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심조심 건너가기로 작정하는 마음

사랑에 배불렀던 시절이 지나고

2023.01.03 | 조회 1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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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과장면들

책이라는 결과보다 아름답고 치열한 여정을 나눕니다.

     돌이켜 보면 모든 게, 사랑에 배불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합니다. 혼자라도 괜찮다는 생각으로 여러 계절을 보냈던 것. 그늘진 벽에 기대어 삼삼오오 모여 있는 동급생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일 따위에 스스로를 초라하게 여기지 않았던 것. 누군가의 마음을 얻기 위해 전전긍긍해야 했던 낮밤이 없던 것. 사랑,이라는 말에 눈물보다도 코웃음이 먼저 치고 나왔던 것.

     새하얀 도화지를 얻은 기분으로 마주한 새 겨울 거리를 걷다가 문득, 부끄러움이 터져 나왔어요. 사거리에서 신호를 받아서 쉬지 않고 달리던 버스를 놓치지 않으려고 아이 손을 꼭 붙들고 달리던 젊은 엄마의 헝클어진 머리를 보다가 문득. 사랑이 알고 싶어졌어요. 다음 버스가 올 때까지 기다리기에 날은 너무 춥고, 어린 자식의 손을 꼭 붙든 채로는 전력질주할 수 없는.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그 마음을 건너편에서 훔치듯 읽던 제가 눈물을 터뜨리고 만 것은, 아마도 어렴풋이 사랑이란 감정의 힌트를 발견했기 때문일 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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