다 대학교 경제학 박사과정을 밟던 중 요가와 명상에 몰두하기 시작했습니다. 평생 내맡기기 정신으로 영적 추구의 길을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건축업체 ‘빌트위드러브’, 소프트웨어업체 ‘퍼스널라이즈드 프로그래밍’ 등을 설립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 여정을 담은 책이 《The Surrender Experiment》입니다. 저자는 자신이 인생을 선택하지 않고 운명을 그대로 받아들였다(Surrender)고 말합니다. 자신은 가만히 인생이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고 인생이라는 흐름에 자신을 맡겼더니 개인적, 직업적, 영성적으로 성장했다고 전합니다. 책의 느낌을 전달할 몇 문장을 소개합니다. 저에게 번역서가 없어서 직접 번역해봤습니다.
What I saw was that no matter who we are, life is going to put us through the changes we need to go through. The question is: Are we willing to use this force for our transformation? 누구라도 인생에서 변화를 거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를 기꺼이 전환의 힘으로 사용할 것인가?”이다.
My surrender experiment had already taught me to deeply honor the transformative power of life. 내맡기기 실험으로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전환을 일으키는 인생의 힘을 존중하는 법을 배웠다.
누구나 변화의 소용돌이 안에 있게 됩니다. 그 변화를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포기할 것인지 아니면 긍정적인 전환의 힘으로 사용할 것인지는 결국 자신이 선택하는 겁니다. 저자는 인생의 흐름에 자신을 맡겼다고 하지만 결국 매 순간 올바른 판단을 했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그 결정을 존중했습니다.
It was as though by aligning myself with life’s outer flow, the beautiful, inward flow of energy was naturally strengthened. By now, I had become thoroughly convinced that the constant act of letting go of one's self-centered thoughts and emotions was all that was needed for profound personal, professional, and spiritual growth. 인생의 바깥 흐름에 나를 맡기자 내부의 에너지 흐름은 자연스레 강해지는 것 같았다. 이기적인 생각과 감정을 계속 내맡기는 게 결국은 개인적, 직업적, 영성적 성장에 필요했다고 확신한다.
인생이라는 흐름에 나를 맡기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면 내 안에서 에너지가 생겨납니다. 내면의 힘이 단단해지며 이기적인 생각과 감정도 물러갑니다. 그런 집중력과 성찰이 있었기에 성장으로 연결되지 않았을까요?
이 책을 읽으며 저는 니체가 언급한 '아모르파티(amor fati.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라)'를 떠올렸습니다. 흔히 아모르파티를 운명을 받아들이고 인생을 즐기라는 의미로 오해하는데요. 수동적인 인생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인생을 살아나가며, 운명이 우리를 배신하더라도 삶의 의미를 찾으려고 노력하고 사랑하라는 의미입니다.
니체는 운명론을 수용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반대합니다. 운명을 사랑하라는 말은 그 사람이 자신의 운명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뜻이에요. 자신의 운명의 주인이 될 수 있는 것, 삶을 새롭게 해석함으로써 자신의 운명과 실존과 존재를 사랑한다는 것이 아모르 파티의 사상입니다. 운명론과는 정반대의 입장입니다. 노력한 만큼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의 실존의 중심을 잡고 의미를 부여하려고 노력하는 태도가 바로 아모르 파티입니다.
《니체의 인생 강의》 중에서
저자 마이클 A. 싱어는 마치 운명이 시키는 대로 했더니 나도 모르게 성공했다고 말하지만, 매 순간 운명의 목소리에 집중했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꼭 필요한 순간에 귀인이 나타난 것처럼 책에서 썼지만 그 또한 그의 일과 삶을 향한 열정과 에너지가 상대에게 전해졌기 때문이라 생각해요. 사업을 접어야 하는 위기가 닥쳤을 때도 그는 자신의 마음을 챙겨 평화를 이룰 수 있었는데 내일이 오더라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거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제 인생철학과도 비슷해요.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고, 비록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운명으로 받아들입니다. 아니면 마는 거죠. 어떻게 하겠어요? 욕심을 버리고, 제 운명을 사랑하는 겁니다. 좌절하지 않고 다른 방법을 찾아 또 도전합니다.
얼마 전 반갑게 강의 의뢰가 왔으나 제 분야가 아니었습니다. 주제를 바꾸어 제안해보고 안 된다면 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다행히 일정이 맞지 않는다고 먼저 취소 통보를 해 주셨습니다. 마음이 편했습니다. 또 그 전에는 이직 제안을 받았습니다. 제가 가고 싶지 않은 회사라 거절했지만 저를 열렬히 원하셔서 감사했고 으쓱했습니다. 단호하게 끝맺음 못 하는 저에게 먼저 사장님과의 면접을 멈추어 줬습니다. 마음이 정말 편했습니다.
운명은 알아서 저에게 기회를 주기도 하고 앗아가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다음번에 또 뭐가 올지 살짝 설렙니다. 어떤 새로운 일이 나에게 생겨날지 기대됩니다. 그 새로운 일은 좋은 소식일 수도 있고 나쁜 소식일 수도 있습니다. 저 역시 인생의 흐름에 저를 내맡깁니다. 내면의 힘을 믿기에 두렵지 않습니다. 넘어져도 다시 툴툴 털고 일어나면 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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